취업 준비

18번째 기업 (식품, 단체급식)

하얀 얼굴 학생 2022. 8. 13. 17:38

 19번째 기업 1차 면접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곧바로 18번째 기업 준비를 시작한다. 18번째 기업도 19번째 기업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며, 매출과 규모가 꽤나 크다. 무엇보다, 19번째 기업이 영위하는 업종은 그에게 친근하다. 바로, 식품유통 및 단체급식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으레 계열사로 식품사를 하나씩 갖고 있다. 대외적으로 영업을 하면서, 대내적으로도 같은 그룹 계열사 건물들에서 단체 급식을 제공해서 안정적인 매출에 기반하는 방식이다. 18번째 기업도 비슷한 형태다.

 

 그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 스시샵 보조 / 비스트로 키친핸드 / 주말 시장 / 카페 디시워셔 등 요식업 관련 일을 많이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 식당 보조였기도 했지만, 여기에 더해 요리에 대한 그의 관심도 한몫했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요리와 요식업에도 항상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뜩이나 손기술을 동경하는 그다. 주방에서 일을 해볼까, 칼질도 잘해보고 싶고, 커다란 웍을 능숙하게 돌리며 타오르는 불 속에서 멋지게 볶음 요리도 해보고 싶다. 그가 상상하는 수준의 전문성은 이루지 못했지만, 어쨌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는 식당에서 주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18번째 기업은 다양한 직무를 채용한다. 채용 공고에는 국내영업, 영업관리, 해외영업, 경영지원, 이외 새로 출시한 브랜드 전문 영업을 채용한다고 적혀 있다. 그는 영업을 지원하려 했으나, 18번째 기업의 영업은 그가 생각한 식품 영업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단체급식 영업이기 때문이다. 식재료나 완성 식품을 파는 영업이라면 그도 지원해봄직 하겠으나, 단체급식 영업은 느낌이 다르다. 공고에도 영업 직무는 '식품영양, 호텔조리  전공자 우대' 라고 대놓고 적어놓았다. 일반 식품 영업과는 달리, 영양분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고 신메뉴를 개발하는 등의 업무까지 포함하는 듯하다. 아무리 관심이 있어왔다고는 하나, 그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몇 번 해봤을 뿐이다.

 

 영업 직무를 배제하니, 경영 지원 직무가 남는다. 18번째 기업은 경영지원의 모든 분야를 채용하고 있다. 전략/기획, 구매, 재경, 총무, 물류, 인사/노무 이렇게 6가지다. 그는 이 6가지 직무 중에서 자신이 지원할 분야를 고른다. 18번째 기업 지원자로 하여금 직무를 2순위까지 고르게 하는, 중복이 불가해서 반드시 두 개를 골라야 한다. 그의 지원 직무 1순위는 전략/기획, 2순위는 물류다.

 

 

 18번째 기업은 B2B (Business to Business,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사업 형태)를 영위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다. 같은 그룹 계열사 건물의 단체 급식 업체로 들어가 있거나, 그룹 백화점의 식품 코너에 납품하는 형태다. 그런데 이 그룹의 백화점은, 가격이 꽤나 비싼 편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그는, 백화점 식품 코너를 별로 애용하지 않는다. 즉, 그와 18번째 기업은 접점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18번째 기업이 그리 간절하지 않았다. (처음 이력서를 제출할 때는 말이다) 그가 강점을 어필할 수 있는 영업 직무도, 18번째 기업의 경우는 지원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회사들을 난사할 때와 똑같이, 질문에 맞는 자기소개서를 복사-붙여넣기해서 지원했다.

 

 간절하지도 않은데 영업 직무도 못 쓰니, 기왕 넣는 거 멋있어 보이는 전략/기획으로 해보자. 2순위는 뭘로 할까. 잘 모르겠다. 식품 유통이 꽤 커 보이고, 상하차 아르바이트도 해봤으니 물류나 넣어보자. 2순위 직무는 추가 사항일 뿐이니까. 홈페이지에서 1,2순위를 같은 직무로 지원할 수 없게 해놓은 것이니, 면접관들도 이 정도쯤은 감안하고 있겠지.

 

 

 계속된 서류 난사와 면접 탈락으로 인해, 자신이 대기업 계열사 서류에 붙을 것이라 예상치 않은 그는 겁을 상실한 상태다. 그렇게 지원을 했는데 덜컥 서류가 붙어버렸다. 그는 부랴부랴 면접 준비를 시작한다. 2순위로 넣은 물류가 켕기긴 했지만, 지원서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18번째 기업 홈페이지를 들어가, 사업부문 / 관계사 / 재무제표 / 시장 현황 / 경쟁사 현황 등을 정리하며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든다. 18번째 기업도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의 숫자들이 조 단위를 넘는다. 이력서를 조금 더 신경 써서 작성했다면 좋았겠으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18번째 기업은 단체급식과 더불어, 백화점에 외식업 매장도 운영한다. 그는 자신이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살려, 외식업계 주요 프랜차이즈들의 현황도 정리해본다.

 

 

 계속해왔던 것이니, 바쁜 와중에도 면접 자료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된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집어넣은 2순위 물류 직무, 면접관들이 회사 채용 홈페이지의 자잘한 설정까지 파악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택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후 면접에서, 2순위 직무를 이렇게 안일하게 정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