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

집필

하얀 얼굴 학생 2022. 10. 4. 04:29

 그는 자신과 닮은 것 같은, 또 닮고 싶은 저자를 찾았다.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조지 오웰의 도서를 읽으며 그가 얻은 것은 글쓰기에 대한 흥미 정도다. 그는 자신이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글을 쓸 만한 명시적인 이유나 의미 따위가 필요했던 것 같다.

 

 문학 독서를 계속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게 된다. 조지 오웰 독서 이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떠오르게끔 할 만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실제로 여행했던 내용에 약간의 각색을 더한 출간한 책이 있었다.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 해당 저자는 조지 오웰 다음으로 그가 관심을 가진 저자가 된다. 두 번째 저자의 책은, 심오한 철학적 고찰이 담겨있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억지로 붙잡고 읽었다. 독서 경험으로 인해, 그도 독서에는 약간의 눈썰미가 있다. 무슨 내용인지 반의 반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저자의 책에는 무언가 있다. 그가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할 뿐, 해당 저자는 상당한 철학적 고찰을 여정 중간중간에 끼워놓았다.

 

 그는 해당 책의 내용 중, 여정 부분만이 수월하게 읽혔다. 철학적 고찰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손을 놓아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의 눈길을 강하게 끄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내용은 이렇다.

 

 

 - 왜 나와 대화를 하겠다는 거죠?

 - 한 인간을 하나의 고유한 인간으로 존재하도록 그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의 가치패턴일 것이오. 마찬가지로 한 사회를 하나의 고유한 사회로 존재하도록 그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 역시 그 사회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의 가치패턴일 것이오. ... 사회과학들 역시 모두 그런 것이오. ... 과거에 인류학은 개별 대상이 아닌 집합체에 초점을 맞춰왔. 나는 말이오, 인류학적 논의가 개개인의 가치측면에서 이뤄질 때 더욱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해 주변을 탐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소. 어쩌면 말이오,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는 역사나 사회과학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전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나의 느낌이오.

 

 

 그는 이 부분을 읽고서는, 잠시 쉬었다가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의미가 한 번에 파악되진 않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읽고, 또 읽고, 아예 노트에 받아 적는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것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느냐의 가치패턴. 사회도 같다. 사회과학과 인류학은 집합체에 초점을 맞춰 집합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연구하며 그 사회(세계)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러한 논의가 오히려 개인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계나 빅데이터가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 속에 진리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그는 지금껏 외부의 정보들만을 수집했다.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생겨났고, 사회는 왜 이런 구조가 되었고, 인간은 어떻게 진화했나. 이름을 날린 위인들은 어떻게 살았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았나.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기 위해, 사회과학 도서를 비롯한 외부 세계 정보를 습득하는 데 치중했다.

 그런데, 만일 그러한 논의가 그 자신의 내부를 향할 때 더 의미가 있다면. 책 속의 저 말처럼, 그가 찾던 진리와 대답은, 그 자신이 살아온 전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를 고유한 그로써 존재하도록 그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것은,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의 가치패턴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회고해서, 당시의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또한,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가치패턴이며, 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회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가 머릿속으로 확실하게 기억하는 때가 언제인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판단 근거가 되줄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는 때가 언제인가. 그의 머릿속에서, 하루하루 몰입하여 열정적으로 살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기가 떠오른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기에 대해 회고하고, 당시의 그 자신에 대한 전기를 써봐야겠다. 당시의 그가 무엇을 좋아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지금의 자신은 당시를 회고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내야겠다. 그것이 바로 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가치패턴이다. 그의 가치패턴과 그의 정체성이, 그가 책 속에서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답일지도 모른다. 사회과학 도서, 위인전, 소설 속 주인공 등 외부에서 찾으려 상당 기간 노력해보았으나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그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집필을 시작한다. 워킹홀리데이 시기에 워낙 몰입 상태로 생활해서인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다른 시기의 경험들도 글로 써봐야겠지만, 그는 우선 워킹홀리데이 시절부터 집필하기로 한다. 그 자신이 자부심을 가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저자와 동질감을 느끼며 생긴 글쓰기에 대한 관심에, 글을 써볼 만한 이유와 글감까지 갖춰졌다. 글을 쓰겠다고 작정한 날부터, 그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원고지에 직접 글씨를 적지 않고, 타자를 쳐서 글을 쓰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억나는 것도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많다. 이 글을 쓰면, 자신이 그토록 찾았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 편, 두 편, 하루에 쓰는 글이 점점 늘어난다. 그는 매일같이, 미친 듯이 글을 쓴다. 취업은 뒷전인 마냥 글쓰기에 더 열을 올린다.

 

 기존에 하던 독서에 글쓰기까지 더해지니, 그는 취업준비생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바빠진다. 잠에서 깨면 최대한 빨리 서류 지원을 끝내고, 남는 시간은 글쓰기에 몰두한다. 매일 최소 두 편, 어떤 날은 밤을 새워가면서까지 글을 쓴다. 자신의 경험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어서 빨리 이 글을 끝내야 그 답을 알 수 있으리라는 다급함이 혼재되어 그는 글을 쓴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쓴다. 쓰다 보니, 나름 위로도 된다. 이대로 살다가 그냥 삶이 끝난다면 그 혼자 안고 스러져갔을 이야기들을 세상에 남긴다.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이렇게 기록을 하며 다시 복기하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워킹홀리데이 당시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그다. 그렇게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