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번째 기업 면접자 (가면, 멸치국수)
면접자 2 : 아, 담배가 없네. 잠시만요.
면접자 2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나온다. 편의점 앞에는, 데크목으로 만든 나무 데크와 나무 테이블이 있다. 면접자 2는 나무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문다.
면접자 2 : 담배 피시나요?
그 : 아, 저는 안 핍니다.
면접자 2 : (담뱃불을 당긴다)
면접자 2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추운 모양인지, 웅크린 상태에서 다리를 조금 떤다. 방금 전까지 바로 옆자리에서 면접을 본 사이이지만, 그는 면접자 2의 외모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담배를 피려 마스크를 내린 시점에서야 그는 면접자 2의 얼굴을 마주한다.
면접자 2가 면접 때 쓴 가면 때문인지, 얄팍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한 그의 착오였는지, 그는 면접자 2의 모습이 자신의 예상과 상당히 다르다고 느낀다. 조용하고 내성적일 줄 알았는데, 담배 피는 모습은 딴판이다. 흡연자 특유의, 약간 거칠면서 불량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 : (언제나처럼 똑같은 주제로 말문을 튼다) 여기 말고 다른 곳도 면접 보시나요?
면접자 2 : XXX 기업 하나 남았어요.
그 : (들어본 적 있다) 꽤 큰 기업 아닌가요? 무슨 직무 넣으셨나요.
면접자 2 : OO 직무요. 다음주에 면접보라고 하더라고요. 스읍- 가시죠.
면접자 2는 담배 한 개비를 두세 모금만 빨아낸 뒤 털고 일어난다. 그는, 면접자 2의 흡연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면접자 2 : 아, 면접 때 너무 긴장했던 거 같네요.
그 : 아니에요. 답변 잘하셨는데요.
면접자 2 : 아 갑자기 러시아어로 자기소개를 시켜서 당황했어요. 학교 졸업하고 안 쓴 지가 한참 됐는데.
그 : 러시아어학과를 나오신 거예요?
면접자 2 : 네. 러시아에 잠깐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 : 아까 러시아어 하실 때, 저는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면접자 2 : 에이, 많이 까먹었어요. 여행도 다니고 했었는데
그 : 러시아 여행이요?
면접자 2 : 네
그 : 그럼,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보셨어요?
면접자 2 : 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 여기 합격하면, 다닐 생각이세요?
면접자 2 : 합격한다면, 다녀야죠.
그 : 아.
면접자 2 : 아 근데, 지방 근무를 하라고 해서. 지방 근무가 좀 그렇네요.
그 : 제품이랑 기술 알려주는 거 아니에요?
면접자 2 : 네, 공장 주변 숙소에서 출퇴근하면서 교육하는 거겠죠.
35번째 기업에서 지하철역까지는 도보로 15~20분 정도 소요된다.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인지, 그에 대한 경계심이 풀린 것인지, 면접자 2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면접자 2 : 사실, 제가 ㄷㄷㄷ기업에서 인턴을 했었거든요.
그 : ㄷㄷㄷ기업? 연료 기업이요?
면접자 2 : 네 맞아요. 에너지 기업
그 : 어떠셨나요?
면접자 2 : 와 진짜 꿀이에요. 일은 별로 없고, 터치도 없고, 돈은 진짜 많이 줘요. 평균 연봉이 9천이에요. (그의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그 : 평균 9천이요? 말이 되나요?
면접자 2 : 에너지 기업이라, 돈 진짜 많이 줘요.
그 : 와 그 정도면... 장난 아니네요.
면접자 2 : 그리고 퇴직할 때 퇴직금으로, 아예 주유소 하나를 줘요.
그 : 그것도 장난 아니네요.
면접자 2 : 서울 쪽은 아니고요. 그쪽은 이미 많이들 받아가서, 주로 지방 쪽을 주는 거 같더라고요.
그 : 지방 주유소를 받으면 운영은 어떻게 해요?
면접자 2 : 지방 내려가서 살거나, 아니면은 바지(사장) 하나 세워놓고 하는 거죠.
그 : 아... 정직원 안 하셨어요?
면접자 2 : 하고 싶었는데, 전환이 쉽지 않더라고요. 한번 들어오면 안 나가는 회사라, 자리가 너무 없어요.
그도 ㄷㄷㄷ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탈락한 기억이 있다. 채용 홈페이지 채팅방에서, 익명의 참여자들이 ㄷㄷㄷ기업을 예찬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는 그다.
지하철역이 가까워지고, 면접자 2가 먼저 작별 인사를 한다.
면접자 2 : 저 먼저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마침내 그 혼자 남는다. 면접자 2와 함께 와서인지, 그는 아직도 면접용 가면을 반쯤 걸친 상태다. 면접 때 긴장할 테니 그는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니 이른 점심시간이다. 지하철역 근처, 모락모락 김이 나는 식당이 있다. '멸치국수 5천원' 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마침 좋은 메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멸치국수 이외에도 메뉴가 많다. 면접 준비만 일주일, 이틀 연속으로 3개 기업의 면접을 끝냈다.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제육덮밥과 멸치국수를 주문한다. 조용했던 주방이, 그의 주문으로 인해 바빠지기 시작한다.
멸치국수, 그는 원래 멸치국수의 맛을 몰랐다. 그런 그도 멸치국수를 권유받아 먹어본 이후, 그 맛에 푹 빠져버렸다. 그에게 멸치국수 맛을 알려준 이는 다름아닌 그의 연인이다. 멸치국수와 제육덮밥을 기다리며, 그는 연인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 어, 면접 끝났어.
- 어때, 잘 봤어?
- 나쁘지 않았던 거 같아.
- 고생했네.
- 아침 먹었어?
- 먹었지. 아침 먹었어?
- 안 먹었어. 지금 뭐 좀 먹으려고.
- 뭐 먹는데?
- 김X천국 비슷한 곳인데, 멸치국수랑 제육덮밥
- 제대로네.
- 제대로지?
그는 웃음이 나온다.
- 오늘 볼까?
- 그럴까?
- 먹고 그쪽으로 갈게.
통화를 하며, 멸치국수와 제육덮밥을 먹으며, 비로소 그도 가면을 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