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째 기업, 3번째 방문 (강당)
최종 면접 당일, 그는 33번째 기업 본사로 향한다. 33번째 기업에는 벌써 3번째 방문이다. 아직 면접자 신분이긴 하나, 2번의 면접을 통과하고 올라왔다. 거의 신입사원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김칫국부터 들이키는 그다.
앞서 두 번의 면접 때는, 2층의 라운지에서 대기했다. 최종 면접은 대기실부터 다르다. 33번째 기업이 자랑하는, 1층의 커다란 강당(홀) 같은 곳에서 대기한다. 33번째 기업 홈페이지의 게시글들에서 항상 등장했던 장소다. 신입사원들이 영어 스피킹 대회를 했다는 사진에서도, 장기자랑을 했다는 사진에서도 배경은 바로 이 강당이었다. 앞쪽에는 무대와 같은 스테이지가 설치되어있고, 앉는 자리는 뒤로 갈수록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넓은 강당이다. 강당에 들어서며, 그는 감회가 새롭다.
그가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앞 책상에 명찰이 주루룩 놓여있다. 얼핏 세어봐도 서른 개에 가까운 숫자, 그는 보드영업 직무 명찰이 몇 개인지 훑는다. 10개가 조금 안되어 보인다. 인사팀 직원에게 이름을 말하고, 그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받아 가슴에 착용한다.
명찰을 착용하며 강당 안을 보니, 계단식 자리의 여기저기에 면접자 몇몇이 포진해 있다. 그중에서도, 저쪽 구석에 덩치가 큰 면접자 3명이 우루루 몰려 앉아 있다. 특이하게도, 이 3명의 면접자들은 그다지 긴장이 되지 않는지 농담을 하며 웃고 있다. 같은 대학을 나왔는지, 면접 이전부터 같이 알고 지냈던 사이로 보인다.
그는 이 세 명의 면접자들이, 생산관리나 설비관리 직무 면접자들일 것이라 추측한다. 33번째 기업이 진행하는 이번 공채의 대부분은 근무지가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 직무가 몇몇 있었다. 세 명이 면접자들은, 지방에서 2차 면접까지 모두 통과하고 최종 면접만 서울 본사에서 진행하는 듯 보인다. 이후 인사팀이 이들에게 건네는 말에서도, 그의 추측이 맞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인사팀은 이들에게, 본사까지 오는데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들은 웃으며 괜찮았다고 답한다. 이들이야말로 입사가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그의 망상에 부합하는 상황이리라.
인사팀 직원은 강단에 올라서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정면 화면에는 커다란 PPT가 띄워져 있다. 면접 일정 안내 및 추후 결과 통보 안내, 그리고 33번째 기업 기업 이념에 대한 약간의 소개다. 그가 이미 몇 번이고 외운 기업 이념이다.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계속해서 면접자분들이 도착하실 텐데, 지금 우선 안내드리겠습니다. 앞에 보시면, 오늘 진행될 면접 일정입니다. ㄱㄱㄱ씨, ㄴㄴㄴ씨, ㄷㄷㄷ씨가 곧 들어가실 거예요. 그다음 조로 ㄹㄹㄹ씨, 하얀 얼굴 씨, ㅁㅁㅁ씨가 들어가실 겁니다.
인사팀 직원 : 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준비해오신 그대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여기 저희 회사 기업이념을 적어놨는데요. 가끔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어 조금만 설명을 드릴게요. 저희 회사 이념 중 '행복'이 있는데, 조금 어렵죠. 저희가 추구하는 행복은 그냥 개인적인 의미의 행복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의 행복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성과와 관련된 행복입니다.
그 : (면접 준비 자료에 적는다)
인사팀 직원 : 조그마한 팁을 드리자면, 아무래도 임원 면접관들께서는 현업이 바쁘고 보고를 많이 들으시다 보니, 간단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세요. 답변하실 때, 결론부터, 그리고 답변은 간결하고 짧게 해 주시면 아마 더 좋은 인상을 남기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질문 없으시면, 이제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인사팀 직원이 강당 밖으로 나가고, 강당 내에는 다시 침묵이 흐른다. 가끔 구석의 세 면접자들이 떠드는 목소리 외에는, 다른 면접자들은 긴장했는지 소리가 없다. 그는 화장실을 가고자 강당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방금 나간 인사팀 직원이 입구 바로 앞에 서있다. 긴장도 풀 겸, 인사팀 직원에게 어필도 할 겸, 그는 말을 건다.
그 : 아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저 그때 전화 주셨던 하얀 얼굴 지원자라고 합니다. 기획에서 보드 영업으로 변경된 지원자예요.
인사팀 직원 : 아 네, 안녕하세요.
그 : 네, 혹시 제 이력서 자기소개서가 잘 수정되었나요?
인사팀 직원 : 네, 잘 수정되었습니다.
그 : 그럼 오늘 면접관님들께서 갖고 계시는 이력서에도, 수정된 자기소개서가 적혀 있는 거죠?
인사팀 직원 : 네 맞습니다.
그 : 감사합니다.
그와 연인이 머리를 쥐어짜내어 수정한 자기소개서가 잘 등록되어, 임원 면접관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인사팀 직원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그는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데, 화장실로 향하는 다른 면접자와 동선이 겹치며 합류하게 된다. 아까 면접조를 들었을 때, 그와 같이 면접에 들어가는 면접자다. 그는 경쟁자일 거라 생각해 경계했으나, 이 인원은 성격이 상당히 쾌활하다. 약간 신이 난 듯 들뜬 목소리, 그리고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묻어난다. 그는 별말 없이 화장실만 가려했으나, 면접자가 그에게 말을 건다.
면접자 : 안녕하세요. 혹시, 저랑 같이 면접 들어가는 분 맞으시죠?
그 :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그와 면접자는 서로의 명찰을 확인한다. 그는 보드영업 직무, 면접자는 '총무' 직무다. 그는 서로 다른 직무가 함께 최종 면접을 들어간다는 점이 조금 의아하다.
면접자 : (명찰을 확인하고는) 하아. 보드영업이시네요. 저는 총무예요.
그 : 네 그렇네요.
면접자 : (그보다 앞서 화장실에 도착하여 문을 열어주며)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같은 직무면 어쩌나, 그랬으면 경쟁자였을 텐데요.
그 : (면접자의 과도한 호의에 약간 부담을 느끼며) 네, 그렇네요. 총무 직무 지원하셨어요?
면접자 : 아뇨 저는 사실 설비관리 직무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2차 면접 때 전화가 오더니, 직무가 바뀌었어요.
함께 바로 옆에서 볼일을 보며, 대화가 잠시 끊긴다. 직무가 바뀌었다라, 그는 속으로 자신과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손을 씻으며 다시 대화가 이어진다.
면접자 : 총무 직무는 면접자가 안보이더라고요.
그 : 그렇네요. 혼자 남으신 거 아니에요?
면접자 :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하 (사람 좋은 순한 웃음이다)
그 : 근데 설비관리 직무에서 총무 직무로 바뀌어도 괜찮으세요?
면접자 : 조금 당황스럽긴 했는데, 꼭 설비관리 아니어도, 우선 들어가야 된다 싶어서요. 괜찮을 거 같아요.
강당으로 돌아온다.
그 :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면접자 : (주먹을 불끈 쥐며) 네, 화이팅하시죠!
그 : (웃음이 나오며) 아, 네.
자리에 앉으며 살짝 훑어보니, 2차 면접 때 그와 함께 면접을 본 3명 중 2명이 보인다. 많이들 살아남았구나. 반갑다기보다는 경쟁자라는 생각에 경계심이 앞선다. 약간 특이하긴 하나, 그가 속한 최종 면접조는 총 3명이다. 직무는 보드영업 2명, 총무 1명이다. 생소한 조합이긴 하지만 다 뜻한 바가 있겠거니, 우선은 면접이 다가올수록 날뛰려는 심장을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지방에서 올라온, 동창으로 보이는 3명이 먼저 최종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다. 면접 이전이나 이후나, 그다지 긴장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그대로다. 후련하다는 듯, 3명의 면접자들이 짐을 싸서 강당 밖을 나간다. 가뜩이나 조용했던 강당이, 그나마 이야기를 하던 3명이 나가자 적막해진다. 이윽고, 그를 포함한 3명의 면접자의 이름이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