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 신입사원 환영 식사 1 (자리 배치)
그가 다니는 회사는, 간만에 공채 신입사원을 받았노라고 했다. 건설과 IT를 포함하여 총 신입사원 6명. 그는 이 6명 중 하나였다. 오랜만의 대규모 공채라며 여기저기서 꾸준히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회사 윗선에서도 이는 넘길 수 없는 이벤트였나 보다. 간만의 공채도 기념할 겸, 임직원들이 함께하는 공식 저녁 식사가 진행된다.
참석 인원은 아래와 같다.
- 주인공 : 공채 신입사원 6명
- 회사 대표, 부대표, 관리팀(인사/기획/재무 등)의 장과 직원들, 사업부 임원들
- 이외 여러 팀들의 장, 핵심 인원들
-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경력직, 이외 사원/대리 등
전염병으로 인해 사내 행사가 몇 년째 뜸했다고 한다. 전염병도 어느덧 조금 가시는 분위기겠다, 대규모 공채도 기념할 겸 다시 사내 행사를 부활시키는 차원에서의 저녁 식사다. 회사에 오래 다닌 것으로 보이는 직원들은, 이 '신입사원 환영 식사' 소식을 듣고는 다들 한 마디씩 했다.
- 그래서 어디서 한대?
- 글쎄. 장소가 나왔나?
- 왜 그 코스 요리 나오는 데서 한다는데?
- 또 거기야?
- 윗분들이 좋아하시잖아
'신입사원 환영 식사' 행사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인사팀은 점점 바빠지기 시작한다. 식사 장소를 확정하고 예약하기 위해, 인사팀으로부터 계속해서 인원 취합 요청이 날아온다. 이 인원은 가야한다, 참석할 수 있는지 확인해달라, 총 인원 이대로 맞는지 확인해달라, 못 가면 왜 못 가냐 등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이 폭풍의 한가운데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 공식적으로는 신입사원 환영 식사의 주인공에 속하는 그다. 혹여나 그가 이 식사 자리를 불참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빼려 하면 꽤 강한 반발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의 동기들도 불참이라는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눈치였고, 실제로 100% 참석한다.
어느 정도 명단이 확정되고, 회사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온다. 그런데 또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자리 배치다. 인사팀이 그토록 인원 취합에 열을 올렸던 것이 이해가 간다. 어느 테이블에 몇 명이 앉을지, 누가 앉을지가 전부 정해져 있다. 자리 배치가 나오자, 회사의 이목이 쏠린다. 공교롭게도 그는 가장 특별한 테이블이 배정되었다.
- 야 자리 배치 나왔어?
- 아, 이 테이블이 제일 괜찮네
- 여기가 폭탄인데?
-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어야지
- 대표님이랑 같은 테이블 누구야?
- 야, 얼굴이 대표님 테이블이야? 축하한다
그가 속한 테이블의 멤버는 이렇다.
- 대표
- 사업부 임원 1명
- 경력사원 1명
- 공채 2명 (그, 동기 1명)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인사팀은 인원들의 자리 배치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누굴 어디 앉힐지 자리 배치 회의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했다. 그러한 기나긴 고심 끝에 나온 자리 배치인 것이다. 대표와 같은 테이블이라니, 그는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 IT사업부에 속한 다른 동기들, 즉 엔지니어들은 주로 같은 엔지니어들끼리 식사하도록 배정되어 있다.(엔지니어의 수 자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속한 테이블은 여러 사업부와 직급이 섞여 있다.
그는 조금 헷갈린다. 신입사원인데 회사 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니. 이것은 기회가 아닐까? 대표의 말을 귀담아듣고, 대표의 식견을 배우고, 이 회사의 가장 튼실한 동아줄을 붙잡을 수도 있는 기회가 온 것 아닐까? 그에게는 다른 동기들보다 더 유리한 기회가 주어진 것 아닐까?
혹은, 그게 아닌 걸까. 까불지 않고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녀석이 필요했던 걸까? 지겨운 훈화 말씀에도 티내지 않고 경청하는, 싫은 것도 거부하지 않을 법한 녀석으로 골라다가 대표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상대하게끔 한 것일까. 2시간이 넘게 걸린 회의 끝에, 엔지니어가 아닌 사업지원팀의 하얀 얼굴 사원을 샌드백으로 세우는 것이 더 리스크가 작다고 인사팀은 판단한 것일까.
돌이켜보면, 위의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다. 엔지니어보다는 '사업지원팀' 소속인 그가 아무래도 회사 중심부(관리팀, 관리 업무)와 더 연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동기 엔지니어들보다는 그의 언행이나 생각이 조금 더 동글동글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로 인한 것이던, 각 개인의 취업준비 경험 차이로 인한 것이던, 속한 팀 분위기의 차이인 것이던, 앞으로 맡을 직무의 차이인 것이던.
그는 아직 큰 그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어렴풋이, 아리까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 느낌이, 그가 앞으로 경험할 회사 생활과 꽤나 깊게 연관이 있는 지점이었다.
당시의 그는 별 생각이 없었다. 무지에서 비롯될 수 있는 순수함과 기쁨으로, 그의 생각은 전자에 가깝다. 새로운 배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경험이겠거니. 처음 입사하여 회사의 대표와, 그것도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그는 대표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며, 위인 같은 면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