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회사

59 - 신입사원 환영 식사 2 (군대 / 가족)

하얀 얼굴 학생 2025. 4. 10. 22:26

 코스 요리가 나오는 음식점. 그는 테이블에 앉아 있다. 고개를 돌려 훑어보니 인원이 대략 50명, 테이블도 10개 가까이 되어보인다. 신입사원 환영 식사는 규모가 큰 행사였다. 인사팀장이 사회를 맡는다.

 

 

  인사팀장 : 아,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참석해주신 임직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공채 신입사원들의 합류를 기념하는 저녁 식사 자리임과 동시에... ...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께... ...

 

 기존에 공지된 자리 배치대로, 그는 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첫 사회생활, 처음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답게 약간 긴장한 상태다. 인사팀장의 말이 끝나고, 대표가 앉은자리에서 한 마디 한다.

 

  대표 : 그래요. 이런 자리가 참 오랜만인 거 같은데.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좀 자주 했으면 좋겠네. 다들 식사 맛있게들 해요. 아 그. 조금 있으면 스포츠 경기 있지 않나?

  인사팀장 : 아 네. 곧 있습니다.

  대표 : 그럼 왜, 지금 신입사원들 그때도 다같이 경기 관람하고 그런 거 하면 좋지 않아?

  인사팀장 : 네, 추진해 보겠습니다.

 

 그는 이 말이, 대표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대표의 말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는 듯하다. 몇 주 뒤 인사팀은, 대표 말한 '신입사원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를 추진한다.

 

 

 식사가 시작된다. 코스 요리가 나오고, 술을 마시며 시끌시끌한 테이블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가 속한 테이블은 예외다. 대표도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하여, 다들 술잔에 손을 대지 않는다. 어색한 기류. 그의 내부에서 당찬 포부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 술 한번 시원하게 마시고,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이 상황을 반전시켜 볼까.

 - "이 녀석 재밌는 녀석이네" 라는 말 한번 듣게끔 당돌하게 해볼까

 

 스듯 고민했지만, 행동에 옮기 않는다. 그도 다른 이들처럼 입을 다물고 공손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래, 괜히 나대지 말고 가만 있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

 

 

 테이블의 상황이 이렇게 되니, 자연스레 대부분의 발화는 대표에 의해 이뤄진다.

 

  대표 : 너는 과가 어디냐?

  그 : 네, 저는 경영 입니다.

  대표 : 어 그래. 너는?

  동기 : 저는 .. ...

  대표 : 자네는?

  경력직 : 저는 ... ...

  대표 : 나는 이공계 출신이거든.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

 

 시간이 지날수록 저녁 식사 자리가 무르익는다. 얼굴이 벌게져, 다른 테이블과 자리를 바꿔 앉아가며 친목 도모 한창이다. 전형적인 술자리의 모습. 하지만 그가 속한 테이블은 예외다. 얼굴이 벌게진 이들조차도, 대표가 앉아있는 테이블은 찾아올 생각을 않는다. 그나마 몇몇 임원이나 팀장들이, 대표에게 인사를 하러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대표는 이들을 맞이하며 잘 지내는지, 술은 잘 마시고 있는지 묻는다. 외부 테이블인은 가지고 온 술잔을 비우고 다시 돌아간다.

 

 

 대표가 한 이야기 중, 그의 인상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대표 : 다들 군대는 다녀왔나? 특수 부대 갔다온 사람 있어?

  그 : 아, 저는 아닙니다.

  동기/경력직 : 저희도 아닙니다.

 

  대표 : 그래? 아 내가 특수 부대를 다녀온 건 아니고. 내가 있던 부대가, 특수 부대원들이랑 접촉할 일이 있는 곳이었거든. 걔네들도 겉보기에는 똑같애. 그냥 착해보여.

 ...

  대표 : 근데 이제 걔네도, 임무 받기 전에 잠시 대기할 때가 있거든. 그때는 아무것도 안 시키고 그냥 대기하는데. 그때 방에다가 여자를 넣어줘.

  그 : ???

  대표 : 그래놓고 보는 거야. 어떤 거 같애.

  그 : ???

  대표 : 그러니까. 뭔가 내려놓는 애들을 원했던 거 같아.

 

테이블 일동들은 모두 경청하며, 별다른 말이 없다. 그는 대표의 말을 들으며, 사례가 조금 직설적이지만 현실적이면서도 뭔가 뜻이 있구나 생각한다.

 

  대표 : 아, 이거 나만 말을 너무 많이 했나? 허허. 다들 말들이 없으니, 나 혼자만 말을 하는 거 같구만.

 

 

 주변 분위기와 대표 테이블 분위기의 괴리가 갈수록 커진다. 침묵과 경청이 힘들어질 무렵, 건배사 제의가 나온다.

 

  인사팀장 : 대표님, 이제 시간도 지났고 하니, 건배하고 마무리하시죠.

  대표 : 아, 그래. 저기, 건배사 하고 싶은 사람 있나? 임원들 한 마디씩 해.

  일동 : 와하하~

 

 그가 속한 '대표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다들 신나게 술을 마셨는지 왁자지껄다. 임원 몇몇이 건배사를 하며 다같이 술을 마신다. 그중, 그의 기억에 남는 건배사가 있다.

 

 

  임원 : 아 네 안녕하십니까. 올해로 벌써 저희 회사를 다닌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저희 회사를 다니면서 항상 느꼈던 점은, 바로 '가족 같다'는 점입니다.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항상 가족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원은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 이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며,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억지로 참는다. 가족. 가족 같은 회사라. 이 말은 인터넷에서 한창 희화화던 표현이다. 가족 같은 회사. 말로만 가족 같은 회사. 실제로는 가 '족' 같은 회사.

 

  임원 : 저희 회사는 정말,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회사입니다. 저는... ...

 

임원은 연거푸,  회사가 가족 같다고 말하고 있다. 웃음을 억누 진땀빼는 그는, 임원의 진의가 궁금하다. 진심으로 가족 같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요즘 세대의 감성으로 희화화하는 것인가. 지금 이 저녁식사 자리 분위기로 보아, 전자가 맞는 것 같다. 임원은 정말로 이 회사를 가족과 같이 느끼는가 보다.

 

  임원 : 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건배!

  일동 :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