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회사

66 - 사장님 나이스샷 (인간 고임돌)

하얀 얼굴 학생 2025. 5. 3. 11:59

 작은 공놀이장 건물. 그는 홍보팀장, 홍보팀 매니저 옆에 서있다. 시간이 되자, 회사 임원/리더급/영업직 고참급/ 그리고 주요 고객사 임원들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입장하는 모습이 대부분 유사하다. 티비에서 본 것 같은 모습. 그는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차량이 하나둘씩 도착한다. 차량은 건물 입구 바로 앞에서 선다. 차량이 서기 무섭게 대행사 직원이 트렁크 쪽으로 달려간다. 대행사 직원은 호텔에서 쓰는 카트 같은 것을 갖고 있다. 차량 트렁크가 열리면, 안에 있는 '작은 공놀이용 도구'를 꺼내서 카트에 싣는다. 작은 공놀이에는 도구가 여럿 쓰이기 때문에, 기다란 가방으로 꽁꽁 포장되어 있다. 이 도구는 미리 빼내어, 작은 공놀이를 시작할 때 대동하는 카트에 미리 실어둔다고 한다. 작은 공놀이는 카트도 같이 대동하는 스포츠다.

 

 

 차량 뒤쪽 트렁크가 분주한 사이, 차량 뒷문에서 주인공이 내린다. 비로소 그에게 익숙한 얼굴. 회사에서 많이 보았던 임원들, 리더들, 영업직 고참들이다. 이따금 고객사 임원들도 도착하는데, 그는 이들과는 안면이 없다. 혹시라도 고객사 임원들을 잘 파악해두면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드라마에서 나오던 그런 동아줄 잡기 같은 것은 아닐까. 그는 얼굴을 외우고자 하지만 도착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실패한다. 이날 작은 공놀이장에서 행사를 연 것은, 그가 다니는 회사 하나만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고객사 임원 파악하기를 포기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드넓게 펼쳐진 초원. 주로 잔디가 깔려있기 때문에, 대부분 그늘이 없다. 그래서 작은 공놀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다들 하얀 썬크림을 바르고 까만 썬글라스를 꼈다. 옷은 딱 봐도 '작은 공놀이용 웨어'를 입었다. 밝은 계열 톤의, 약간 파스텔 또는 원색 계열이다. 햇볕이 쨍쨍하여 날씨가 밝고, 썬크림을 바른 이들의 피부톤도 밝고, 그들이 입은 옷 색깔도 밝고,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 표정이 밝다. 인사를 건네면, 다들 쾌활하게 받는다.

 

  홍보팀장/매니저/그 : 안녕하십니까!

  - 어 그래. 언제부터 와있었어? 고생하네~

  - 뭐야 얼굴이도 와있어?

  - 어 식사들은 했어?

  - 어디로 가면 되지?

  - 아 근데 이거 차키는 누구한테 맡기지?

  - 어디, 이쪽으로? 차키는 혹시 누구한테?

 

 계속해서 인사하고 안내를 하다 보니, 반복되는 문의가 있다. 바로, 차키는 어디에다가 맡겨야 하냐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차키를 왜 자신들에게 묻는지 의아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문의로 인해, 차키를 맡아두고 발렛파킹 같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인가 보다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차키를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접받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하는 행사에서는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야 하는 것이구나. 홍보팀 매니저는, 대행사 대표에게 전화하여 차키 문의에 대응해 줄 것을 요청한다.

 

 

 작은 공놀이용 도구를 트렁크에서 내리고, 차에서 내린 주인공은 환영과 안내를 받는다. 홍보팀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이들은 '락커룸'으로 간다고 한다. 이 건물에는 목욕탕도 있어서, 작은 공놀이를 한 바퀴 돌고 온 후 씻고 몸을 풀 수 있다고 한다. 바쁘게 도착하여 미처 밝은 톤의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온 이들은,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 한다.

 

 훗날 돌이켜보면, 그는 이때가 아쉽다. 작은 공놀이장의 목욕탕과 락커룸 시설은 어떤지 한 번 봤어야 했는데, 그는 그저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가 하는 일은 없었다. 도착한 이들이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들게끔 인사하는 일,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한 마디 하는 게 전부였다. 잠시만 시간을 내면 시설 구경 한 번 가능했을 텐데, 신입사원인 그는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고 있다.

 

 

 귀빈들이 모두 도착하여, 건물 안 행사장에 착석한다. 회사 소개, 서비스 소개, 대표의 인삿말과 함께 가벼운 다과가 이어진다. 행사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도 이 행사의 중점은, '친목 도모'다. 회사의 매출을 올려주는 주요 고객사들의 임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대접하는 자리. 햇볕 좋고 공기 좋은 작은 공놀이장에서, 따사로운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을 함께 맞으며 하하허허 초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다과가 끝나고, 장소를 이동한다. 그가 계속해서 곁눈질했던, 드넓은 초원을 앞에 둔 장소로 나온다. 그는 홍보팀 매니저에게 묻는다.

 

  그 : 매니저님, 저희도 저기 밖으로 나가나요? (공놀이에 따라가느냐는 질문이다)

  매니저 : 네? 저희는 아니죠. 저희는 여기서 대기해요.

  그 : 아... (다행이기도 하고. 약간 아쉽기도 하다)

 

 

 작은 공놀이를 시작하기 전, 공을 한 번씩 치는 순서가 있다. 드넓은 초원을 향해 트여있는 곳, 먼저 대표가 자리에 선다. 홍보팀과 대행사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공을 치는 대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나보다.

 

  대행사 직원 : 옆으로 비켜주세요~ 공 앞쪽 방향에 계시면 위험해요~

  홍보팀장 : (풀숲에서) 잘 찍고 있어?

  홍보팀 매니저 : (풀숲에서) 네네, 줌 당기고 있습니다

  그 : (풀숲에서) ...

 

 

 이윽고, 대표가 공을 친다.

  쐐-액 (딱!)

 

 작은 공놀이용 도구가 원을 그리며 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꽤 날카롭다. 공은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가 터져나온다.

 

  일동 : (박수를 치며) 와아아아~~~ 짝짝짝

 

 그도 TV에서 보긴 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땀이 삐져나올 것만 같지만, 그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다. 그도 다른 이들처럼 박수를 친다.

 

 대표 이후에도, 같은 자리에서 몇몇 인원들이 공을 친다. 야구의 '시구' 같은 느낌이다. 공이 날아갈 때마다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그도 따라서 박수를 친다. 이게 바로 '사장님 나이스샷' 같은 느낌일까. 시구를 한 인원들 중, 실력이 좋은 이도 있다. 작은 공놀이에 문외한인 그도 도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공이 날아가는 궤적과 거리도 남달랐다. 누군가가 '똥줄이 다르다'고 말했던 것으로 그는 기억한다.

 

 

 시구가 끝나고, 이제 삼삼오오 조를 이뤄 작은 공놀이를 출발하기 직전이다. 홍보팀과 대행사가 또 분주하다. 출발하기 전,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것이다.

 

  홍보팀 : 다들 출발하시기 전에 이쪽으로 와주세요~ 사진사님, 어느 위치가 좋죠?

  사진사 : 여기, 이쪽이 좋습니다. 네, 네, 조금 더 오른쪽으로요. 네~

  홍보팀 : 준비된 구조물 앞으로 서주세요~

 

 홍보팀은 이 사진 촬영을 위해 구조물을 미리 준비해 둔 모양이다. 구조물은 큰 벽면 모양이며, 체스판 같은 체크무늬 천으로 뒤덮여 있다. 자세히 보니, 회사 로고와 고객사 로고가 체크무늬로 엇갈려서 배치되어 있다. TV에서 보던 연예인 시상식에 나오는 포토존 벽면과도 유사하다.

 

 

 체스무늬 구조물 앞, 회사의 높은 사람들과 고객사 임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홍보팀, 그, 대행사 인원들은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을 더 빛나게끔 해주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니 말이다. 그도 본능적으로 이를 눈치채고는, 애초에 카메라 각도에서 멀리 벗어나있던 참이다. 그런데 촬영이 순탄치 않다. 시원하던 산들바람이 갑자기 강해져, 구조물이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결국 체스무늬 구조물이 뒤로 벌러덩 쓰러진다. 홍보팀과 대행사는 당황하지만, 사진을 찍는 이들은 이러나저러나 기분이 좋다.

 

  - 뭐야, 쓰러졌어?

  - 빨리 찍고 출발합시다~

  - 저게 뭔데? 없이 찍어도 상관 없잖어~

  - 그냥 찍으면 안 돼?

  - 정 안되면 누가 뒤에 가서 잡고 있어

 

 말이 나온 순간, 대행사 직원 한 명과 그가 구조물을 다시 세운다. 바람이 계속 부니,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발로 밟고 두 손으로 밀어 지탱한다. 크기는 커다란 벽 정도인데,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다. 다만 크기가 커서,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두 명이서 지탱하는 편이 낫다.

 

 

 구조물을 뒤에서 지탱하는 동안, 앞에서는 사진 촬영이 이어진다.

  사진사 : 네, 여기 보시고요. 하나 둘~

  일동 : 하하하!

  사진사 : 네 몇 번 더 찍겠습니다. 하나 둘~

  일동 : 하하하!

  사진사 : 하나 둘~

  일동 : 하하하!

 

 사진에 나오지 않도록 벽 뒤에 숨어서 지탱하고 있는 그.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그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참으려 해도 자꾸만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의 피식 웃음은, 반대편의 하하허허 웃음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렸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함께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는 대행사 직원도 같은 표정일까. 그는 고개를 돌려 대행사 직원을 바라본다. 대행사 직원은 그저 땅만 바라본 채 아무 말이 없다. 양복을 입은 대행사 직원은, 행사 준비로 계속 뛰어다닌 듯 땀이 송골송골하다. 아마 그와 비슷한 막내 직원 급일 터다.

 

 

 대행사 직원이 바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적 교류는 실패다. 그때, 대행사 직원 너머로 건물이 보인다. 귀빈들을 맞이하고, 다과 행사가 진행되었던 건물이다. 건물은 안에서도 바깥 풍경을 훤히 볼 수 있도록 대부분의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 유리 마감이기 때문에, 거울 정도는 아니지만 모습이 반사되어 비친다. 바깥에서 사진 촬영하고 있는 이들과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구조물 벽을 사이에 두고, 오른편에는 그와 대행사 직원이 있다. 구조물이 만든 그늘 아래에서, 구조물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발로 밟고 손으로 잡고 있다.

 구조물 벽 왼쪽에는, 행사의 주인공들이 있다. 사진사의 렌즈를 바라보며, 햇빛을 맞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건물 유리에 비친 모습은, 그 구도가 만화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적나라하다. 이를 보자, 잠시 잦아들었던 피식 웃음이 다시 그를 찾아온다. 피식 피식. 시원하게 웃어버리고 싶지만, 그의 웃음은 피식거리기만 한다. 반대편에서는 하하허허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