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회사

77 - 창고 물품 현황 시트 제작 (재고 파악)

하얀 얼굴 학생 2025. 6. 9. 00:38

 꿈 같았던 며칠 간의 스프레드시트 교육이 끝나고, 그는 회사로 복귀한다. 회사도, 사업지원팀도, 그의 업무도 변화 없이 그대로다. 그가 교육 들으러 간 며칠 동안에도, 당연히, 회사 직원들은 변함없이 전염병 검사를 받았다. 그의 자리 위, 새롭게 쌓여있는 전염병 검사 증빙들이 그를 반긴다. 그는 다시 전염병 전표 치기 업무에 돌입한다.

 

 

 교육을 듣고 난 이후에도, 딱히 달라진 점은 없다. 그의 주된 업무는 전염병 전표 처리와 창고 물품 불출이었고, 사업지원팀 상사들은 계속해서 바빴기 때문에 그에게 새로 업무를 주지 않았다. C 대리는, A 사원을 스프레드시트 전문가로 키우고 싶은 것인지 온라인 강좌를 하나 더 수강하게끔 했다. 그리고 이 강의는, A 사원의 수강률이 절반을 넘을 무렵 그에게도 공유되었다.

 

 온라인 강좌는, 그가 며칠간 회사 외부에서 들었던 스프레드시트 교육의 복습과 심화에 적합한 난이도였다. 당시 시간에 쫓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은 물론, 함수와 시트 연결을 다루는 고난이도 강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온라인 녹화 강의라는 점이 좋았다. 따라하지 못해 놓쳐도, 동영상 밑의 스크롤을 앞으로 당겨서 다시 반복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신이 나서 강의를 듣는다. 신나게 시작하긴 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업무나 게으름 등으로 끝내 그는 이 강의를 100% 이해하지도, 수강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는 단순 업무만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 시간에 엑셀 등의 프로그램을 거의 쓰지 않았다. 즉, 그는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엑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스프레드시트 교육과 강의를 수강했으니, 그는 엑셀보다는 구글 스프레드시트가 더 친숙했다.

 

 물론, 엑셀과 스프레드시트 모두 그의 숙련도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다만 그가 느끼는 친숙함만큼은 구글 스프레드시트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약점이면서도 동시에 강점으로 작용하는 지점이었다. 그가 엑셀을 미리 사용하여 이미 엑셀에 익숙해져버린 상태였다면, 심리적 장벽이 형성되어 스프레드시트를 제대로 습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컴퓨터 활용 측면에서는 문맹에 가까웠던 그. 하얀 도화지였던 하얀 얼굴 사원에게 먼저 또아리를 튼 것은 엑셀이 아닌 스프레드시트였다. 여느 회사원들과 비교하면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할 수도,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갓 스프레드시트를 배운 하얀 얼굴 사원, 그는 이 도구를 써보고 싶다. 기껏 여러 교육도 수강하면서 배워놨는데, 쓰지 않고 까먹어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당장 그에게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해 어떤 업무를 해내라는 압박은 없다. 아니, 애초에 그에게는 업무 관련 압박 자체가 없다시피 한다. 하지만 그는, 뭐라도 찾아서 해보고 싶었다. 별 것 아닌 것이더라도, 그가 알고 있는 스프레드시트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아주 자그마한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자그마한 생각이나 열정이, 그가 가진 장점이자 그를 성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전염병 전표는 회사 시스템 내에서 전표를 치고, 출력해서 관리팀에 제출하는 것이 전부이므로 스프레드시트 활용 방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다른 업무, 창고 관리 및 재고 불출 업무로 눈을 돌린다. 창고 관리와 재고 불출 업무에서,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할 수 있을까. 스프레드시트는 결국 무언가를 표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도구인 것 같은데. 현재 창고의 재고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가. 아니, 애초에 지금까지 관리랄 게 있기는 했던가?

 

 

 창고 재고를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는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어차피 하얀 얼굴 사원에게 별다른 업무 지시는 없고, 근무 중에 시간은 내고자 하면 남아돌고, 전염병 전표 처리만 안 밀리게 하면 된다. 그는 창고의 공동책임자인 홍보팀 매니저에게 허부터 구한다.

 

  그 :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창고 재고 파악을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창고 물품들을 좀 옮기고 뜯어봐도 되나요?

  홍보팀 매니저 : 아 네. 근데 그거 옛날 물건들이 많을텐데..

  그 : 너무 오래된 거는 버려도 되나요?

  홍보팀 매니저 : 버리기 전에 한번 저한테 알려주세요.

  그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보팀 매니저에게 허가도 받았겠다, 그는 즉시 행동에 돌입한다.

창고에 들어가니, 그동안 정리되지 않고 켜켜이 쌓인 박스가 그를 가로막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쌓여왔는지 모를 박스들. 박스는 계속해서 쌓여, 어느새 창고에 발 디딜 틈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나가는 물건은 없고, 들어오는 물건만 쌓이고, 정리하거나 관리하는 인원은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그도 슬슬 물건 불출이 벅차던 참이다. 물건이 들어오면 일단 공간을 만들어 어떻게든 짱박아놓는다. 그리고는 물건을 불출할 때는, 이 수라장 속에서 헤집어가며 기억을 더듬어 어떻게든 물건을 찾아낸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창고 밖으로 나서면 기억은 다시 소각된다. 매번 창고를 방문할 때마다 사투가 반복된다.

 

 창고 열쇠를 가진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다. 창고에 넘쳐나는 박스들과 묵은 재고들은 대부분 홍보팀 물품들이다. 그가 모르는 사이 홍보팀 물품들이 또 한가득 들어오면, 그는 박스의 바다에 표류하여 또다시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찾아 잠수하곤 했다.

 

 

  - 이참에, 창고 물품을 모조리 싹 다 파악하고 정리해 버리리라.

 

 그는 군대 시절 수없이 정리했던 '물자 창고'가 떠오른다. 텐트, 전투복, 무슨무슨 물자 등 먼지가 켜켜이 쌓인 창고였다. 하지만 창고 내부 재고들은 나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벽에는 '상황판'이라는 것에 마카로 재고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일단은, 기억 속 '물자 창고'처럼만이라도 되게끔 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드르르르륵. 퍽. 찌익. 촤아아악. 드득. 드득. 드르르륵.

 

 문 닫힌 창고 속, 그 혼자서 박스들과 사투를 벌인다. 일단 박스를 열어볼 수 있는 공간부터 만들어야 한다. 박스를 한쪽에 몰고 쌓아, 어떻게든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는 박스를 하나씩 열어보며, 매직으로 박스에 표기를 한다. 박스를 옮기고, 열고, 재고 파악을 한다. 파악을 할수록, 그의 머릿속에 물품들의 구성이 정리되고 관리가 되기 시작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박스를 열 때마다, 그의 머리와 옷에 먼지가 폴폴 날아든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도 점점 더 뿌얘진다.

 

 정리가 되야하는데, 물건의 종류도 양도 너무 많다. 박스를 열 때마다, 그는 한숨을 넘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일까. 이 회사가 설립된 이래 왠갖 잡동사니는 전부 이 창고로 쑤셔넣은 느낌이다. 정리를 하던 그도, 슬금슬금 의심이 피어난다. 그래, 다들 아무도 안 해왔는데. 그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아닐까?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의 생각이 그리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왕 시작했으니, 그는 어떻게든 끝을 내보고 싶다. 그는 원래 박스를 모조리 까내고, 안의 물품 수를 1의 자리까지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불가능에 가까워지자, 목표를 수정한다. 물품 수는커녕, 박스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할 지경이다.

 

 재고 파악과 동시에, 그가 파악을 끝낸 박스들은 동일 분류별로 모아서 다시 쌓아야 한다. 박스를 열 때마다, 이 박스는 재고가 꽉 차 있는데 저 박스는 재고를 몇 개만 빼내는 등의 사례가 다수다. 이걸 일일이 다 셀 필요가 있는가. 결국 재고 파악의 정확성을 낮추기로 한다.

 

 박스를 쌓는 것도 문제다. 그는, 왜 이 창고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박스가 너무 많고, 이 박스를 받아줄 구조(거치대)가 없다. 그냥 박스를 쌓아올리니, 아래 있는 박스가 뭉개지고 심지어 쓰러지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지속되어 온 것이다. 예전에 V 차장이 창고에 잠시 올라왔을 때, 철제 다이 하나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비로소 납득이 가는 그다.

 

 

 꼬박 하루를 바쳐, 그는 창고 재고 파악 및 정리를 끝낸다. 끝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가 처음 목표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든 같은 물품끼리 쌓아놓고, 이전에 비해 약간의 공간을 확보하긴 했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정도만 확보한 상태다.

 

 그래도 박스를 하나하나 열어본 덕에, 물품의 종류와 재고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와, 스프레드시트로 '창고 재고 현황'을 만든다.

  - 제목 글씨는 크고 굵게. 셀들을 합치고 글자가 중앙에 오게끔.

  - 맨 위의 행은 통일한다. 물품명 - 대분류 - 재고 수 - 비고(특이사항)

  - 통일된 행 아래로, 그가 파악한 물품명과 수를 쭉 적는다.

 

 창고 관리 시트이니, 물품 불출일자와 입고일자도 만들어놓는다. 누가 언제 무슨 물품을 몇 개 요청했는지, 그래서 그가 불출한 일자는 언제인지. 이런 정보들이 쌓이면, 결국 나중에는 재고별 소진일자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야심차게 만든 '창고 관리 시트'를 IT사업지원팀에 공유한다. 상사들은 다들 들어와서 한 번씩 보긴 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다. 그래도 고생했다고 한 마디씩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S 팀장 : 고생했네

  V 차장 : 창고에 이런 것도 있어? 정리 한번 해야겠네~

 

 그리고 사업부 기술팀장으로부터도 연락이 온다.

  기술팀장 : 얼굴 사원님 안녕하세요.

  그 : 안녕하십니까!

  기술팀장 : 창고 관리 시트 보고 있는데요. 모니터 암이 있어서요. 혹시 불출 가능할까요?

  그 : 네, 전달드리겠습니다!

  기술팀장 : 네, 감사합니다.

 

 

 기술팀장에게 모니터 암을 전달하며, 그는 자신의 시트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이때는 알지 못했다. 그의 창조물인 창고 관리 시트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차다는 점을 말이다.

 창고 시트 공유 이후에도, 그가 모르는 사이 홍보팀의 물품이 들어오는 일이 빈번했다. 거기에 더해, 창고 물품 불출 요청도 너무 잦았다. 이 모든 것을 신경쓰고 기록하는 것은 그 혼자만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와 관리 범주를 벗어난 물품과 입출고가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그의 첫 시도였던 '창고 관리 시트'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생명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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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리한 창고의 물품들은 아래와 같다

  - 자리에서 쓰는 구내전화기 약 10대

  - 무슨무슨 직원, 무슨무슨 직원에게 온 소포 10 박스 이상

  - 커다란 TV 모니터

  - 회사 다이어리 (XX년도) 5박스 이상

  - 회사 다이어리 (XX-1년도) 5박스 이상

  - 회사 다이어리 (XX-2년도) 약 3박스

  - 회사 다이어리 속지 약 5박스

  - 나무 서랍장

  - 서류 보관함

  - 누군가의 근속 포상 트로피 / 상장

  - 서류 받침대 여럿

  - 게임기

  - 드론

  - 홍보용 책자 A형, 15박스 이상

  - 홍보용 책자 B형, 10박스 이상

  - 홍보용 책자 C형, 10박스 이상

  - 홍보용 책자 D형, ...

  - 홍보용 물품 ㄱ, 5박스 이상

  - 홍보용 물품 ㄴ, 4박스 이상

  - 홍보용 물품 ㄷ, ...

  - 홍보용 물품 ㄹ, ...

  - 홍보용 물품이 담겨있는 커다란 주머니 (타 회사 명함 다수)

  - 홍보용 X반도 (기다란 인쇄물을 세우는 용도라고 한다)

  - 이외 홍보용 무슨 막대기 등 다수

  - 빔 프로젝터를 받아내는 거대한 도화지 롤 여럿

  - 골프채 10여개

  - 홍보를 위한 회사 로고 조명 3개 이상

  - 약 20~30년 전 서류 (기안지,협조전,계약서 등) 약 20박스

  - 자리 이사할 때 쓰는 포장박스 여럿

  - 사무용품 펜

  - 사무용품 포스트잇 손바닥 크기

  - 사무용품 포스트잇 손바닥 절반 크기

  - 사무용품 포스트잇 손가락 크기

  - 파티션 부착 자석

  - 기안지 철 화일

  - ...

  - ... 이외 다수

 

그가 관리하고 있는 신규입사자 불출용

  - 모니터 15개 이상

  - 모니터용 암 2개

  - 멀티 허브 10개 이상

  - PC 반납분 여럿

  - 노트북 반납분 2~3개

  - 노트북 쿨러

  - 키보드/마우스

  - 신규 입사자 불출용 웰컴키트 만들어놓은 것

  - 웰컴키트 구성품목 부족해서 미완성인 것

  - ...

  - ...

  - ... 이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