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면접 당일, 그는 33번째 기업 본사 라운지에 앉아 있다. 33번째 기업은, 나름 그룹이라는 이름을 쓰는 기업답게 서울 한복판에 커다란 사옥을 갖고 있다. 나무 관련 제조업이라 그런지, 내부 인테리어도 원목 재질로 깔끔하며 라운지 한쪽에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도착한 때는 안내된 시간보다 이르다. 그는 2층 라운지 구석진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다. 차가워진 손끝으로, 준비해온 면접 자료를 이리저리 넘기며 훑는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던 중, 그는 저편 책장에 꽂힌 33번째 기업 간행물을 발견한다. 놓칠 그가 아니다. 면접 당일, 현장에서 운명적인 힌트를 얻을 수도 있는 기회다.
간행물을 펼쳐보았지만, 별 내용은 없다. 회사 소개, 이러이런 사업을 하고 있다, 몇몇 직원 인터뷰, 회사 관련 기사 등이다. 주욱 넘기다가, CEO의 글이 보인다. CEO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최근 급변하는 시장과 국제 정세 속에서... ... 우리 회사는 ㅁㅁ 국가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말 힘든 결정이었지만... ...'
면접 준비를 하며 뉴스 기사를 많이 보았지만, 그로서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다. 33번째 기업이 철수한 나라가 있구나. 해당 내용은 면접 때 언급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다.
안내된 시간이 되자, 라운지 중앙에 앉아있던 한 직원이 다가온다. 노트북으로 무언가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 직원이 바로 인사팀 직원인 듯하다. 그가 간행물을 뒤적이는 동안, 다른 면접자들도 어느샌가 도착하여 라운지 구석구석에 앉았다. 딱 봐도 면접 보러 온 티가 난다. 인사팀 직원은 돌아다니면서 면접자들을 불러 모은다.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오셨나요?
그 : 네 맞습니다.
인사팀 직원 :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 : 하얀 얼굴입니다.
인사팀 직원 : 네 안녕하세요. 저기 보이시는 회의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 : 감사합니다.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오셨나요?
면접자 1 : 네 맞습니다.
인사팀 직원 :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면접자 1 : 면접자 1입니다.
인사팀 직원 : 네, 저기 보이시는 회의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라운지 여기저기 포진해있던 면접자들이 대기실에 집합한다. 그를 포함해 총 4명(남자 3 / 여자 1)이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키가 조그마한 여자 면접자 1
까만 머리, 거무스름한 피부, 뿔테 안경을 낀 남자 면접자 2
그
약간 곱슬에 노란빛이 도는 머리, 잘생긴 얼굴의 남자 면접자 4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자 일동 : 안녕하세요!
인사팀 직원 : 네 오늘 일정 말씀드릴게요. 곧 제가 PT 문제를 드릴 거예요. 해당 문제 푸시고, 한 분씩 면접 진행하실 예정입니다. 면접 들어가시면, 문제 풀이 발표해주시고, 면접관님들께서 궁금하신 사항 질문하시는 식으로 진행될 거예요.
면접자들은 대기실에서만 함께 할 뿐, 면접은 개별로 들어간다.
인사팀 직원 : (면접자들 개별 노트북을 나눠준다) 네 그럼, PT 시작하겠습니다. 바탕화면에 PPT 파일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문제 파일, 하나는 풀이 파일입니다. 문제 읽으시고, 풀이 파일에다가 풀이하셔서 저장하시면 됩니다. 제가 계속 있을 테니, 궁금하신 사항은 바로 질문해주세요. 네 그럼 지금부터 문제 푸시면 됩니다.
면접자 일동 : (바삐 마우스를 클릭하며 문제 파일을 연다)
그가 기억하는 문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래전 XXX시대, ㄱㄱㄱ 장군은 적을 맞아 전투를 앞두고 있다. 반드시 전투에 임해야 하며, 상황은 아래와 같다.
1) 적군에 비해 병력, 장비, 물자가 모두 부족하다
2) 방금 막 모집한 병사가 절반 가량이며 기본적인 병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3)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좁은 길목이며, 3시간만 버티면 날씨가 아군에게 우호적으로 변한다.
4) 부하 장수들의 의견도 두 편으로 나뉘어 분분하다.
부하 1 : 열심히 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정신교육 담당)
부하 2 : 가망이 없는 전투입니다. (병기훈련 담당)
부하 3 : 아군에게는 적보다 사거리가 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슨무슨 담당)
등 부하 장수 약 8명의 의견
이와 같은 상황에서, ㄱㄱㄱ 장군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주어진 도표를 작성하시오.
도표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3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의 네모칸이 하나, 중간 단계의 네모칸이 4개, 맨 아래 단계의 네모칸이 16개다. 네모칸 하나당, 아래로 4개의 네모칸을 거느린 식이다. 그는 이 문제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해야 할 중간 과제 4가지를 도출하고, 각각의 중간 과제를 달성하도록 하는 소규모 과제를 또 4가지씩 도출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실 문제의 의도는 BSC(Balanced Score Card, 균형성과평가제도)를 사용해 분석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는 BSC라는 것 자체를 몰랐으므로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가 작성한 답은
최종 목표 : 3시간을 버텨 전투 승리
중간 목표 : 사기 고취 / 기본 훈련 / 병기 훈련 / (기억나지 않음)
수행 과제 : 중간 목표 하나당 4개씩 총 16개 (문제에서 주어진 내용과 그의 상상력을 쥐어짜내어 모두 적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문제에서 제시한 XXX전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배웠을 전투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각종 드라마는 물론 영화까지 제작된 전투다. 그는 해당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봤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극적 연출을 위해 사용한 전략까지 추가해서 적는다. 면접관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문제 의도인 BSC와는 전혀 무관한 그 혼자만의 소설로 보였을 수 있다.
인사팀 직원 : 문제가 조금 특이하죠.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나름 신경을 많이 써서 출제한 문제여서요.
면접자 일동 : 아, 네.
인사팀 직원 : 궁금한 것 있으면 바로 물어보세요.
약 30분 뒤
인사팀 직원 : 네, 문제 풀이 시간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문제풀이 파일 저장하시고, 노트북 수거해가겠습니다.
면접관 일동 : (노트북에서 손을 뗀다)
인사팀 직원 : (노트북 4개를 든 채) 이제 한 분씩 차례대로 면접 진행할 거예요. 면접 예상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입니다. 우선 면접자 1 씨, 따라오시겠어요?
면접자 1 : 네.
면접자 1이 나가고, 대기실에는 그를 포함한 3명의 면접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적게는 30분, 많게는 2시간을 기다리며 같이 있어야 할 사이다. 면접자 4가 먼저 말문을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면접자 4 : 와, 문제 잘 푸셨어요? 너무 어렵네요.
그 : (문제 의도 자체를 파악 못했으니) 저는 그냥 주어진 정보로 적었어요.
면접자 2 : BSC 모델을 쓰라는 것 같은데, 어렵네요.
면접자 4 : BSC? 저는 그게 뭔지 몰라요. 학교 수업을 대충 들어서.
그 : 혹시, 여기 말고 다른 곳도 면접 진행 중인 곳 있으신가요?
면접자 4 : 네 저, 식품 회사 바이어 면접 하나 남아있어요.
그 : 나머지는 다 끝나셨구요?
면접자 4 : 아 제가, 서류를 아직 얼마 안 넣어서요. 졸업도 아직 안했어요.
그 : 아, 어리시군요.
면접자 4 : 어리진 않아요. 20대 중반이에요.
면접자 2 : 그 정도면 어리시죠.
그 : 면접자 2 께서는 몇 살이세요?
면접자 2 : 20대 막바지입니다.
그 : 아 저랑 비슷하시네요. 면접 진행 중인 곳 있으세요?
면접자 2 : AAA 재무, BBB 영업, CCC 무슨 직무... ... 이렇게 남았네요. (대략 6군데 정도로 기억한다)
그는 면접자 2의 답변을 들으며, 면접자 2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다. AAA는 한국 최대 포털 사이트이며, BBB도 대기업에 속하는 식품 회사다. 면접자 2가 말하는 6개 회사가 전부 굵직굵직하다.
그 : 아, 엄청 좋은 기업들이네요. 서류 많이 넣으셨나요?
면접자 2 : 저 한, 10곳 정도 넣었어요.
그 : 와 그러면 서류 합격률이 엄청 높으시네요.
면접자 2 : 그렇게 막 높지도 않아요.
그 : 스펙이 좋으신가 봐요.
면접자 2 : 아 사실, 제가 시험공부를 하다가 취업으로 돌려서요.
그 : 어떤 시험 준비하셨는데요?
면접자 2 : 행정고시요. 1차까지 붙었어요.
면접자 2의 답변에, 그는 면접자 2를 경쟁자 범주에서 배제한다.
면접자 4 : 아 그런데 30분이라니... 면접이 너무 오래 걸리네요. 무슨 삼촌 이름까지 물어보겠어요.
그 : 아, 그런가요. 혹시 경영혁신 직무가 뭔지 회사 홈페이지에 있던가요?
면접자 4 : 못 찾았어요.
면접자 2 : 회사 홈페이지 보니까, 무슨 혁신 축제 기사가 있더라고요. 1년 동안 혁신한 거를 공유하고 포상한다나. 그런 거 주관하는 업무 아닐까요.
그 : (몰래 핸드폰으로 검색해본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고 어색한 침묵이 다시 찾아올 즈음, 면접자 1이 대기실로 들어온다. 면접자 1은 가방만 챙겨서 곧바로 나간다. 잠시 뒤, 인사팀 직원이 면접자 2를 호명한다. 면접자 2는 다녀오겠다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약 30분 뒤, 면접자 2가 대기실로 돌아온다. 그가 묻는다.
그 : 면접 어떠셨어요? 잘 보셨나요?
면접자 2 : 잘 모르겠네요. 떨어진 거 같아요.
면접자 4 : 잘 보셨겠죠.
면접자 2 :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면접 잘 보세요.
면접자 2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곧이어 인사팀 직원이 들어온다. 인사팀 직원이 그를 호명한다.
인사팀 직원 : 하얀 얼굴 씨, 면접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면접자 4 : 잘 보고 오세요.
그 : 네.
대기실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면접장이다. 안내된 시간에 도착한 이후, 그는 도합 1시간 반을 기다렸다. PT 문제 푸는 시간 30분, 면접자 1/2 각각의 면접 30분이다. 그가 3번째 차례였기에 망정이지, 면접 대기실에 남아있는 면접자 4는 2시간을 기다린다.
어차피 면접은 1명씩 따로 보면서 굳이 모아놓고 2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문이 생기지만 접는다. 언제나 그래 왔듯, 생생하고 활기찬 신입사원 면접자의 가면을 장착한다. 1시간 반 동안 기다리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광대를 치켜올린다.
그 : (노크한다)
면접관 : 네, 들어오세요.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취업 준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번째 기업 본사 (고층, 햇빛) (0) | 2022.11.20 |
---|---|
33번째 기업, 43번째 면접 (PT풀이, 건들거린다) (0) | 2022.11.19 |
33번째 기업 (서류, 인적성) (0) | 2022.11.19 |
1번째 기업(2), 42번째 면접 - 스포츠 회사 (0) | 2022.11.13 |
1번째 기업(2) - 재도전 (0) | 2022.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