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연인은 카페의 넓은 자리에 앉는다. 그는 33번째 기업에 제출했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출력해 가지고 왔다. 인사 담당자의 말대로, 기본 인적사항은 건드릴 것이 없다. 수정해야 할 부분은 오로지 자기소개서다. 기존 '경영혁신' 직무에 맞춰져 있던 자기소개서를, '보드영업'에 맞게 수정하려 한다.
수정하기 전 원래의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읽어보니, 언제나처럼 복사-붙여넣기한 자기소개서다. 원래의 '경영혁신' 직무에조차 맞는다고 할 수 없는, 그가 보기에도 민망한 양산형 자기소개 답변이다. 이런 자기소개서로 어떻게 서류를 합격했는지, 또 이런 자기소개서를 보고도 어떻게 그를 1차 면접에서 합격시켰는지 의문이다. 이제라도 고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자기소개서를 싹 고쳐서, 민망한 과거를 없애버리리라.
그가 기존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다음과 같다.
경영혁신 직무
1) 주도적으로 목표 수립, 달성 경험
- 호주 워킹홀리데이
2) 협업 경험
- 공놀이 동아리
3)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 해결한 경험
- 가전제품 고친 경험
4) 성장과정
- 그의 성장과정
5) 당사 관심 가진 계기와 포부
- 실물 경제에 이바지하고 싶다
6) 지원 직무 수행을 위해 노력한 경험
- 읽은 도서 목록 작성
호주 워킹홀리데이 자기소개서의 경우는 그나마 그가 자부심을 가진 자기소개서이므로 수정할 필요가 없다. 공놀이 동아리 경험도 나름 신경 써서 작성한 것이고, 성장과정의 경우는 질문 자체가 평이하므로 비중이 없다. 그가 보기에 고쳐야 할 정도로 민망한 자기소개서는 3개(전체의 절반), 문제 해결 경험 / 당사 관심 계기와 포부 / 직무 수행 강점이다.
문제 해결 경험의 경우, 그는 경영혁신 직무와도 전혀 상관이 없는 주제를 적어놓았다. 어렸을 적 가전제품을 고치며, 새로운 관점을 적용해보았다는 요상한 자기소개서다. 경영혁신에도 어울리지 않는 답변이지만, 영업 직무에는 더더욱이 부적합하다. 영업 직무에 맞는 스토리,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찾아야 한다. 연인의 코칭이 시작된다.
- 호주 주말 시장에서 일했을 때 뭐 없었어?
- 음 주말 시장에서... 상점 설치, 카운터, 상점 철거까지 다 했었지
- 일을 하면서 새로운 뭔가를 도입하진 않았고?
-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필요한 거 보이면 했었는데...
-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해서, 더 나아졌다는 거를 써야 해
- (살짝 귀찮다) 으음...
- 생각해보고, 우선 다른 거 두 개부터 써보자
그의 생각이 막히자, 연인은 다른 문항부터 해결하라고 말한다. 다른 두 문항은, 그가 생각해놓은 방향이 있어 수월하게 풀린다.
당사에 관심 가진 계기와 포부 : 실물 경제에 이바지하겠다 (기존)
▶ 목재와 같이 단단한 뿌리를 가진 33번째 기업에 기여하고, 함께 성장하는 영업인이 되겠다
지원 직무 수행을 위해 노력한 경험 : 읽은 도서를 정리하고 목록으로 정리했다 (기존)
▶ 정리와 분석 - 읽은 도서 목록 작성 경험을 바탕으로, 33번째 기업의 제품군을 정리해보았다
그는 33번째 그룹의 시작이자 핵심인 나무 제조업이 정말 '뿌리 같다'라고 생각하고 가치를 느꼈으며, 면접 준비를 하며 제품의 이름을 암기하고 정리도 했었다. 실제 생각과 실제 경험 바탕이니, 두 문항은 금방 해결이 된다. 그와 연인은 다시 원점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으로 회귀한다.
- 뭔가 분명 있을 텐데...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잖아
- 많이 하긴 했는데 딱히 새로운 액션을 하진 않았어
- 꼭 하지 않았어도, 이 문항에 맞게끔 말을 만들 수만 있으면 돼
- (번뜩) 어... 웨이터가 아무래도... 고객을 만나니까 영업 직무에 더 어필이 되지 않나
- 웨이터할 때 뭐 했어
- 손님들 올 시간 되면 문 앞에 나가서 기다리고, 자리로 데려오고, 식사하는 동안 뒤에 서서 그릇 치워주고 식기 주고 음료 주문받고 했지
- 식당에 뭔가 문제가 없었어?
- 음... 철판 요리 식당이라, 테이블당 셰프가 한 명씩 붙거든. 그래서 테이블당 최대한 손님을 채워 넣고 시작해야 하는데, 이 손님들은 왔는데 저 손님들이 제시간에 안 오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요리 시작해버리고 그런 경우가 있었지.
- 그러면 늦게 온 손님들은 어떡해?
- 그래도 요리 초반에 오면 바로 합석시켰는데, 이미 요리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테이블로 앉히고 셰프 한 명이 더 붙었지. 많이 있는 일은 아니었어
- 이거를 어떻게 말을 만들면 될 거 같은데... 손님들이 어떻게 오는 거야? 그냥 마음대로 왔어?
- 거기는 예약제였어.
- 예약제, 예약제라구... 흠...
연인은, 그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그런 연인의 모습을 보며, 그도 정신을 차리고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잠시 뒤,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 (내키지 않지만) 어... 만약에, 원래는 예약제가 아니었는데... 예약제 도입을 제안했다고 하면...
- (눈을 반짝이며) 그거야!
- (내키지 않는다) 근데 거기 원래 예약제였는데...
- 그냥 그랬다고 해. 이 정도 부풀리는 건 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 흠... 이건 거짓말하는 건데...
-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 같은데. 말을 잘 만들어서 대답하면 돼
- 원래 예약제가 아니었는데, 제안해서 예약제로 바꿨다라...
그는 지금껏 자기소개서에 거짓을 작성한 일이 없다. 그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모두 '사실' 기반이었다. 하지만 그도 잘 알고 있다. 대부분 취준생들의 자기소개서는 그야말로 '자소설', 스스로 상상해서 쓰는 소설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든 돋보이려,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오죽하면, 이력서만 놓고 보면 전부 다 동아리 회장이었다는 말이 나올까. 오히려 기업들도, 거짓이 탄로 나지 않는 선이라면 어느 정도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자소설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는 그러한 사실에 나름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거짓말을 적고 싶진 않지만, 면접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딱히 떠오르는 다른 대안이 없다. 영업 직무 관련하여 새로운 관점을 도입한 경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를 하면서 고객을 위해 새로운 프로세스를 제안했다는 스토리보다 더 나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연인의 의견을 따른다.
연인은 그보다 훨씬 더 치밀했다.
- 그래도 물어볼 수 있으니까, 제대로 준비는 해야 해.
- 그렇지.
- 그 레스토랑, 하루에 얼마 정도 벌었어?
- (전혀 모른다) 카운터는 내가 담당하질 않아서...
- 그래도 이 정도 팔았을 거다 예상할 수 있잖아
- 제일 비싼 메뉴가 150불? 싼 거는 20불이었으니까 평균 80불이라고 하고... 테이블 5개에 자리가 평균 9개니까 45석... 식사가 1시간씩이니까, 풀로 채운다고 하면 하루에... 10800불? 술까지 하면 더 벌겠네. 근데 자리 꽉꽉 채운 적은 거의 없었어.
- 그럼 혹시 물어보면, 하루 평균 1만 불 팔았다고 하자
- 계산해보긴 처음이네.
그는 연인이 똑 부러지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 (종이에 적으며) 그럼 내용을 한번 써보면... 원래는 예약제가 아니어서... 손님들이 따로따로 왔을 때 테이블 여러 개에 나눠서 앉혀야 했다.
- 아냐, 웨이터니까, 고객들한테 불편 사항을 들었다고 해.
- ?! 그럼, 기존 방식으로 하다 보니, 고객들이 불편하다고 했다. 어... 자리가 정해지지 않아서, 웨이터들도 일하기 힘들었고. 음... 손님들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느꼈다?
- 그렇지. 그래서 웨이터로서, 그런 고객들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 (감탄한다) 저는 웨이터로서, 고객들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그래서 예약제를 건의했습니다.
- 사장이랑, 다른 동료들이랑 다 같이 상의했다고 하는 게 낫지 않아?
- 제안한 게 아니고?
- 제안하긴 했는데, 다 같이 결정했다고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 (적으며) 모두 모여 논의했습니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고객들이 만족했습니다.
- 그렇지
- 너무 거짓말 아냐?
- 이 정도는 괜찮다니까
-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잘 만들어?
- 대충 보니까, 이런 식으로들 하는 거 같은데?
그의 연인은 아직 취업 준비에 돌입하기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이 말하는 방향은 취업 컨설턴트나 유튜버들이 말하는 방향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역시 연인이 안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약 두세 시간 정도 뒤, 연인의 도움을 받은 그의 자기소개서가 완성된다. 이전까지 서류 난사를 위해 복사-붙여넣기했던 자기소개서와는 차원이 다른, 오로지 33번째 기업을 겨냥한 자기소개서다. 거짓이 약간 보태져 있긴 하나, 검증은 불가능할 터다. 그는, 취업 준비 기간 최초로 자신의 자기소개서의 모든 문항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가 수정하여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아래와 같다.
1. 주도적으로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
-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 (기존 제출 자기소개서 그대로)
2. 다른 사람과의 마찰을 피하지 않고 갈등을 극복하여 목표를 달성한 경험
- 공놀이 동알 경험 (기존 제출 자기소개서 그대로)
3. 고객 중심적 관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접근한 경험
- 기존 가전제품 수리 -> 워킹홀리데이 웨이터 경험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자 - 방문제에서 예약제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중 웨이터로 일했을 때의 경험입니다. 기존에는 방문제로 운영되었던 레스토랑에서 예약제를 건의하여 사장 및 동료들과 함께 논의한 끝에 운영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기존에는 고객이 방문한 순간부터 준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레스토랑이 전반적으로 분주했습니다. 또한 어떤 고객이 언제 올지 예상할 수 없으니, 자리가 비어 있더라도 이미 도착한 고객들을 위해 철판요리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코스 형식으로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요리가 시작된 이후 뒤늦게 합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웨이터로서 저는 고객들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리가 이미 시작되어 빈자리가 있음에도 기다리고 있다거나, 분주함으로 인해 레스토랑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사인 레스토랑 주인에게 예약제를 건의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감 이후 사장과 직원들이 모두 노여 논의했습니다. 함께 논의한 끝에, 예약을 받을 때 미리 인원수와 특이사항 등을 파악해두면 기존 방문제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예약제 운영을 알리자, 예약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장은 예약을 받을 때 미리 인원수, 특이사항 등을 파악하여 자리를 배정하고 웨이터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웨이터들은 미리 자리를 세팅하고, 예약 시간에 맞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자리로 안내했습니다. 손님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특이사항에 대해 미리 숙지하고 있는 웨이터들의 서비스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고객 중심적 관점에서 불편을 해소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예약제를 제안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과 논의함으로써 예약제를 더욱 정교한 형태로 다음을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에 대한 고민의 중요성, 그리고 구성원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입니다.
4. 성장과정
- 성장과정 (기존 제출 자기소개서 그대로)
5. 33번째 기업 관심 가진 계기와 포부
- 기존 실물경제 이바지 -> 33번째 기업 겨냥 자기소개서
[단단한 뿌리를 기반으로 뻗어나가는 33]
나무 제조업이라는 단단한 뿌리를 기반으로, 성공적으로 뻗어나가는 33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신사업 진출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기반이자 뿌리는 33의 나무 제조업 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3은 목질판상재, 건자재 등을 거쳐 지속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보드영업팀에서 일하며, 33의 뿌리와 내실을 다지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33의 성장에 기여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영업인]
1년 차 : ~~~~하겠다
1~3년 차 : ~~~~하겠다
3~5년 차 : ~~~~하겠다
개인적인 포부 : 매출 1조를 달성하고, 33의 임원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6. 지원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
- 기존 읽은 도서 목록 -> 제품군 정리 추가
[정리와 분석 - 읽은 도서, 33기업 제품]
관심 있는 분야를 정리하고 분석한 경험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읽은 도서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질 높은 독서를 위해서, 독서 현황을 정리하고 파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작성 기준으로는 사서들이 사용하는 십진분류법을 사용했습니다. 읽은 도서 목록 작성을 통해, 저만이 '독서 빅데이터'가 생성되었습니다. 어떤 분야를 많이 읽었는지, 어떤 분야가 부족한지, 재밌게 읽은 책들은 어떤 분야에 몰려있는지 등 분포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33기업의 제품군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영업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사 제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홈페이지오 뉴스 등을 통해 정보를 얻었습니다. 33기업의 세 가지 제품(PB, MDF, MFB), 신소재 보드인 나프, 전방산업인 마루 등의 건자재에 대해 알아보고 정리하며 이해를 넓혔습니다.
읽은 도서 정리를 통해 독서 현황을 파악하고 독서의 질이 높아진 것처럼, 33기업 제품 정리를 통해 제품과 친숙해지고 이해를 높였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교훈은, 입사 후 영업 직무를 수행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연인과 함께 작성한, 마음이 든든해지는 자기소개서들을 바탕으로 면접에 임할 예정이다. 하지만 면접관들이 해당 내용에 관심을 보일지, 아니 자기소개서를 읽어보기는 할 지의 여부는 두고 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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