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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87 - Lennox Head

 브리즈번은 퀸즐랜드 주(Queensland, QLD)에 속하고, 바이런 베이는 뉴사우스웨일즈 주(New South Wales, NSW)에 속한다. 그는 바이런 베이에 도착한 시점부터 이미 퀸즐랜드를 벗어나 뉴사우스웨일즈에 진입했다. 스카이다이빙도 끝났으니, 그는 남쪽으로 여정을 계속한다.

 

 그가 구글 지도를 보니, 해안가 여기저기에 여러 이름들이 있다. 주로 무슨무슨 비치, 무슨무슨 헤드, 무슨무슨 룩아웃(lookout)이라는 이름들이다. 검색해보니 하나같이 경치가 좋고 수평선이 보이는 장소들이다. 전부 다 가볼 수는 없다. 그는 경로상 가장 가까우면서도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본다. 그의 선택은 Lennox Head다.

 

 바이런베이에서 남쪽, 차로 30분 거리다. Lennox Head는 커다란 절벽, 해변, 행글라이딩을 시작하는 언덕 등으로 구성된다. 해변은 이미 많이 보았으므로, 절벽 쪽으로 향한다. 그는 사실 바다보다는 산이나 언덕을 좋아한다. 

 

 차를 세워놓고 절벽 쪽으로 걸어간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언덕에는 노란색 풀과 초록색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 이외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는 자신이 홀로 이 언덕을 독차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점점 더 절벽 끝으로 향하니, 약간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이 절벽에는 펜스나 안전장치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절벽은 굉장히 높아서, 떨어지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는 절벽에 도달하자, 앉은 상태로 조금씩 이동한다. 극한의 끄트머리까지 가고 싶다. 물론 떨어질 생각은 없다. 절벽 끄트머리에 앉아, 슬리퍼 신은 두 발과 전경을 찍는다. 눈으로 보이는 스케일과 경치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는 절벽 끝에 앉아서, 여기서 떨어지면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아서, 전 국토가 개발되어 있다. 자연경관이 좋은 곳, 산 정상이나 절벽에는 언제나 펜스나 철제 난간, CCTV 등이 설치되어 있다. 호주는 한국과 정반대다. 땅이 엄청나게 넓은데 인구는 적어서, 국토를 전부 개발할 수가 없다. 무슨무슨 헤드/룩아웃 정도의 이름만 붙이고, 자연 그대로 놔둔다. 넓은 땅덩어리를 모조리 돌아다니며 관리할 수 없으니, 방치하는 수준에 가깝다.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으나, 자연 그대로인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그는 Lennox Head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이곳을 자신만의 관광 명소로 삼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경치가 좋은 장소에는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또 평생 돌아다니면 한국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다. 호주는 다르다. 땅이 너무 넓고, 가볼 곳이 너무 많다. 평생 돌아다녀도 호주 대륙의 해안가를 샅샅이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장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장소는 이렇다. 그는 한 산(언덕)을 오른다. 산은 그에게 쉽게 등반을 허락하지 않는다. 올라가면서 여러 난관에 부딪히고, 너무나도 힘들다. 묵묵히 고행을 하듯 산을 오른다. 등반이 힘들수록 정상에서의 쾌감은 더 짜릿하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울창했던 나무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시야가 탁 트인다. 그의 눈앞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하게 펼쳐진 지평선과 붉은 노을의 태양이다. 장관이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당황스럽다. 왜 이러지? 그만큼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뜻이리라. 그는 이 산을 자신만의 '성지'로 삼는다. 이후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순례하듯 이 산을 오른다. 정상에 올라, 자신을 감격시켰던 자연과 소통한다.

 

 

 그는 만화와 영화를 많이 봐서, 이런 상상력이 꽤나 풍부하다. 만화나, 영화 속의 CG로 구현한 환상적인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로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나온 적은 없다. 지금 Lennox Head도 멋지긴 하지만, 그의 성지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스카이다이빙을 떠올리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카이다이빙은 자유낙하이기 때문에 경치를 즐길 시간이 짧다. 행글라이딩이 괜찮아 보인다. 행글라이딩, 아니면 충분히 높은 산에 오르면 그가 상상했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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