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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89 - 카지노

 콥스 하버에서 500km, 5시간을 내리 달린다. 면접을 보러 갈 생각에 그는 기분이 좋다. 이미 합격해서 시드니에 정착한 기분이다. 그와 캠리는 마침내 시드니에 도착한다. 면접이 잡힌 일자리는 카지노 청소부이고, 면접은 바로 이튿날이다. 그는 핸드폰으로 카지노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함과 동시에, 무도회장에서 청소했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나름의 면접 준비를 한다.



 한국은 도박이 불법이지만, 호주는 합법이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정한 구역(강원랜드)에서만 도박을 할 수 있지만, 호주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즈번 / 시드니 / 멜버른 등 호주의 주요 도시에는 모두 카지노가 있다. 그가 만일 면접에 통과한다면, 시드니 카지노에서 청소일을 하게 될 것이다.


 카지노 건물은 어느 도시든 예외 없이 거대하며 화려하다. 너무 커서, 도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카지노 건물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밤이 되면, 카지노 건물은 오색 찬란한 조명들로 빛난다. 영화에서 봤던 라스베가스 같은 느낌이다. 황금색 비슷한 노란 조명이 카지노 건물 전체를 감싸듯이 한다. 이렇듯 카지노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유혹한다.  


 카지노 내부로 입장하면 여러 게임을 할 수 있다. 세 개의 슬롯이 돌아가면서 777을 맞히면 대박이 터지는 기계, 바닷속 물고기들이 화면에 나오는 기계(이를 '바카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딜러가 있는 블랙잭, 주사위를 던져서 어떤 색깔의 칸에 멈추는지 맞추기 등 다양한 게임이 벌어진다. 화려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모두 게임에 열중한다. 환호하기도 하고, 머리를 감싸쥐기도 한다.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면서 음료 등을 서빙하고, 여기저기에 검은 양복을 입고 귀에 무전기를 낀 경호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카지노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워홀러도 마찬가지다. 그는 워홀러 커뮤니티에서, 카지노 관련 후기를 많이 보았다. 그중 10만 불을 땄다는 후기가 꽤 있다. 10만 불이면, 정확히 따지면 8500만원이지만 환율이 1,000원이 넘어가면 1억이 넘는 돈이다.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10만 불을 땄다는 워홀러가 종종 있다. 문제는 그 돈을 그대로 통장에 넣고 저축할 만한 자제력이 있느냐다.


 워홀러들의 카지노 후기 중, 카지노에서 딴 돈을 저축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아예 없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땄던 돈을 모조리 다시 잃는다. 그는 이런 후기를 볼 때마다, 그 돈이 너무나도 아깝다. 차라리 그 돈을 그에게 줬으면 한다. 만일 그가 10만 불을 딴다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은행에 저축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는 카지노에서 베팅 자체를 하지 않는다. 10만 불을 따는 워홀러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도박에 대한 이해가 약간 있는 이들이다. 그는 도박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으므로, 10만 불을 딸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는 카지노에 1000불을 걸었다가 모조리 날려버리는 상상을 해본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가 도박판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자제력이 아니라, 돈이 아까워서다.


 카지노, 도박 중독은 무서운 것이다. 카지노는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저녁 개장 시간이 다가오면, 벌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 중에는, 한국인 워홀러나 유학생도 적지 않다. 그가 본 최악의 사례는 이렇다. 유학생인데, 한국의 가족들이 보내준 학비를 카지노에서 모조리 날렸다. 가족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으니, 새벽 청소일을 하면서 잃어버린 학비를 충당해서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카지노 측에서는 나름의 배려로, 입장 금지 요청을 받는다. 자신이 카지노에 너무 중독되어서 도저히 끊을 수 없겠다 싶을 경우, 카지노에 입장 금지 요청을 하면 경호원이 입구에서 해당 인원의 출입을 막는다. 이는 슬프면서도 화가 나는 일이다. 어느 정도로 절제력을 잃어야, 자신의 입장을 막아달라고 카지노에 요청을 하는 지경에 이를까. 도박에 빠져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카지노에 입장 금지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입장 금지 조치는, 해당 카지노에만 적용된다. 스스로 자원해서 입장 금지 조치를 당한 이후에도 도박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시를 옮겨서 새로운 카지노에서 다시 도박에 손을 댄다. 도박을 그만두겠다며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 뒤에도 도박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지노는 위험하다. 카지노를 운영하는 이들은 자원봉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게임의 확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조정한다. 방문객이 처음 몇 번 돈을 따는 것은 카지노 측의 영리한 전략이다. 돈을 따면서 자제력을 잃고, 판돈을 계속 키우게끔 만들어 결국은 본전까지 모조리 잃게 만든다.



 카지노는 위험하지만, 카지노에서 일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카지노는 대부분 레스토랑, 음식점, 발레파킹 등 다양한 서비스와 연동되는 구조다. 아주 가끔, 워홀러들에게도 이 구조에 파고들 자리가 열린다. 소수의 워홀러들이 카지노에서 웨이터, 발레파킹 요원 등으로 일한다. 카지노 일은 안 그래도 시급이 20불이 넘어 센 편인데, 여러 부수입이 생긴다. 가끔씩 기분 좋은 부자들에게서 팁을 받거나, 누군가가 흘린 칩을 줍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팁이나 주운 칩이 몇 백불에서 천 불을 호가한다고 한다. 일주일치 시급에 준하는 돈이다.


 그는 카지노에 대한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면접이 더욱 간절하다. 청소잡이긴 하지만, 카지노에서 청소를 하다보면 여러 부수입이 생길 터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카지노에서 일하며 새로운 경험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시드니 도심 생활도 즐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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