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운전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이따금씩 그는 속도를 시속 120~140km까지 높인다. 운전 초보인 그도, 속도에 따른 차량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속도가 빠를수록, 차체의 흔들림이 커진다. 시속 100km를 넘어가면 그는 점점 겁이 난다. 속도가 너무 빠르고, 조그만 핸들 조작에도 차체의 흔들림이 크다. 잘못해서 핸들을 휙 꺾어버린다면, 차량 전체가 뒤집힐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는 140km에 도달해도 결코 오랫동안 지속하지 않는다. 전후방에 차량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가끔 용기를 내어 밟아볼 뿐이다.
그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졸음 쉼터에 차를 세운다. 이곳이 그가 하룻밤을 보낼 장소다.
호주는 땅덩이가 크지만,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도시 주변과 해안 도로는 차들이 어느 정도 다니지만, 밤이 되면 차들이 점점 줄어든다. 그가 지금 운전하고 있는 캔버라 - 멜버른 사이 도로는 해안가가 아닌 내륙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한적하다. 이따금씩 크고 기다란 화물트럭들이 지나간다.
화물트럭들은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반짝이고 거대하다. 저 트럭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가 일했던 육가공 공장은 호주에서 꽤 유명하다. 호주의 독과점적 지위를 가진 식료품점, Coles에 고기를 납품한다. Coles는 호주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으니, 육가공 공장에서 가공된 고기들은 화물트럭들을 타고 호주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혹시라도 화물트럭을 운전할 수 있거나, 아니면 화물트럭 기사와 친해진다면 몰래 뒤에 타서 호주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으나, 너무 희망찬 상상이기 때문에 그는 이내 접는다.
운전에 익숙해졌다곤 하나, 장거리 운전은 피로를 동반한다. 그는 아직 운전할 때 긴장 상태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한다. 초저녁 시간이지만, 잠이 솔솔 쏟아진다. 그는 비상식량인 파스타를 먹고, 간이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해결한다. 뒷좌석에 걸어놓은 수건으로 얼굴과 손의 물기를 닦은 뒤, 운전석 좌석을 끝까지 뒤로 젖힌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이번 여행에서 더욱 확실해졌다. 캠리는 그의 집이자 아지트다.
카박을 할 때 편안하게 잠을 자기 위해서는 조수석이나 뒷자리에서 자야 한다. 운전석에는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이 있기 때문에, 발에 거치적거린다. 그래서 카박 경험이 많은 운전자들은, 운전석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카박 초보이기 때문에, 아직 이 요령을 알지 못한다.
조심스러운 그의 성격도 한몫한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만일 그가 자고 있는 동안, 괴한들이 침입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가 만일 조수석이나 뒷자리에서 자고 있다면, 조종석이 무방비 상태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운전석에 앉아 있다면 차량 탈취를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다. 시나리오가 이렇게 그려지자, 그는 운전석에 굳건히 버티고 앉아 잠을 잔다.
등받이를 최대한 수평에 가깝게 눕혔지만, 누워서 잔다기보다 앉아서 자는 것에 가깝다. 그는 쉽게 잠에 빠져들긴 했지만, 자세가 불편해 몇 시간 뒤 깬다. 허리와 엉덩이, 특히 목이 뻐근하다. 썩 유쾌하지 않은 아픔과 뻐근함이다. 그는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졸린 눈을 비비며, 온몸을 기지개 켜듯 쫙 편다. 한 결 낫다. 퉁퉁 부은 눈틈 사이로, 새벽 밤하늘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눈이 커진다.
고속도로 옆 졸음 쉼터에서 그가 본 새벽 밤하늘은 거대하고 또렷하다.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으니, 매연과 공해가 덜한 덕이리라. 그는 밤하늘과 교감을 시작한다. 그동안 보았던 밤하늘과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워킹 기간을 통틀어, 그가 기억하는 밤하늘은 총 4개다. 지금 보이는 밤하늘은 4개의 밤하늘 중 세 번째 밤하늘이다. 브리즈번에서의 밤하늘이 첫 번째, 바이런 베이에서가 두 번째, 이곳이 세 번째다.
이 밤하늘은, 은하수 같은 별들의 띠가 보인다. 별들은 어느 지점에 더 밀도 있게 모여 있다. 그리고 그 밀도 있는 부분이 계속 이어져서, 은하수 같은 띠가 형성된다. 그는 넋이 나가서 별들과 밤하늘을 바라본다.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황홀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슬퍼진다. 슬퍼진 이유는 외로움이다. 그는 홀로 여행하는 것을 동경했고, 추구해왔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나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브리즈번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그도 결국 인간이며, 사회적 동물이다. 계속된 여정에서, 혼자 음식을 먹고 혼자 운전하고 혼자 명소에 방문하는 것의 장단점을 모두 알게 되었다. 자유롭고 눈치 볼 것이 없어서 좋다. 하지만, 좋은 순간을 함께 나눌 이가 없다. 맛있는 음식, 멋진 장소, 멋진 광경을 보아도 그는 혼자 속으로 감탄하고 돌아선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그가 경치를 찍거나 셀카를 찍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는 브리즈번에서 멜버른까지 혼자 여행하면서, 말수도 조금 줄었다.
그가 꿈꿔왔던 나홀로 여행을 직접 해보며, 장단점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는 이번 여행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여행을 끝낼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보고 느끼고 생각에 잠기는 것은 이쯤이면 됐다. 나홀로 여행은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다.
이튿날 아침, 그와 캠리는 멜버른을 향해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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