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는 호주의 수도다. 시드니가 워낙 유명해서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오해다.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다.
호주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런 오해가 생길 만하다. 캔버라는 크기에서 8번째 도시로, 호주의 다른 대도시들보다 작다. 실제로 호주의 수도를 정할 당시, 시드니가 거론되었는데 멜버른이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멜버른도 나름 규모가 있고 역사가 깊은 도시이기 때문에, 시드니와 멜버른 두 도시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두 도시 모두 수도가 되지 못하고, 시드니와 멜버른의 중간 지점인 캔버라가 수도로 결정됐다. 수도 논쟁은 끝났지만, 시드니와 멜버른의 경쟁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도시 홍보 문구를 보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두 도시의 경쟁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시드니는 자신들을 호주 제1의 경제 도시라고 홍보하고, 멜버른은 자신들을 호주 제1의 문화 도시라고 홍보한다.
캔버라가 수도로 지정되었지만, 시드니와 멜버른 수준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다. 캔버라는 단순히 수도라는 타이틀을 가진, 호주 국가 기관들이 밀집된 도시라고 보면 된다. 캔버라(수도), 시드니(경제), 멜버른(문화)의 3두 마차인 셈이다.
그가 캔버라에서 도착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건설 현장이다. 아직 도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캔버라 여기저기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캔버라의 도로와 광장은 깔끔하고 넓다. 다른 도시에 비해 인구도 적기 때문에, 안 그래도 넓은 도로와 광장이 더 넓게 느껴진다.
호주는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특히 건축이나 도시의 모습에서 서구적 모습이 짙게 나타난다. 구글맵에서 캔버라를 보면,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대칭 형태를 이룬다. 직선인 메인 도로가 동그랗게 퍼지면서 회전 교차로를 이루는 지점이 있는데, 이곳이 City hall이다. 회전 교차로가 만든 둥근 원(City hall) 안에는, 잔디밭과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회전 교차로의 출구들은 캔버라 이곳저곳으로 퍼진다. 회전 교차로에서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메인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호수를 건너게 된다. 이 호수를 건너면, 마찬가지로 회전 교차로가 나온다. 다만, 호수 이전 City hall의 회전 교차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커다란 회전 교차로다. 회전 교차로라기보다는, 원 형태의 도로라고 보는 것이 낫다. 이 두 번째 거대한 원형 부지는 Capital hill이다.
City hall은 조그마한 언덕 정도가 들어가 있는 원형 부지라면, Capital hill은 건물이 여럿 들어가 있다. Capital hill에는 의회, 의회 도서관, 회의실 등의 건물과 풀밭이 조성되어 있다. Capital hall이라 불리는 원형 부지는, 과장을 약간 보태서 한국의 국회의사당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다.
City hall에서는 일반적인 도시의 느낌이 강한 반면, 물을 건넌 후 Capital hill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국가 중심부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시야를 막는 건물이 없고, 눈을 들어 보이는 가장 높은 것이 호주의 국기다. Capital hill은 이름 그대로 언덕이기 때문에, 지반이 높다. Capital hill에서는 캔버라 전역을 바라볼 수 있다. 중간에는 호수가 있기 때문에, 캔버라 시내(City hall)와는 구분된 느낌이 든다.
1. 일직선의 메인도로
2. 메인도로를 기준선으로 삼은 대칭형의 도시
3. 직선인 메인도로 끝부분에 위치한 작은 원(City hall)과 큰 원(Capital hall)
캔버라가 가진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캔버라는 상당히 정돈된 느낌을 준다. 수도이기 때문에 더욱 질서정연하게, 정교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캔버라의 모습이 낯설긴 하지만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유럽의 건축 양식과 평면을 이야기할 때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보여주는, 바티칸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이 생각난다. 캔버라의 전체적 구조와 평면은, 성 베드로 광장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캠리를 운전해서, Capital hill을 몇 번이고 빙빙 돈다. 물을 건너야 하고, 경사진 언덕을 올라야 한다는 공간적 특성상 Capital hill은 운전자에게 신비로움과 압박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는 의회 건물에 가까이 가고 싶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출입이 허가되는지도 불확실하다. 굳이 국가 기관 가까이 가서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그는 그저 천천히 Capital hill을 빙빙 돈다. 그의 캠리 이외에는 차가 거의 없어서, 그는 자신이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을 들어온 것이 아닌지 살짝 겁이 난다.
몇 차례 돌고 난 뒤, 그는 Capital hill을 빠져나온다. 캔버라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정교하게 계획된 듯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캔버라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좌우 얼굴과 헤어스타일이 완벽하게 대칭에, 너무 정돈된 사람이라는 느낌이랄까. 사람 냄새가 덜 느껴진다. 그는 사람 냄새가 더 느껴지는 곳에서 살고 싶다. 운전하면서 본 건설현장이 많긴 하지만, 그는 이미 멜버른으로 마음을 굳혔다. 캔버라는 딱딱한 도시라고 생각하며, 그는 짧은 수도 투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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