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운동을 시도하려고 찾다가, 실내 클라이밍을 했다. 전부터 암벽 등반 영상이나 일본 만화 '고고한 사람' 등을 보며 조그마한 관심은 있었지만, 실제로 시도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네이버에서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클라이밍장으로 갔다. 처음 하는 사람은 기초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에 1일 체험권을 구매해야 한다. 여러 클라이밍장을 비교해보니 하루 체험권 가격은 2만원 ~ 3만원 선이었다. 운동 복장과 양말(등반화를 신어야 하므로), 샤워 시 필요한 수건을 챙겨가야 한다.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등반화를 신었다. 볼링장에서 신발을 처음 신었을 때와 기분은 비슷하지만, 신발은 볼링화와 많이 다르다. 클라이밍 특성상, 발에 타이트하게 맞는 신발을 착용한다. 관장에게 클라이밍 입문 강좌를 들었다.
1) 개구리처럼 옆으로 이동하는 클라이밍
2) 볼더링 - 등반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Start 홀더에서 Top 홀더까지 같은 색깔의 홀더만 이용하는 등반법, Top 홀더를 두 손으로 잡고 3초 이상 버텨야 성공이다.
실내 클라이밍장 사진을 보면, 벽에서 돌출되어 잡거나 밟을 수 있는 까끌까끌한 돌이 있는데 이를 홀더라고 부른다. 홀더의 색깔이 다양한데, 등반 시에는 같은 색깔의 홀더만 이용해야 한다. 제한된 공간에 여러 난이도의 등반 루트를 구현하다보니 생긴 공간적 한계인 듯하다.
등반 시에 무게 중심은 허리에 두고, 두 다리 사이에 무게 중심이 오게끔 하여, 무게 중심을 두 다리로 지탱하는 삼각형을 만든다. 발은 축구에서 인사이드 킥을 하듯 벽에 붙이며, 허리와 코어에 긴장을 준 상태로 엉덩이를 집어 넣어 상체를 일자로 만들고 손으로 매달린다. 이동할 때는 무게 중심을 계속 두 다리 사이에 있도록 유념하며 조금씩 이동한다. 무게 중심이 한 쪽으로 쏠리거나 다리 밖으로 나가버리면, 몸이 돌거나 두 다리가 벽에서 떨어져 팔로만 버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숙련자라면 무게중심을 자유롭게 다루는 고난이도 동작도 가능하겠지만, 초심자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떨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더라도 힘을 낭비하게 되어 완등 이전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암벽 등반 선수들이나 관장을 보면 등과 팔 근육이 쩍쩍 갈라지고 잘 발달해 있어 우선 눈에 띄지만, 그가 판단했을 때 더 중요한 것은 하체이며 그분들의 하체 또한 잘 발달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아무리 숙련자이고 선수라 하더라도 줄에 매달려 팔과 상체 힘으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김자인 선수나 다른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봐도 등반 중간중간에 팔을 쉬어주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결국 클라이밍은 두 다리가 탄탄하게 지지해주는 가운데, 얼마나 팔과 상체의 근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완등 때까지 상체의 피로도를 최소화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암벽을 오르는 것과 동일하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잘 내려오는 일이다. 그가 이 날 체험했던 클라이밍장은 2층 높이의 절벽이었는데, 관장은 내려올 때 벽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다. 뛰어내릴 때 중요한 것은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경사에서 떨어져야 한다는 것. 경사에는 까끌까끌한 홀더들이 수없이 박혀 있기 때문에, 떨어지다가 홀더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큰 부상을 입을 것이 자명하다. 손과 발로 벽을 밀어내며 점프해서, 아래 깔려있는 푹신한 매트 위로 떨어져야 한다. 매트에 떨어질때는 발 - 엉덩이 - 등 순으로 떨어지며 굴러야 하고 당연히 손을 사용하면 안 된다. 손을 짚으면 골절상을 입을 것이다.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떨어지는 동작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고작 2층 높이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가 떨렸다.
떨어지는 상황은 완등을 해서 내려오기 위해서이거나, 힘이 빠져 도저히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경우 두 경우일텐데, 초심자인 그로써는 힘이 빠졌을 때의 경우가 많았다. 어느 정도 등반한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가 떨리는데, 홀드를 잡은 손에 힘은 빠져간다. 떨어지리라는 것을 직감했을 때부터 신속하게 착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오르는 것과 내려오는 것을 배웠으니, 알맞은 등반 루트(난이도)를 설정해야 한다. 등반 루트는 하얀색 - 무지개색 - 검은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얀색이 가장 쉬운 난이도의 길, 검은색으로 갈 수록 어려운 난이도의 길이다. 조금 헷갈렸던 점은 루트(난이도)의 색깔과 홀더의 색깔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빨간색 홀더만 이용하는 하얀색 루트 / 빨간색 홀더만 이용하는 주황색 루트 이런 식이다. 루트는 따로 표시하지는 않고 Start 홀더와 Top 홀더에만 표시를 한다. 홀더에 하얀색 스티커로 'S'가 붙어 있으면 그 홀더는 하얀색 루트 시작점이고, 하얀색 'T'가 붙어 있으면 해당 홀더가 하얀색 루트의 목적지(Top)다. 같은 색깔의 S에서 T까지, 정해진 색깔의 홀더만 사용하여 등반해야 한다.
그가 관장에게 물어보니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한 사람들 중 하루 만에 가장 많이 등반한 사람이 초록색 루트까지 갔다고 했다. 흰 - 빨 - 주 - 노 - 초 를 하루에 섭렵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하얀색 난이도부터 시작했다. 하얀색 난이도와 빨간색 난이도는 그럭저럭 완등했다. 하지만 주황색 난이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주황색 난이도에 빨간색 홀더를 사용하여야 했는데, 마지막 홀더를 한 손으로는 잡을 수 있었으나 다른 한 손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거의 6번은 시도한 것 같다. 관장이 그에게 잘 되고 있느냐 물었고, 그는 이 루트가 잘 안된다 말했다. 관장은 잠깐 보시더니 등반을 시작하셨다. 몸이 정말 가볍고 등반을 쉽게 쉽게 하시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2분? 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그가 쩔쩔 매던 구간을 완등해 버리셨다. 허탈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느냐고 물었고 관장은 "쉬운 거니까?" 라고 답했다.
클라이밍을 해보니 클라이밍의 그 맛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을 몰아쉬는 그런 클라이밍을 생각했으나 실제 클라이밍은 많이 달랐다. 일단 온 몸이 땀으로 젖고, 온 힘을 다 쓰며 클라이밍을 할 수가 없다. 클라이밍은 그렇게 모든 체력을 쏟아내는 동적인 운동이 아니라, 정해진 코스를 완등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근력을 어떻게 안배할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정적인 운동에 가까웠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쥐어짜내고 난 후 '운동 잘 했다' 하며 샤워하는 것이 아니라, 등반 후 다음 등반까지 다리와 팔, 근육들을 충분히 쉬어주어야 했고 완등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는지 판단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골프와도 유사하나 골프보다는 동적이라 하겠다.
골프도 해당 코스를 Par 이내에 끝내기 위해 몇 번의 스윙을 할 것이며, 어느 경로로 갈 것이고 이번 스윙에는 어느 정도는 날려 주어야 한다는 식의 구상이 굉장히 중요하다 들었다. 한 때 골프가 무슨 운동이냐며,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는 것만이 운동이라 생각했던 그였지만 한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정말 무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비록 초심자이지만, 그가 경험하고 느낀 실내 클라이밍은 다른 일반적인 운동과는 조금 달랐고 유튜브로 보면서 받았던 느낌과도 많이 달랐다. 그는 선수들 영상과 유튜브를 보며 클라이밍이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두 팔로만 매달려 가기도 하고(톰 크루즈가 영화에서 했듯), 멀리 떨어진 홀드로 도약해서 잡기도 하는(관장은 이를 다이노 동작이라 했다) 격렬하고 동적인 운동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클라이밍은 아무래도 생존과 직결되는 스포츠이다 보니,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렇기에 계획과 계산이 치밀한 운동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주어진 여러 한계 속에서 여러 방법을 구상하며 안전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 루트를 완등하는 것이 클라이밍의 묘미라 생각한다. 이러한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있기에 클라이밍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져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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