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데이빗, 단 둘이서 건물을 철거한다. 그는 건물 철거 일을 시작한 이후로,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데이빗과 함께 일한다. 엄밀히 따지면 데이빗은 사수, 그는 부사수인 셈이다. 하지만 데이빗은 이러한 상하관계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데이빗과 일할 때, 전혀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데이빗은 그를 동료로 대한다. 하지만 그런 데이빗도 남사장을 대할 때는 약간 조심하는 것이 보인다.
데이빗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며, 눈동자가 갈색인 백인이다. 머리는 군대 머리처럼 박박 밀었는데 약간 M자 탈모 형태가 보인다. 심하진 않으나 징조가 보인다. 데이빗은 대마초를 피우는데, 절제된 형태로 대마를 즐긴다. 담배를 말아서 필 때, 대마를 살짝 섞어서 피는 방식이다. 나이가 젊고, 대마초를 과도하게 피진 않아서 데이빗의 몸은 아직 보통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마를 계속해서 피면 그 빈도와 양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데이빗은 아직 대마초 흡연 초기이긴 하지만, 마른 편에 속한다. 데이빗은 보통 체격에, 키도 보통이다. 그의 눈에 보통이니, 호주인 치고는 체격이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호주인 치고 작은 것이지, 키는 170 중반이다.
데이빗은 항상 작업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다. 위아래가 한 벌은 아니지만 세트여서, 한 벌처럼 보이는 작업복이다. 호주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가장 전형적인 복장이다. 검은색이나 갈색 바탕에, 주황 형광색이나 노랑 형광색으로 포인트를 준 작업복이다. 대개 상의는 형광색이 많고, 하의는 검은색에 줄무늬 포인트로 형광색이 들어간다. 선글라스는 철거 시에 발생하는 먼지나 파편들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데이빗은 세네 벌의 작업복을 번갈아 입는 것으로 보인다. 주머니의 개수, 위치만 다를 뿐 전반적인 스타일이나 색깔은 같다. 데이빗은 항상 형광색이 들어간 작업복을 입고, 썬글라스를 끼거나 이마에 걸치고,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서 출근한다. 데이빗이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원선에 라디오를 연결해서 크게 틀어놓는 일이다. 한국도 그렇고 호주도 그렇고, 건설현장에서 라디오 방송은 필수다.
데이빗은 결혼했으며,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 어떻게 보면 신혼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은 그가 본 호주인들 중 몇 안 되는 '이혼하지 않은' 호주인이다. 그는 데이빗과 친해지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데이빗과 부인의 이야기가 압권이다. 데이빗은 부인을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클럽에서 대마를 피우면서 놀다가, 부인을 만났다. 첫 만남에 너무나도 불탄 나머지 데이빗과 부인은 클럽에서 나와 데이빗의 차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대마를 피워서인지, 시간 감각이 왜곡되면서 데이빗과 부인의 사랑은 도무지 끝나질 않았다. 마침내 사랑이 끝나기까지는, 약 4시간이 걸렸다. 데이빗과 부인이 차에서 내리는데, 차 주변에는 인파가 바글바글했다. 모두들 데이빗과 부인의 사랑을 목격한 것이다. 4시간 만에 차에서 내리는 데이빗을 보며, 인파들은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Yo~~~~~~Man~~~!!!!"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에 데이빗은 잘 모르겠지만 신이 나서 두 손을 들고 인파와 함께 소리를 질렀고, 데이빗의 부인은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가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데이빗은 그럴 수도 있다며,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답한다. 그는 속으로, 역시 호주인은 다르구나 생각한다.
데이빗은 그가 만났던 백인 중 가장 친근한 백인이다. 남사장과 조쉬 등 그가 만났던 다른 백인들도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그는 왠지 모를 벽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데이빗과 함께 있을 때는 그런 벽이 느껴지지 않는다. 데이빗은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관찰하고 배려하는 면이 강하다. 그는 데이빗에게 호주식 영어도 여럿 배운다. 그가 알고 있는 슬랭 faccy(까다로운)는, 데이빗에게서 배운 단어다. 데이빗은 그와 이야기할 때 일부러 호주식 슬랭을 섞어 말하기도 한다.
한 번은 그가 늦잠을 자서 현장에 늦은 적이 있다. 남사장은 일을 시작할 즈음 항상 데이빗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는데, 그가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중에 현장에서 그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니 군말 없이 듣는다. 데이빗은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다. 얼마 뒤 남사장이 자리를 뜨자, 데이빗이 그에게 말한다. 다음부터는 혹시나 늦게 된다면, 자신에게 미리 문자를 해달라는 것이다. 남사장이 직접 현장에 오지 않는 이상, 그와 데이빗이 말을 맞춘다면 남사장이 지각을 알아챌 수는 없다. 데이빗은 그에게, 혹시 자신이 늦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해달라고 말한다.
"I got your back, and you got my back, OK?"
데이빗과 그가 맺은 밀약이다.
데이빗은 자신이 예전에 석공(Stone Mason)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석공 일은 굉장히 쉬운데 돈은 더 많이 준다고 말한다. 커다란 돌을 해머로 깨부순 뒤, 깨진 돌조각들을 대충 시멘트로 이어 붙여서 돌담으로 만들면 엄청난 돈을 받았다고 한다. 데이빗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는 석공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데이빗은 여러 건설 일을 하면서 익힌 기술이 많은 듯하다. 데이빗은 조쉬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갖고 있는 기술과 경험을 따지자면 그리 크게 뒤처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쉬는 배관과 금속 쪽의 Specialist라면, 데이빗은 여러 방면에 두루 능통한 Generalist인 셈이다.
데이빗은 속도 제한 구역에서 15km/h 이상 초과해서 과속하다가, 마침 반대편에서 오던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그가 직접 경험하면서 깨달았듯,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 주(VIC)는 교통 법규에 있어서 결코 자비가 없다. 데이빗은 그 자리에서 면허를 6개월 정지당했다. 그가 데이빗을 만난 시점은, 면허 정지가 거의 끝나가던 시점이다. 지하주차장으로 외근을 갈 때는 면허 정지 상태였으나, 약 1개월 후 데이빗은 면허 정지가 풀리면서 다시 차를 몰고 다닌다. 데이빗의 차량은 트렁크가 길고 개방되어 있는 UTE로, 소형 트럭이며 노란색이다.
어느 날 그가 철거 현장에 도착하니, 데이빗의 차는 있는데 데이빗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차량 밑에 삐져나온 데이빗의 발을 발견한다. 데이빗은 차량 밑에 누워 차를 수리하는 중이다. 그가 기어들어가서 같이 보고 있으니, 데이빗은 이것저것 잡아달라며 부탁한다. 데이빗이 시키는대로 보조하긴 하지만, 그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데이빗은 차의 어떤 엑체가 새는 것 같다며 여기저기를 만진다. 데이빗이 어떤 관을 건드리자, 검은 액체가 나오기 시작한다. 데이빗은 기쁜 목소리로 찾았다며, 해당 부분을 수리한다.
데이빗은 친근하고 권위적이지 않아서, 그는 가끔씩 자신이 데이빗과 비슷한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데이빗의 숨겨진 내공과 기술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이 데이빗에 전혀 비할 바가 못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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