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남아있던 절반의 건물도 대부분의 벽이 허물어지고 나무 골조가 앙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데이빗은, 유일하게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차고를 철거하기 시작한다. 그와 데이빗은 일부러 차고를 놔두었다. 건물 부분은 이미 골조를 제외하고는 천장이 없어서 뻥 뚫려 있다. 일하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줄 지붕이 없다. 비가 올 때마다 그와 데이빗은 차고 아래로 대피한다.
차고는 SUV 두 대가 들어갈 정도로 폭이 넓다. 그와 데이빗은, 차고에 Wheel barrow와 여러 건축 폐기물을 쌓아두었다. 차고는 도로에 가깝고, 도로에 가까우니 폐기물들을 버리는 쓰레기통과도 가깝다. 폐기물들이 쌓여있긴 하지만, 그는 유일하게 지붕이 남아있는 차고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아늑함을 느낀다. 멜버른은 비가 자주 내리며, 특히 부슬비가 자주 내린다. 아예 비가 쏟아지면 일을 끝내면 되지만,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친다. 비가 내리면 그와 데이빗은 차고 아래에서 부슬비가 그칠 때까지 대기한다. 햇빛이 그대로인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며 그는 기분이 오묘하다. 바깥 날씨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묘미다.
차고 지붕의 마감재는, 그가 조쉬와 일할 때 접했던 슬레이트 지붕과 흡사하다. 그는 능숙하게 지붕 마감재를 뜯어내서 차고 아래로 던져버린다. 익숙한 일이어서, 데이빗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거뜬히 본인 몫을 해낼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 차고 건물 하나의 지붕 마감재 철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마감재를 모두 뜯어내자, 차고 지붕도 하늘이 뻥 뚫리고 앙상한 나무 골조만 남는다. 차고는 벽돌로 벽을 쌓아 올리고, 벽돌 사이에 나무 골조를 끼워 넣고 다시 벽돌을 쌓아 올리면서 회반죽으로 발라버린 구조다. 나무 골조는 벽을 이루는 벽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셈이다. 나중에 그와 데이빗이 벽돌벽을 허물 때도, 나무 구조를 벽돌벽에 고정하는 못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차고의 출입구는 셔터문이다. 전원 및 스위치가 연결되어서, 리모컨으로 자동으로 셔터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문이다. 그는 이 셔터문을 어떻게 철거할지 궁금했는데, 데이빗은 전기선을 뭉텅뭉텅 잘라버린 뒤 벽에 고정되어있는 나사만 제거해서 간단하게 셔터문을 떼어버린다. 처음 봤을 때는 막막했는데, 막상 데이빗이 하는 것을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에게 혼자 해보라고 하면 또 막막함이 밀려들 것이다.
차고의 크기가 크고 철거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는 차고 철거가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차고는 내부 공간에 계속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벽돌벽으로 간단하게 구조만 만들어 놓았다. 단열재와 창호는 아예 없고, 벽돌과 천장이 전부이니 철거가 빠르다. 그는 차고를 철거하면서 시원한 느낌도 들지만, 유일하게 비를 피할 수 있었던 아지트가 없어져서 섭섭한 느낌도 든다.
차고의 지붕 마감재를 뜯어내니, 지붕 마감재에 덮여있던 빗물받이가 보인다. 그와 데이빗은 빗물받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발견한 순간부터 차고는 물론 주택에도 남아있는 빗물받이의 철거를 시작한다. 그는 조쉬와 일하면서 빗물받이도 다루어봤으니, 자신만만하다. 그런데 이 집의 빗물받이는 조금 다르다. 조쉬가 사용한 빗물받이는, 모든 부분이 하나의 강철판으로 이루어진 빗물받이였다. 네모반듯한 빗물받이를 보며, 나사를 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빗물받이를 밟는다. 하지만 밟는 순간, 빗물받이의 밑창이 뚫려버린다. 그는 빗물받이 밑창이 뚫리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찰나에도 욕을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지붕에 디딘 다른 발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도 전에 그의 몸이 추락한다. 다행히도, 그는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지붕을 붙들고 매달린다. 빗물받이도 옆면은 지붕에 고정되어 있어서, 그는 한쪽 다리 전체가 뚫린 빗물받이 아래로 데롱데롱 매달린 채 간신히 버틴다. 이 주택의 빗물받이는 강철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가 밟아서 뚫린 부분은 종이와 석고보드인 듯하다. 애초에 그가 발을 디딘 곳은 빗물받이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빗물받이로 보이는 것이 있어도 발을 딛지 않는다. 이 날, 데이빗도 철판으로 보이는 부분을 발로 디뎠다가 추락할 뻔했다. 그의 옆에 있던 데이빗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옆을 돌아보니, 데이빗이 빠진 발과 몸을 빼올리고 있다. 천만 다행히도 둘 다 다치지 않았으니, 값진 교훈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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