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이후의 비자 발급은 일사천리로 진행됬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다.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몸 건강한 20대에게는 거저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하고자 했다. 그는 실패 사례들을 모조리 독파했다. 왜 그런 방법을 선택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전에는 그가 딱히 이런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인생의 단계를 밟아 나아가고 있는 데 대한 열등감인지, 그는 이번 워킹홀리데이에서조차 무언가 얻지 못한다면 정말 낭떠러지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실패 사례를 낱낱이 읽으며 실패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검색하면 나오는 커뮤니티와 블로그, 웹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유튜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그의 눈에 가장 많이 띈 것은 이러한 류의 영상들이었다.
'호주 워킹 현실 / 호주 워킹 리얼'
해당 영상들에서는 그 또래의 남녀가 길거리의 상점에 들어가 이력서를 내고 있었다. 이력서를 내고 돌아와, '여러분 호주 워킹 힘들어요 / 일이 안 구해져요 / 준비 안 하고 오시면 큰일 나요' 등의 말을 했다. 그는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느껴지진 않았다. 열심히 준비하고, 활기차게 들어가서 이력서를 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그는 실패 사례들을 미친 듯이 읽었다.
그가 읽은 워킹홀리데이 사례 중 최악의 시작을 엄선하여 조합해보면,
-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은 20대, 영어는 회화 불가능 수준.
1) 가기로 결심은 했다. 그런데 호주에 가서 일을 구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겁이 난다.
2) 그래도 출발 전에 할 수 있는 일 : 한인 커뮤니티, 호주 내 한인 웹사이트를 찾아본다.
3) 공고를 보니, 호주에 도착하면 픽업부터 핸드폰 개통과 주거까지 모두 해결해 준다는 일자리 공고가 있다. 일은 주로 농장일이란다.
4) 가서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은 힘들 테니, 공고에 명시된 이메일로 연락한다. 곧 답이 온다.
5) 우선 2주 치 방세, 2주 치 보증금(Deposit)을 내고 도착일과 공항을 알려달라고 한다. 전화가 오기도 한다. 목소리는 친절하다.
6) 돈을 이체한다. 룰루랄라 준비하면서 지인들과 떠들썩한 송별회를 한다.
호주 도착.
7) 공항에서 픽업 차량을 타고 농장으로 이동한다. 조금 시골이고 집이 낡긴 하지만, 그래도 바라던 호주에 왔다.
8)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요리해먹는 등, 일단 적응에 바쁘다. 일과 집을 준다던 고용주는, 일은 현재 시즌이 아니라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다.
9) 고용주 말을 믿고 기쁘게 기다린다. 그러나 고용인의 잠시는 한 주 더, 한 달 더 이런 식으로 늘어난다. 수중에 돈은 떨어져 간다.
10) 도저히 안 되겠다. 더 기다릴 수 없으니 방을 빼야겠다.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하니 고용주는 말이 바뀐다. 공고를 제대로 안 봤느냐고, 공고에 Minimum stay 2 month가 적혀 있다고 한다. 그 말은 2달은 무조건 거주해야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뜻이다.
11) 그게 무슨 소리냐고 따지지만, 돈을 받을 수가 없다.
12) 보증금을 포기하고 방을 빼서 일자리가 많을 것 같은 도시(씨티)로 간다.
13-1) 악덕 농장주는 이런 공고를 계속해서 올려서 비시즌에도 보증금 떼어먹기로 수익을 올린다.
13-2) 보증금을 포기하고 도시로 간 워홀러들은, 시간도 돈도 낭비했다. 앞으로의 적응은 어떻게 될까.
아직 호주에 도착하지 않았고, 호주 생활을 낭만적으로 상상하는 그에게도, 이런 실패 사례는 너무도 끔찍했다. 이렇게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이들이 도시에 가서 갑자기 좋은 일자리를 찾고 남은 시간을 보람차게 보낼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실패 사례들을 읽고 난 뒤 그는, 결국 운에 맡기는 부분이 없진 않으나 영어와 정신 무장만큼은 철저히 해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실패 사례를 계속해서 읽으면서, 호주의 현지 상황을 최대한 근접하게 파악하고자 한다. 구글맵을 계속 보다가 그는 브리즈번 시내 대로 이름까지 외웠다.
그리고 1대 1 영어 과외도 한다. (안타깝게도 영어 과외는 그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유튜브에서 본 호주 슬랭도 외운다. 호주는 그가 알고 있던 미국식 영어와는 조금 다른 영국식 영어를 쓴다. 크게 상관은 없다. 그에게는 미국식이든 영국식이든 둘 다 생소하고 어려운 영어다.
열심히 준비하면서, 출국 일정은 가장 빠르게 잡았다. 그렇게 그는 호주로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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