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업 준비

18번째 기업 본사 (출근 시간대, 엘리베이터)

 그는, 대기업 식품 계열사인 18번째 기업의 1차 면접을 합격했다. 도대체 얼마만의 1차 면접 합격인가. 취업준비 시작 후 처음으로 참석한 면접 스터디, 1차 면접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컴플렉스를 이야기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1차 면접은 화상 면접으로 진행했지만, 최종 면접은 대면으로 진행한다.

 

 18번째 기업은 1차 면접 때 '자유로운 복장'을 요구했다. 그는 검은 맨투맨 티를 입었고, 그가 화상으로 본 다른 지원자들은 거의 99% 정장을 입었다. 18번째 기업은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최종 면접에서는 '정장은 착용하지 말고 단정한 일상복'을 입으라고 안내한다. 그가 1차 면접 안내 당시 이해한 자유로움과, 18번째 기업이 의도한 자유로움의 괴리가 크진 않은 것 같다.

 

 18번째 기업은 그가 사는 집으로부터 거리가 꽤 멀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고 지하철을 탄다. 정장을 입지 말고 단정한 일상복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면접은 면접이다. 그는 검은 바지, 무늬 없는 검은 맨투맨, 검은 구두, 갈색 계열에 체크무늬가 살짝 들어간 마의를 입는다. 뭐라고 안내를 했건, 엄연한 면접이다. 그의 일상복은 널널한 국방 무늬 카고 바지에 검은 모자가 달린 후드다. 눈치 없는 그이지만, 카고 바지에 후드를 입고 면접에 참석할 만큼은 아니다. 단정한 일상복, 그는 자신이 가진 옷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캐주얼 정장 느낌이 나게 입는다.

 

 

 18번째 기업은 약 10층 높이의 건물 전체를 쓰고 있다. 건물 외관이 특이하거나, 특이한 마감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여느 보통 건물과 다를 것이 없다. 건물 꼭대기에 달린, '18번째 기업' 로고와 이름 덕에 이 건물이 18번째 기업 본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긴장한 탓인지 집이 먼 탓인지, 안내된 시간보다 40분 이르게 본사 건물 앞에 도착한다. 그는 면접 대기실에 너무 일찍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인사팀 직원들도, 지원자가 너무 일찍 오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10분 정도 일찍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본사 건물 약 10m 밖에 서서 시간을 보낸다.

 

 멀찍이 떨어져서 면접자가 아닌 척 하지만, 그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들고 건물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캐주얼 정장,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건물로 들어간다. 그의 면접 시각은 이른 오전으로, 출퇴근 시간과 맞물린다.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기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18번째 기업 본사는 지하에 주차장이 있다. 이따금 차로 출근하는 이들도 보이는데, 반짝이고 검은 그랜져를 몇 대 본 것으로 기억한다.

 

 

 배가 살살 아파오기 직전 상태, 피부 아래에서 땀이 송글송글 배어나오기 직전의 상태에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어느덧 안내받은 시간이 10분 남아, 그는 18번째 기업 본사로 들어선다. 하얀 콘크리트 벽, 반짝이는 네모난 대리석 타일 바닥이 그를 반긴다.

 

 그가 18번째 기업 건물에 들어섰을 때는, 출근하려는 직원들이 더욱 많아진 때다. 직원들은 1층 카운터 옆 키오스크에서 온도 체크를 한 뒤, 바로 옆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선다. 그는 쭈뼛쭈뼛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똑같이 따라하기 위해 온도 체크하는 줄을 선다.

 

 면접자의 긴장한 표정, 어색한 몸놀림은 누가 봐도 티가 난다. 그와 눈이 마주친 카운터의 경비원과 직원은, 면접 보러 오셨나며 이쪽으로 먼저 오라고 한다. 그가 카운터 앞에 서자, 직원이 종이와 펜을 내민다. 간단한 인적 사항 및, 전염병 감염자와 접촉한 적이 없고 체온은 몇 도라는 등의 정보를 기입하는 종이다. 종이의 빈칸을 모두 채우자 경비원은 그에게, 다 되었으니 옆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그가 옆을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줄은 더욱 늘어나 있다.

 

 

 18번째 기업 직원들 틈에 끼어, 그는 엘리베이터 줄에 서 있다. 그가 줄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면접자 몇몇이 더 도착한다. 어색한 몸놀림과 긴장한 듯한 표정을 보며, 그는 자신의 동지이자 경쟁자라는 것을 한 번에 깨닫는다. 그의 면접 동지들은, 그가 이미 경험한 절차들을 진행하고 난 뒤 엘리베이터 줄 끝에 선다.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전진해서, 어느새 그는 엘리베이터 문 안 쪽이 보이는 위치까지 왔다. 그제서야 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를 파악한다. 엘리베이터는 꽤 자주 도착한다. 문제는,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내부가 이미 거의 만원이라는 점이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전부 지하로부터 올라오는데, 하나같이 사람이 가득하다. 아예 한 명도 못 태우고 그대로 문이 닫히는 경우도 있다. 반짝이는 검은 그랜져를 타는 직원들이 지하주차장에 많은가 보다.

 

 그는 면접자이긴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이 상황이 점점 갑갑해진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뭉게구름처럼 뭉쳐있는 직원들은, 매일 아침마다 겪었을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것인지 체념한 것인지 무표정하게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짜증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도무지 말을 붙이고 싶지 않은 표정들이다. 엘리베이터 줄을 기다리는 이들도, 엘리베이터 안에 끼어서 위로 올라가는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가 건물 밖에서 보았던 직원들의 형용할 수 없는 카리스마는 짜증과 체념도 포함한 카리스마였다. 오늘 처음 18번째 기업 본사로 온 면접자들도, 직원들만큼은 아니지만 얼굴에 짜증과 체념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간신히 엘리베이터를 탄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직원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내는 적막이 감돈다. 직원들이 내뿜는 무거운 공기와 적막 때문에 그는 엘리베이터가 찜질방 같다고 느낀다.

 

 대기실로 안내받은 층에 내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숨통이 트인다. 그는 잡X레닛에서 읽었던 18번째 기업 리뷰가 떠오른다. 아침 출근길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너무 고역이며,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된다는 의견이었다. 고작 한 번 경험했지만, 그는 이 리뷰에 크게 공감한다. 대기업 계열사로 커다란 건물을 통째로 쓰는 18번째 기업의 아침 엘리베이터가 이렇다니, 직원들의 하루 시작을 갉아먹는 꽤 심각한 문제다.

 

 

 면접 대기실이라고 쓰여 있는 A4용지를 따라간다. 대기실은 커다란 강의실이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 복도에 기다란 책상이 둘 있다. 한 책상에는 면접자들에게 나눠줄 명찰이 줄지어 놓여 있고, 다른 책상에는 인사팀 직원으로 보이는 세 명이 앉아 있다. 남자 직원 둘, 여자 직원 하나다. 여자 직원이 일어나서, 이쪽으로 오시라며 안내한다. 남자 직원 둘은 종이와 펜을 하나씩 갖고 있는데, 이름과 면접 시간을 확인하고 서명을 하라고 한다. 안내가 끝난 뒤에 명찰을 받는다. 기다란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된 명찰들은, 얼핏 봐도 30개는 족히 넘는 수다. 역시 대기업 채용은 다르구나 생각하는 그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간다. 여느 대형 영어학원같은 강의실 모양으로, 의자와 책상이 일체인 책걸상이 놓여 있다. 대기실이 워낙 넓어, 책걸상이 대략 50개가 넘는 것으로 보이며 세 개의 분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는 우측 분단 중간 즈음에 자리를 잡는다. 어차피 빈자리 투성이니, 그는 옆자리에 외투를 걸고 가져온 짐들을 놓는다.

 

 

 그가 도착했을 때 대기실에는 약 3명 정도가 있었으며, 그 이후로 약 5명 정도가 더 도착한다. 면접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대기실이 워낙 넓으니 어렵지 않다. 인사팀 여성 직원이 대기실로 들어와, 이름을 호명한다. 그를 포함해서 6명의 이름을 부르고 난 뒤, 안내를 시작한다.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다들 잘 도착하셨네요. 아침부터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이제 곧 면접이 시작될 예정이에요. 다들... ...

 

 오시느라 수고했고,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상투적인 안내다. 그는 인사팀 직원으로부터 면접 팁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런 힌트는 없으리라는 판단이 선 직후부터 인사팀 직원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인사팀 직원은 안내를 마치고 나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온다.

 

  인사팀 직원 : 네, 111씨, 222씨, 333씨, ... 하얀 얼굴 씨. 지금 면접장으로 이동하실게요. 짐은 전부 여기 두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그는 다른 면접자들과 일렬로 서서 인사팀 직원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