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업 준비

18번째 기업, 22번째 면접 (다대다, 단체 병풍?)

면접은 대기실보다 위층에서 진행된다. 인사팀 직원 그리고 면접자 6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대기하는 동안 출근시간의 정체가 풀렸는지, 상층부라 이미 아래에서 다들 내렸는지 엘리베이터는 텅 비어 있다.

 

 면접자들이 자리에 앉는 순서, 인사를 어떻게 할지 등을 안내하고 인사팀 직원은 가버린다. 그와 면접자들은 면접실로 들어선다.

 

 

 면접실에 들어서자마자, 면접자들은 8명(정확하지는 않다)이나 되는 면접관들의 수에 압도당한다. 면접실은 대기실보다는 작은 크기에 좌우가 긴데, 책걸상 배치를 다르게 해서 면접관과 면접자가 마주 보도록 자리를 분리해놓았다. 면접관은 책상과 의자가 일체형인 책걸상에 앉고, 면접자는 벽면에 기대 놓은 의자 하나에 앉는다.

 

 좌우로 긴 강의실 형태에, 앞쪽은 강단이 있어 높이차가 있다(당연히 면접관들이 강단 쪽에 앉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웅변이나 연극 학원 또는 댄스 강의실이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그다. 좌우는 길지만 앞뒤 거리는 짧기 때문에, 면접관과 면접자의 거리를 억지로 띄우다 보니 면접자들의 의자는 벽면에 딱 달라붙었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너무 뒤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등에 벽면이 닿고, 의자 하나에 앉아 전신이 노출되는 상황이다. 앞자리 면접관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데다, 뒷자리 면접관의 자리는 강단 위에 있어서 올려다봐야 한다. 자리나 공간 배치가 썩 편하진 않다고 생각하는 그다.

 

 면접자의 눈에 면접관들은 한없이 어려운데, 더군다나 임원 면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임원이라고 하니, 왠지 엄청난 전문가일 것 같고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눈에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카리스마 넘치는 임원들이 의자와 책상 일체형인 책걸상에 앉아 있는 것은 뭔가 조화가 맞지 않다. 더군다나 면접관들이 앉아 있는 자리도 제각각이다. 자리 자체가 정돈되어 있지도 않고, 면접관들도 마음에 내키는 대로 그냥 앉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는 면접관들을 한눈에 보기 어려웠고, 이후에 특징을 기억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어지는 면접의 내용들을 통해, 그는 함께 면접을 보는 다른 면접자들의 정보나 지원 직무를 알아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8번째 기업은 임원 면접에서 여러 직무를 섞어놓고 한꺼번에 면접을 봤다. 그는 1지망-전략/기획, 2지망-물류 직무에 지원했다. 문제는, 면접관들이 그를 '물류 직무 지원자'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1지망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물류 직무에 대해서만 짧게 물어봤다. 그의 경쟁자들도 2지망 직무에 대해서만 질문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8번째 기업, 임원 면접

 

면접자 : 총 6명 (남자 3 / 여자 3)

  하얀 피부에 마른 체형, 사회복지학과, 인사 직무 지원한 남자 면접자 1

  구릿빛 피부, 마른 체형, 중동 거주 경험, 단체급식 영업 지원한 남자 면접자 2

  작은 체구, 안경을 쓰고, 브랜드 특화 영업 지원한 여자 면접자 3

  작은 체구, 하얀 피부, 중국 거주 경험, 브랜드 특화 영업 지원한 여자 면접자 4

  키와 체구가 큰 편, 하얀 피부, 경제학 복수전공, 브랜드 특화 영업 지원한 여자 면접자 5

  그

  

면접관 : 총 8명? (남자 6 / 여자 2)

  앞좌석 맨 우측, 보통 체격, 검은 머리, 안경을 낀 40대 초반 남자 면접관 1

  앞좌석 우측에서 2번째, 머리가 벗겨지고 눈이 부리부리한, 40대 중반 남자 면접관 2

  앞좌석 좌측에서 2번째, 보통 체격, 검은 머리, 잘 웃는 인상의 40대 중반 남자 면접관 3

  앞좌석 좌측, 보통 체형, 캐주얼 정장에 안경, 회색 머리, 온화한 듯 보이는 40대 후반 남자 면접관 4

  중간 좌석, 특징이 기억나지 않는 남자 면접관 5

  뒷좌석 우측, 마른 체형, 단발, 안경을 끼고 말이 없는 여자 면접관 6

  뒷좌석 중간, 검은 피부, 까만 뿔테 안경, 체구가 크고 목소리가 굵은 40대 후반 남자 면접관 7

  뒷좌석 좌측, 마른 체형, 긴 머리, 테가 얇은 안경을 끼고 피부가 하얀 여자 면접관 8

 

 면접 진행은 면접관 1이 맡았으며, 질문은 남자 면접관들이 본인들 궁금한 것을 마음대로 물어본다. 여자 면접관들은 말이 없었던 편으로 기억한다.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가장 안쪽 자리는, 하얀 얼굴 씨. 네 그리고... ... 앉으시면 됩니다.

  면접자 일동 : (착석한다)

  면접관 1 : 네, 반갑습니다. 면접관들이 조금 많죠? 작년에는 더 많았었는데, 올해는 전염병 때문에 좀 덜 들어왔습니다. 덜 들어온 게 이 정도네요. 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면접자 1 : 안녕하십니까! 선한 영향력으로... ... 하는 면접자 1입니다! 저는... ...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강한 도전 정신의 소유자, 면접자 2입니다! 저는 ... ...

  면접자 3 : 안녕하십니까! ... ...

  면접자 4 : 안녕하십니까! ... ...

  면접자 5 : 안녕하십니까! ... ...

  그 : 안녕하십니까! 18번째 기업 전략기획에 지원한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18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그가 경험한 면접들처럼, 다른 면접자들은 그보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 또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자기소개가 1분을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6명의 지원자들이 자기소개를 끝내는 데에만 10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이후에도, 면접은 그가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진행된다.

 

 

  면접관 2 : 네, 먼저 면접자 1 씨부터 순서대로, 직무 지원 동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면접자 1 : 네, 저는 다른 이들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였고, 이런 봉사활동들을 통해 보람을 느끼며 저는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 선한 영향력으로 인사 직무에 일하고 싶습니다!

 

  면접관 2 : 면접자 2 씨?

  면접자 2 : 네! 저는 중동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중동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데요. 이런 경험이 단체급식 영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저는 중동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요리를 하고, 한국 요리를 소개해주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중동 친구들은 다들 맛있다고 말했어요. 저는 요리도 좋아하고 해서, 중동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곤 하면서...

  면접관 7 : (본인이 일부러 화를 끌어올리려는 듯, 목소리 톤이 갈수록 높아지고 말도 점점 빨라지며) 지금 지원자께서는 주어진 질문이 아닌,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지원자가 지원한 단체급식 중동 해외영업은, 그런 일을 하는 직무가 아닙니다. 직무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지원한 것은 아닙니까?!

  면접자 2 : (크게 당황하여) 아... 죄송합니다... 다시 답변드려도 되겠습니까?

  면접관 7 : ... (퉁명스럽게) 그러세요.

  면접자 2 : 네, 저는, 면접관님 말씀처럼 직무를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중동에서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 (이전의 실수를 뒤집을 만한 답변은 아니다)

 

 면접자 2는, 면접관의 반박에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하고자 추가 답변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직무를 잘못 이해했다며 대놓고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하늘 같은 임원 면접관님의 의견을 거스르지 않고 잘 경청하였다는 겸손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겠으나, 직무를 잘못 이해했다는 점을 인정한 시점에서 겸손함에 대한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더 크다. 

 

 

  면접관 2 : 네, 면접자 3씨, 아까처럼, 직무 지원 동기에 대해 말해보세요.

  면접자 3 :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네, 저는 마케팅 공모전에서 수상 경험이 있습니다. 새로운 식품을 런칭하여 선보이는 아이디어를 내서 수상했었는데요. 대학 시절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성과를 이뤄본 경험이었습니다. ... 

  면접자 4 : 네, 저는 중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국 거주 당시, 중국인들을 상대로 새로운 식품을 홍보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 18번째 기업이 새롭게 출시한 브랜드를... ...

  면접자 5 : 네, 저는 ...

  

 면접자 5의 답변을 들으며, 그는 자신의 차례를 준비한다. 면접자 5의 답변이 끝나면 곧바로 시작하려는 참이다. 그런데 그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차례를 빼앗긴다.

 

  면접관 4 : 면접자 5 씨, 이력서를 보니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나요. 왜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나요?

  면접자 5 : 네, 저는 원래는 다른 전공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경제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 경제학을 복수전공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면접관 4 : 그렇군요.

 

 면접관 4의 갑작스러운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났다. 이제야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며 그가 입을 떼려는 찰나, 면접관 3이 끼어들어 그의 입을 막는다.

 

 

  면접관 3 : (갑작스럽게) 면접자 1 씨, XXX에서 주관한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네요. 자세히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해당 경험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의 경험입니다. 당시 XXX에서는, ... ...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공모전이었습니다. 저는 팀원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제시해서, 공모전에서 수상했습니다!

  면접관 3 : 그...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네, 당시에는 ... ... ...했었는데, 너무 제약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하려면 저것이 안되고, 또 팀원 중 누군가가 중간에 하차하는 등의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 ... 그렇게 해서 공모전에서 수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면접자 1은 공모전 당시 상황과 공모전의 세세한 내용까지 전부 말하느라 답변이 몇 분 이상으로 늘어진다)

  면접관 3 : (불만족스러운 듯이) 아니 그러니까... 거기서 본인의 역할이 정확히 뭐였나요? 뭘 한 거예요?

  면접자 1 :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 해맑게) 네! 저는, 팀원들 간의 소통을 담당했습니다! 팀원들끼리 아이디어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는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습니다!

  면접관 3 :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듯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고 답변했는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소통을 했나요?

  면접자 1 : 아 네! 팀원들끼리 다른 아이디어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팀원들 사이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 (대략 이런 식의 답변이다)

 

 면접자 1은 계속해서, 판에 박힌 듯한 상황 설명과 추가 정보를 늘여놓는 답변을 한다. 면접관 3은 기회를 주려는 것인지, 면접자 1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해당 경험에 대한 면접자 1과 면접관 3의 문답만으로도 5분이 훌쩍 넘어간다.

 

 그는 맨 처음의 자기소개 이후로 아직까지 질문을 받지 못했다. 면접관들 측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다. 그는 티나지 않게 시계를 힐끔힐끔 보며, 아직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했다. 면접 시작한 지 10분, 면접자 2가 면접관 7에게 압박을 당할 때도 그랬다. 면접 시작한 지 15분, 면접자 1이 프로젝트에 대해 늘어놓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그가 질문받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면접관 2 : 면접자 3, 우리 회사 특화 브랜드에 대해 아는대로 말해보세요.

  면접자 3 : 아, 네. 18번째 회사 특화 브랜드 XXX는 얼마 전 출시된 브랜드입니다. 건강과 맛을 모두 신경 쓴 신제품인데요. 어... 최근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는 특화 브랜드 XXX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경험이 있는데요. ... ...

  면접관 2 : 면접자 4, 중국에서 생활을 했다고요?

  면접자 4 : 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왔습니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저는 18번째 기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8번째 기업이 얼마 전 출시한 XXX 브랜드를 개인적으로 구매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XXX 브랜드 특화 영업 직무에 지원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면접관이 면접자들에게 각각 질문한 것은 특화 브랜드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중국 생활이다. 면접자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을 어필하고자, 질문받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만 언급하고 곧바로 기업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렸을 적부터 관심을 가져왔다느니, 개인적인 경험이 너무 감명 깊었다느니 등의 내용이다. 원래 면접이라는 자리가 어필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어필의 비중이 훨씬 더 많다고 느끼는 그다.

 

 

 자기소개 이후로 입 한번 떼지 않은 그, 면접 시간은 벌써 20분이 지났다. 기다리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그도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왜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나. 아니, 면접관들은 왜 저런 엉뚱한 답변을 중간에 끊지 않고 계속 들어주고 있나.

 

 그는 병풍 면접을 보고 있는가? 병풍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같이 면접을 보는 인원들 중 그가 최악이긴 했지만, 다른 면접자들도 평균 발화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면접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이들은 면접자 1과 면접자 2였는데, 상관없는 내용과 변명 등으로 말이 너무 길어져서 그랬던 것이다.

 

 그는, 발화량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말을 많이 한 지원자도 적게 한 지원자도, 그가 보기엔 합격할 만한 이유가 없다. 면접관들은 얼마 되지 않는 질문조차도 피상적인 질문만 던진 뒤 말없이 듣기만 한다. 그의 속에서 스멀스멀, 지금 그가 속한 면접 조 전체가 단체로 병풍을 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의 속내를 짐작이라도 한 것인지, 면접관 4가 갑작스레 그에게 질문한다.

 

 

  면접관 4 : 하얀 얼굴 씨, 우리 회사 물류 직무를 지원했는데, 물류 직무를 알긴 하고 지원을 한 건가? 물류 직무가 뭔지 알긴 하는지, 아니 그러니까 우리 회사 물류에 대해 아는 걸 다 이야기해보고, 물류 직무에서 본인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대답해보세요.

  그 : (질문의 내용도, 말투도 어이가 없다) 아, 18번째 기업 물류 말씀이십니까. 면접 준비를 하면서 찾아본 결과, 18번째 기업은 000대의 물류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의 백화점과 외식 업체로 유통하고 있습니다. 식품 물류이다 보니, 아무래도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18번째 기업도 당연히 신선 식품 물류를 위해 콜드 체인(Cold-Chain=냉장차) 물류를 운영하고 있으며, TMS, 즉 운송수단 관리 체계를 통해 이를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여 방안에 대해서도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릴 적 상하차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에는 호주 대륙을 오가는 커다란 트럭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저는 물류의 실제와 접촉하고 그 관심을 키워왔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 18번째 기업 물류 직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면접관 4 : ...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면접관 4는 흰머리가 많아 머리가 회색이며, 안경을 낀 온화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질문을 할 때는 목소리 톤이 격앙되어 있고 인상도 구겨져 있다. 이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면접관 4의 질문에서 풍기는 속내가 거슬린다. 면접관 4의 원래 말투가 이렇고, 면접관 4는 순수한 의도로 그에게 질문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취준 생활로 인해 자존감이 갉아먹힌 상태에, 약 20분 동안 입 다물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기만 한 그로서는 면접관 4의 질문이 이렇게 들렸다.

 '당신 같은 지원자는 전략/기획은 꿈도 꾸지 마라. 2지망 직무가 물류인데, 뭔지 알기는 하느냐'

 

 슬프게도, 그는 물류 직무에 대해서는 면접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1차 면접을 전략/기획 직무로 보아 합격했고, 면접 안내 메일에도 직무에 관한 안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전략/기획 면접 준비를 하면서 물류 관련 내용도 외우긴 했다. 그는 자신이 외운 범위 내에서, 꼬투리 잡히지 않게끔만 포장해서 답변한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물류 직무는 사실 굉장히 테크니컬한 하이테크 업종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그 : 네, 학교에서 물류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해당 수업 때 여러 기업의 물류 시스템을 보았습니다. 상하차 작업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기계가 알아서 인식해서 자동으로 분류하는 것도 보고, 물류 창고 내에서도 사람의 손 없이 로봇 하나만으로 창고 전체를 컨트롤하는 것을 보며 굉장히 많이 발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는, 그런 기술들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나요?

  그 : (의도를 캐치하지 못하여) 음... 저는 대학 과제로 조사를 하며 많이 알아보긴 했습니다. 실제로 물류 창고를 방문하기도 했었는데, 기술적인 측면은 모두 공개하지 않아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면접관 3 : ...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

 

 그는 면접 시작 후 20분이 지나서야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답변이 끝나자 면접은 막바지에 이른다. 

 

 

  면접관 1 : 네, 그래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듣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면접자 1 씨?

  면접자 1 : 네, 오늘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

  면접자 2 : 네,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 ...

  면접자 3 : 네, 저도 너무 감사해요. 1차 면접 합격 메일을 받고, 너무나도 기쁘고 떨렸습니다. 오늘 너무 떨어서... 답변을 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늘 면접관님들을 뵙고... 면접관님들의... 어... 안목?! 안목과 능력?! 을 보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면접자 3은 긴장했는지, 자기소개 때부터 목소리가 떨리고 말을 조금 더듬었다. 면접자 3은 이러한 점을 만회하기 위해, 면접관들에게 립서비스를 하는 듯 보인다. 립서비스를 하려고는 하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지 계속해서 말이 끊긴다. 말이 끊길 때마다 그는 면접자 3의 다음 말이 무엇일지 예상하는데, 거의 대부분 적중한다. 면접관 다음으로 올 말도, 정확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대강 안목 비슷한 말이 나오리라 예상한 그다. 이번에도 적중하자, 그는 이 립서비스가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면접관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면접관들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면접관 일동 : (안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허허허허...

 

 똑같은 말을 그가 했을 때, 면접관들이 저렇게 너털웃음을 지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면접관들이 면접자 3처럼 조그만 여성 지원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면접자 4 : 오늘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면접자 5 : 18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면서, 저에 대해 더 잘 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네, 저도, 오늘 면접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18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며, 저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디 면접에 합격해서, 18번째 기업이 그리는 미래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1 : 이것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밖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를 포함한 6명의 지원자는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지원자 한 명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연다. 한 명이 물꼬를 트자, 나머지 면접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씩 한다.

 

  면접자 3 : 후아... 너무 긴장되는 면접이었어요.

  면접자 4 : 맞아요. 면접관님들 질문이 너무 날카로워서, 준비한 답변의 반도 못 말했어요.

  면접자 5 : 아니에요, 그래도 말씀 너무 잘하시던 걸요?

  면접자 1 : 와... 면접관 이렇게 많았던 적은 처음이에요.

  면접자 2 : 맞아요. 아까 그 면접관님 눈빛 봤어요? 와 너무 떨리더라고요.

 

 남자 면접자들도 한 마디씩 거들고, 여자 면접자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점점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바라보고 서서, 홀로 말이 없다.

 

  면접자 3 : 후아... 그래도 다들 너무 잘하셨고 잘 끝났네요. 

  면접자 5 : 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되네요.

  면접자 4 : 저희 다 같이 붙었으면 좋겠네요.

  그를 제외한 면접자 일동 : 하하하...

 

 그는 말없이 다른 면접자들이 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지금 같이 면접을 본 이 조에서 합격자가 나올 리는 없다. 서류나 스펙이 어떻게들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면접 내용만으로는 합격자가 나올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대기실로 돌아가 짐을 챙긴 뒤, 인사팀 직원에게 면접비를 받는다. 면접비는 3만 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머리가 복잡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최종 면접을 본 적은 딱 한번, 1번째 기업 때다. 1번째 기업 때도, 최종 면접은 너무나도 짧게 끝났으며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도대체 이런 질문들로 어떻게 합격자를 판별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다른 조들도 이런 식으로 면접이 이뤄진다면, 결국 임원 면접은 별로 비중이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1차 면접에서 이미 어느 정도 합격자가 정해진 것은 아닐까. 그는 자신이 1차 면접을 꽤 잘 보았다고 생각한다. 1차 면접에서 이미 합격자가 어느 정도 정해진 것이겠거니, 그래서 그에게는 더더욱 질문이 없었던 것이겠거니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그다.

 

 18번째 기업 최종 면접이라는 큰 고비를 넘겼다. 그는 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어깨에 맨 서류가방에서 면접 준비 자료를 하나 꺼내서 보기 시작한다. 20번째 기업 면접 준비 자료다.

 

 20번째 기업은, 안타깝게도 면접 날짜가 18번째 기업 최종 면접과 겹쳤다. 그는 집에 들렀다가 곧바로 스터디 카페로 가서 20번째 기업 면접을 봐야 한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그는 머릿속에 박힌 18번째 기업을 지우고 20번째 기업으로 바꿔 넣으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