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상반기가 끝나간다. 그가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1년이 다되어 간다. 그의 절박함은 더욱 배가되어, 그는 평소라면 지원도 하지 않았을 업계에도 이력서를 난사한다. 그가 추호도 관심이 없는 화장품, 패션업계 등이다.
패션업계 공고를 보던 중, 한 회사가 눈에 띈다. 28번째 기업이다. 28번째 기업은, 국내 의류업계 1위임은 물론 전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의류 벤더라고 한다. 의류 벤더는, 유명 브랜드가 디자인한 옷을 제작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28번째 기업은 세계적인 브랜드인 'X라'의 옷도 만드는 등 업계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의류 종사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28번째 기업은 기업 규모와 매출도 상당하다. 의류업계임에도, 자산 규모가 조 단위이며 매출이 2조를 넘는다. 옷과 패션에 관심이 없는 그이지만, 매출 규모를 보고는 나름 신경을 써서 이력서를 작성한다.
28번째 기업은, 여느 섬유 및 의류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에 법인과 공장이 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이 낮은 동남아에서 주요 공장들을 가동하는 방식이다. 공장도 그렇고, 일감과 디자인을 주는 회사들도 글로벌 기업들이 많아서인지 28번째 기업은 해외영업 신입을 많이 뽑는다. 의류 및 패션이니, 업계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류이고 패션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제조업이다. 그가 목표로 했던 제조업체의 해외영업 신입인 셈이다.
28번째 기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은 아래와 같으며, 항목별 글자 수는 전부 600자다.
1) 28번째 기업에 지원한 동기 및 지원 분야에 대해 본인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이유 및 근거
- 대학교 수업 내용
2) 28번째 기업의 인재상 중 자신과 가장 유사한 인재상 및 관련 성취경험
- 열정인,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
3) 활동했던 조직이나 단체에서 갈등 경험 및 해결 경험
- 공놀이 동아리 경험
4) 옷(의복)에 대한 최근 뉴스나 이슈 중 관심 있게 본 주제를 선택하고 견해를 서술
-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질문이다. 그는 옷이나 패션에 관심이 없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그는 얼마 전 관심 있게 읽었던 책을 어떻게든 질문과 엮어 어필하고자 한다. 한스 페터 뒤르의 3부작을 읽었던 경험을 토대로 해당 문항의 답을 작성한다. 자기소개서 답변으로 특정 책 내용을 쓰면, 뜬 구름 잡는 독후감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는 옷이나 의복에 워낙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 도박하듯 작성한 답변이다. 그가 작성한 자소서는 아래와 같다.
'[나체와 수치심에 대해]
최근 인간의 수치심은 문화적으로 학습되었다는 주장이 거론되고 있다. 한스 페터 뒤르는 이 주장을 반박한다. ... 수치심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니다. 부족 사회를 이루는 원주민들에게도 나체에 대한 수치심이 존재하며, 여성은 가슴과 음부를, 남성은 음부를 가린다.
수치심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성이며, 나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나체와 수치심은 연결되어 있으며, 수치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나체로 인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의복은 필수다. 의복의 가치를 알게 해준 책이다. '
5)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와 그것을 통해 28번째 기업 기여 방안
- 읽은 도서 목록 작성 경험 어필
나름 이력서를 성의껏 작성하긴 했지만, 원체 패션과 의류에 관심이 없는 그인지라 약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28번째 기업으로부터 서류 합격 메일을 받는다. 28번째 기업은, 서류 전형 다음으로 AI 면접을 실시했다. 우선 서류 합격 통보만 해놓고, AI면접 후에 종합적으로 봐서 떨어트리려는 심산이구나 생각하는 그다. 그런데 이번에도, 28번째 기업은 그에게 AI면접 합격 및 면접 안내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28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시작한다. 28번째 기업의 공장 위치와 가동률 등을 알아보고, 발주를 주는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을 조사하고, 기업 내부 조직 및 매출 현황 등을 재무제표에서 조사한다. 면접 준비 자료를 완성한 뒤, 면접날까지 반복해서 읽으며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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