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취업준비라는 기나긴 터널 속을 달렸다. 당장 눈앞은 캄캄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밝은 빛이 보일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달렸다. 아주 가끔 터널 중간중간에 샛길 출구로 빠지는 듯한 길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그는 이 터널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싶었다. 끝이 없어 보이던 터널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끝나, 눈이 부시다 못해 눈을 뜨기조차 힘든 빛이 그를 감싸는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달렸는데, 터널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출구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맹렬히 달렸더니, 헛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헛것을 향해 질주하고 실망했다. 출구가 있기는 한 것인가. 아니, 그에게는 이 터널을 정면으로 돌파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 아닐까.
그가 개인적으로 설정한, 보통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끝나가고 있다. 그의 20대는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결국 20대에 취업하는 데 실패했구나. 내년 30대가 되면 서류 합격률이 더욱 낮아지겠지. 지금도 낮은데, 이보다도 더 급격하게 떨어지리라.
마지노선이 뚫렸지만, 그렇다고 30대가 되자마자 취업을 포기할 생각은 아니다. 그는 반 정도 포기한 상태에서, 상반기에만 조금 더 지원해보고자 한다. 물론, 마지노선이 아직 뚫리지 않았을 때 가졌던 마음가짐이나 눈높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의 취업은 실패한 듯 보이며, 그는 동의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남들의 평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들의 말처럼, 그의 눈이 너무 높았던 것 아닐까. 매출 1000억? 그는 기업의 매출이나 규모를 따질 형편이 아닌가 보다.
몸은 건강하니, 하고자 하면 몸 쓰는 일도 해볼 수는 있을 터다. 생산직을 해야 할까. 그래도 취업 준비를 2년 넘게 했는데, 뽑은 칼로 무라도 썰듯 사무직 비스무리한 경험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X, 잡X리아, 알X몬을 봐도 사무직 일은 많다. 무슨무슨 개인 사무실에서, 서류 업무나 사무보조를 하는 일이다. 직장인이라고 해야 할지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라고 해야 할지 구분이 모호하지만, 그는 이제 이를 따질 형편이 아니다. 무엇이 됐건 우선은 시작해야겠다. 20대에 취업을 실패하고 등 떠밀려 30대를 바라보는 주제에, 달리 선택지가 없지 않나.
연봉은 얼마나 받아야 할까. 돈이야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 그가 지금껏 면접을 본 기업들은 3천 중후반, 대기업의 경우 많게는 4천 혹은 5천 이상의 연봉을 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개인 사무실에 들어가서 사무보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 당연히 연봉이 낮아질 터다. 그는 개인적으로, 대학을 나왔고 나이도 많으니 3천 중반은 받고 싶었다. 못해도 3천 초반, 문과 기준에서 3천 초중반 정도가 평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20대의 이야기다. 이제는 눈을 낮출 차례다. 그는 애써 마음을 비우고, 눈높이를 최대한 낮게 깔아버리고자 한다.
3천은 무슨, 아르바이트보다 많이 받기만 하면 좋겠다. 그가 주방 아르바이트를 할 때,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이가 약 180 정도 받았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니, 월 180보다 높기만 하면 좋겠다. 몸 덜 쓰는 사무직으로 180보다 많이 받으면, 첫 직장이다 생각하고 그냥 들어가야겠다. 편한 계산을 위해 월 200만 원을 받는다 치면, 연봉 2400이다. 연봉 2400, 2500, 2700 공고는 꽤 많다. 3천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해야겠다.
조그만 회사의, 돈을 적게 받는 일이어도 무작정 시작해야겠다. 그래, 그게 그에게 맞는 자리인가 보다. 이렇게까지 눈을 낮추었으니, 그래도 마지막 하나만큼은 그의 마음대로 골라도 되지 않을까. 집에서 가까운, 자전거로도 출퇴근할 수 있을 만한 거리로 가야겠다.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사무보조로 일을 시작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작은 곳에서라도, 아르바이트 비슷하더라도 열심히 일을 배우면 될까.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장을 할 수 없는 일이면 어떡하나. 그의 인생에서 '일'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 성취, 의미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할까. 그럴 바엔 차라리 안정적으로 가는 게 낫나. 그가 그토록 선택지에서 배제했던, 최소 수년은 걸릴 공무원까지도 염두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을 놓아버린다. 어떻게든 되겠지. 죽기야 하겠나. 우선은 이 지긋지긋한 터널부터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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