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번째 기업 최종 합격으로 붕 떠있을 무렵, 그에게 메일이 하나 더 도착한다. 41번째 기업이다. 41번째 기업은 해운업계이며, 그가 해운업계 채용 시즌에 밀어 넣었던 이력서 중 가장 늦게 답이 왔다. 그는 최종 합격한 39번째 기업에 입사할 생각이지만, 혹시 모르니 41번째 기업 면접에도 참석하기로 한다. 41번째 기업의 매출액은 2000억이 넘으며, 그가 지원한 직무는 '1지망 - 기획관리 / 2지망 - 해외영업'이다.
41번째 기업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메일에 안내된 주소로 향하니, 번쩍번쩍한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41번째 기업도 이런 번쩍번쩍한 빌딩에 자리 잡고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41번째 기업이 위치한 건물은 고층 빌딩 바로 옆의 평범한 상가다. 분홍색 타일 같은 것으로 외부를 마감한, 5층 정도 되는 건물이다. 이 건물 자체도 작은 편은 아니나, 바로 옆 번쩍이는 고층 빌딩으로 인해 작게 느껴진다.
41번째 기업에 도착하니, 인사팀 직원이 그를 맞이한다. 인사팀 직원은 어깨가 상당히 넓어 몸이 직사각형으로 보이며, 눈썹이 상당히 진하다. 면접 대기실에는, 41번째 기업이 운항하는 배의 모형이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다. 40번째 기업에서도 그랬지만, 해운업계 회사들은 배 모형을 회사에 전시하는 듯하다. 그가 지원한 직무들도 선박 관련된 업무들을 수행한다. 기획관리는 선박 보험을 관리하고, 해외영업은 선박의 항로/운송 등을 관리하는 직무다.
인사팀 직원 :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면접자 일동 : 안녕하세요.
인사팀 직원 : 면접자 1 씨, 하얀 얼굴 씨 맞으시죠?
면접자 1 : 네
그 : 네
인사팀 직원 : 음, 원래는 한 분이 더 오셔야 하는데 방금 불참하신다고 왔네요. 지금 바로 면접 들어가실게요.
인사팀 직원을 따라 면접실로 향한다. 면접실은 같은 층에 위치해 있다. 인사팀 직원은 면접실 앞에서 노크한 뒤 문을 열어준다.
41번째 기업, 기획관리/해외영업 신입 면접
면접자 : 총 2명, 모두 남자
부산 출신, 해양대학교 선박 관련 전공, 여자친구와 동거 중인 면접자 1
그
면접관 : 총 3명, 모두 남자
하얀 피부에 덩치가 조금 있으며, 안경을 끼고 눈매가 날카로운 30대 후반~40대 초반 면접관 1
하얀 피부, 안경을 끼고 인상이 좋은 40대 초중반 면접관 2
구릿빛 피부, 눈이 크고 인상이 순한 40대 면접관 3
그가 이날 면접에 참석한 이유는, 물론 41번째 기업에 대한 기대나 마지막까지 노를 저어보겠다는 심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최종 합격한 상태로 면접에 참석함으로써 지금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만끽해보고자 하는 심리가 더 컸다. 그는 꽤 영악한 측면이 있다.
면접자 일동 : (입장하며)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일동 :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면접자 일동 : (착석한다)
면접관 3 : 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면접자 1 씨부터 하세요.
면접자 1 : 안녕하십니까! @$!##@의 지원자, 면접자 1입니다! 저는 X스만에서 해외영업 직무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요... ...
그 : 안녕하십니까! 41번째 기업 기획관리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실행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3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친화력을 길렀습니다. 공놀이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이루며 친화력을 길렀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행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41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1 : 면접자 1 씨, 일본어를 하실 줄 안다고요?
면접자 1 : 네, 조금 합니다.
면접관 1 : 어느 정도 하시나요?
면접자 1 : 일상 회화 가능한 정도입니다.
면접관 1 : 여행 갔던 경험을 일본어로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알겠습니다. 어... 아노 토키... ...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영어로 자기소개 해보세요.
그 : (몇 번이고 외운 영어 자기소개다. 외운 대로 그의 자기소개를 직역한다) K, Hello, My name is 얼굴 하얀, applying for 41st corporation. I'd like to introduce myself through 2 strong points. First, Power of execution. I did working holiday from October 20XX to October 20XX. During that days, I set my goals and tried to achieve it. At the end, I achieved my goals related to Money, Experience, and English.
Second, Sociability. I grow my sociablity through my hobby, ball sports. When I go to ball sports court, lots of people come to the court. I made a team with variety of jobs, and ages of people. By this experience, I grow my sociability and how to deal with different people.
Through this two strong points, power of execution and sociability, I think I can contribute to 41st corporation. Thank you.
면접관 1 : 면접자 1 씨, X스만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면접자 1 : 네, 해외영업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면접관 1 : 전공은 선박 쪽인데, 해외영업 직무로 돌린 이유가 있나요.
면접자 1 : 아, 사실은 제가 전공 공부를 하다 보니, 해외영업 직무에 관심이 생겨서요. 그래서... ...
면접관 1 : 해외영업 직무라고 하시니, 수출입에 필요한 서류가 어떻게 쓰여있는지 아나요?
면접자 1 : 아, 수출입 말씀이십니까
면접관 1 : 네, 해외영업 직무하면서 서류 검토해본 적 있어요? 서류에 써있던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말해보세요.
면접자 1 : (조금 당황하며) 어... 송장이랑 PO, 견적서, 발주서......
면접관 1은 면접자 1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면접관 1 : 면접자 1 씨, 선박 기계 전공이니, 학교에서 선박 부품들도 배우셨죠?
면접자 1 : 네.
면접관 1 : 전공 관련해서 물어보겠습니다. 밸러스트 워터가 뭡니까.
면접자 1 : (자신 있게) 평형수입니다.
면접관 1 : 포캐슬이 뭡니까.
면접자 1 :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어... 배 앞에서부터 뒤까지의 길이였던 거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관 1 : 해치커버가 뭡니까.
면접자 1 : 해치커버...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관 1 : 수업 시간에 해치커버를 안 들어봤어요?
면접자 1 : 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
면접자 1은 긴장했는지, 전공 관련 질문에 애를 먹고 있다. 그는 면접관 1과 면접자 1의 문답을 들으며, 다른 세상 이야기인 마냥 동떨어진 것처럼 들린다. 생전 처음 듣는 용어들이다.
면접관 2 : 하얀 얼굴 씨, 운동 동아리 관련해서 이야기해주세요. 규모가 얼마나 됐나요?
그 : 매주 모임에 나오는 인원은 약 20명 정도였습니다만, 휴학생/졸업생/고학번 선배들까지 포함하면 50명이 넘는 규모였습니다.
면접관 2 : 50명이라는 거죠. 학교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했는데, 리그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그 : 총 17개 팀이 참가하는 리그였습니다. 17개 팀을 반으로 나누어 리그전을 벌인 뒤, 각 리그에서 1위와 2위를 선별하여 4개의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던 시기, 저희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면접관 2는 그에게 호의적인 듯 보인다.
면접관 2 : (관심이 있는 듯한 눈빛으로) 하얀 얼굴 씨,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아요. 어느 분야의 책들을 읽었나요?
그 : 사회과학 분야 도서를 주로 읽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 가시면, 도서들이 청구 번호로 분류되어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책을 찾으실 때, 총류는 0번대 / 철학은 100번대 / 종교는 200번대 이런 식으로 분류해놓은 한국 십진분류법 체계가 있습니다. 저는 해당 분류법에서 300번대에 해당하는, 사회과학 분야를 주로 독서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을 포함한 분야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가 300번대 사회과학 도서입니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본인의 강점을 실행력과 소통력이라고 했는데, 이 두 가지는 어떻게 보면 충돌하는 면이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과 충돌했던 경험은 없나요?
그 : (처음 듣는 피드백이지만 동의한다) 아, 맞습니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실행하다가 충돌한 경험이 있습니다. 공놀이 동아리 회장이었을 때, 제가 회장이긴 하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가 있었습니다. 경기에서 지고, 해당 선배가 부원들에게 잘했다고 다독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잘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면접관 2 : 그랬더니 그 선배가 뭐라고 했나요?
그 : 그런 식으로 말하면 대체 뭐가 좋냐고 했습니다.
면접관 2/3 : 하하허허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기획관리 업무에 지원하셨는데, 입사 후 이런 식으로 업무를 해보고 싶다 하는 방향이 있나요.
그 :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습니다만, 아는 범위에서 예상하여 답변드리겠습니다. 인코텀즈에 의하면, FOB에서 FAS 조건으로 바뀌면 인도 시점이 빨라져 위험과 책임이 낮아지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이러한 조건의 변경이 원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저는 수출 거래 시 계약 조건을 어떻게 설정해야 더 이익이 많이 남을지 파악해, 현장에 공유하여 이익을 개선하고 싶습니다.
면접관 3 : 음... 사실 인코텀즈 조건은 매출, 비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답변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면접관 1 : 하얀 얼굴 씨, 아르바이트나 이런 건 별로 안 했나요?
그 : 아르바이트 말씀이십니까. 아르바이트는 많이 했습니다.
면접관 1 : 어떤 걸 했나요.
그 : 고기뷔페 서빙, 방송국 무대 제작, 전시부스 설치 및 철거, 워킹홀리데이 당시에는 주방 보조부터 고기 공장 / 청소 / 건설 현장 / 웨이터 등을 했습니다.
면접관 1 : 지금 이걸 물어보는 이유는, 하얀 얼굴 씨 이력서에 빈칸이 많아서 그래요. 경력 사항과 가족 사항이 비어 있습니다. 가족 사항을 안 적은 이유가 있나요?
그 : 필수가 아니라 생각하여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면접관 2 : 아르바이트 경험들도, 직무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 안 적었다는 거죠?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2 : (면접관 1에게 말하는 듯) 하얀 얼굴 씨는 성향이 그런 것 같아. 사소한 것 하나하나는 넘어가는 성향인가 봐.
면접관 1 : (그를 보며) 제가 예전에 면접관 했을 때는, 지금도 면접관으로 앉아있기 하지만 전에는 제가 이력서를 처음부터 검토했었거든요. 그때는, 이력서가 책상에 이만큼씩 쌓여있었어요. 이렇게 빈칸이 많은 이력서의 경우는, 저는 보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되잖아요? 이력서는 자신을 최대한 어필해야 하는 서류인데, 공란이 많으면 그렇게 생각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스스로 판단했다고 하니 틀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이 슬금슬금 끝나가는 분위기다.
면접관 2 : 혹시 오늘 오실 때, 우리 회사 건물 어땠나요? 느낌이 어떤가요?
면접자 1 : 회사 건물이요? 저는... ...
그 : 저는 사실 이 건물이 아니라 옆 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면접관 일동 : 와하하
그 : 하지만 들어와 보니 나름의 고즈넉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면접관 2 : 마지막으로, 본인의 강점 어필해보세요. 하얀 얼굴 씨부터 해보세요.
그 : 네, 저는 비록 워킹홀리데이만 1년 다녀왔지만, 웬만한 유학생이나 교환학생들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방이나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실제로 노동자들이 쓰는 영어를 접하고 배웠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배우는 실행력과 적응력의 증거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실행력과 적응력이, 저의 강점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 2 : (진심인지 가면인지, 그를 보는 눈빛에서 꿀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면접자 1 : 네, 저는... ...
면접관 3 : 네, 이상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자 일동 : 감사합니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인사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다. 면접은 약 1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예정보다 길어진 듯하다.
인사팀 직원 : 면접 잘 보셨나요? 굉장히 길게 보셨네요.
면접자 일동 : 아, 그런가요.
인사팀 직원 : 네 원래 30분 정도로 끝나는데, 면접관들께서 궁금하신 게 많았나 봐요. 여기 면접비입니다.
면접비는 2만 원이다.
그 : (언제나처럼) 담당자님, 혹시 이번에 몇 명이나 채용하시나요?
인사팀 직원 : (언제나처럼) 확실히 전달받은 내용은 없습니다만, 최대한 많이 채용하려고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면접 결과는 이번 주 내로 드릴 예정입니다.
그 : 아, 감사합니다.
그와 면접자 1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아래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말문이 트인다.
면접자 1 : 하, 너무 떨렸네요.
그 : 그러게요. 답변 잘하셨어요.
면접자 1 : 떨려서 제대로 답을 못한 거 같아요. 어디로 가시나요?
그 : 이쪽으로 갑니다.
면접자 1 : 아, 저는 주차해놔서, 저쪽으로 갑니다.
그 : 차가 있으시군요. (어떤 과정에서 말이 나왔는지 기억이 애매하다) 아 여자친구가 있으시다고요.
면접자 1 : 네. 결혼할 생각이에요.
그 : (왠지 멋있게 느껴진다) 아 그렇군요.
면접자 1 : 네 그럼, 들어가세요.
그 : 들어가세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면접 결과가 발표된다. 혹시나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다.
1차 면접 불합격
별 타격이 없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 이미 최종 합격한 39번째 기업에 입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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