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인사가 만사다. 주어진 상황과 여건이 어떻든 사람/인간관계로 모든 것이 뒤집어질 수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그가 그토록 기피했던 농장이나 한인 쉐어하우스에서도 잘만 지내다가 돌아가는 한국인 워홀러가 많다. 먼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가 되며,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를 돕는 친구로 발전한다. 농장에 가서 만난 동료들이 너무 좋아서, 워킹 비자를 1년 연장해가면서까지 더 머무는 워홀러도 있다. 워킹 기간 중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에 골인하는 워홀러 커플도 있다. 이 커플의 결혼식에는, 워킹 시절 함께 알고 지냈던 워홀러들이 다 같이 참석해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같은 한인 쉐어하우스에 살았던 워홀러끼리 귀국 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다지는 경우도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그는 항상 빛보다는 그림자에 집중했고, 그래서인지 그림자를 더 많이 마주했다. 그림자를 자주 마주하다 보니, 그는 빛을 볼 것이란 기대를 아예 접었다. 실제 경험도 그렇고, 한인 웹사이트에서 부정적인 글들을 자주 읽다 보니 경계심이 강해졌다.
드라마/웹툰이나 영화를 보면, 호주에 가서 살겠다는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그런 인물들은 대부분 무언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한국에 불만을 품었거나, 심지어는 범죄자인 경우도 있다. 막연한 환상이나 도피로 호주를 택하는 것이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 같은 오지(Aussie) 드림이다. 하지만 이런 물렁한 생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나 그렇듯, 호주는 그렇게 물렁한 곳이 아니다.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워홀러가 많을수록,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기업 면접에서 워킹홀리데이는 스펙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실제로 시간만 허비하고 돌아가는 워홀러도 많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슬프지만 워홀을 떠나는 이들은 한국에서 그다지 성공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SKY 대학생, 의대생, 고시 합격생, 전문직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굳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지 않는다. 워홀러들의 영어 실력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무작정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이 갑자기 달라지기란 쉽지 않다.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는 한국인들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인 식당에서 매일같이 소주와 순댓국을 먹고 클럽과 카지노를 다니며 무리 지어 생활하는 한국인들도 있다. 호주에 도착한 워홀러라면, 무언가를 얻어가고자 한다면, 스스로 목표와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 환경도 잘 가려내야 한다.
그와 캠리는 브리즈번에서 출발해, 해안가를 따라 호주 남부로 향한다. 호주는 인구가 대도시에 몰려있기 때문에, 대도시 부근만 벗어나면 대자연과 지평선이 펼쳐진다. 해안도로를 타기도 하고, 목장 옆을 지나기도 한다. 그는 점점 운전과 주변 풍경이 익숙해진다.
그는 브리즈번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뇌어 본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지내면서 한인들과 있었던 일들이 가장 최근이며 많이 떠오른다. 그가 브리즈번을 떠나는 것은, 한인들과 있었던 일도 이유로 작용했다.
그는 자신이 한인들을 얕보면서도, 동시에 기대를 가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같은 한국인들에게 무언가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우월감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공존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요소들은 그와 한인들의 관계에서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는 남은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한국인을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워킹 시작부터 그래 왔지만, 이제는 더 확고하게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직접 겪은 갈등의 경험들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애초에 그의 워킹홀리데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이때부터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더더욱 줄인다. 이러한 판단과 선택은, 적어도 워킹홀리데이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판단이었다.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자제하면서, 자연스레 그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기회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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