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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06 - 인종차별

 여느 때처럼, 5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날의 주제는 여자다. 그런데 여자 얘기를 하던 독일인 2가 술에 취했는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야성적인 남자를 좋아한다, 털이 많아야 한다, 자신은 털이 많아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독일인 2는 수염도 덥수룩하고 가슴털도 많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독일인 2가 그와 한국인 쉐어메이트를 보더니, 털이 적다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독일인 2는 멈추지 않는다. 털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같이 있던 이탈리아인은 놀란 눈으로 그와 한국인 쉐어메이트를 바라본다. 그와 한국인 쉐어메이트는 말이 없다. 모멸감을 느끼기보다는, 어이가 없다.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독일인이 기괴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인 2는 약간 인종차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호주에서 지내면서, 인종차별 비슷한 사례를 몇 차례 겪었다.

 

  브리즈번에서 그에게 doggy라고 말하는 외국인을 본 적이 있다. 저녁 시간에 산책을 하던 중, 그의 시야에 한 백인 커플이 들어온다. 그는 먼발치에서, 커플 중 남자가 굉장히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지나가려던 중, 이 잘생긴 남자가 그에게 "Hey~~ Doggy~~"라고 한다. 눈이 풀려있고, 술에 취해 있다. 당시의 그는 영어가 서툴러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다가가서 'What?'이라고 물으며 웃었다. 외국인 여자는 외국인 남자에게 하지 말라면서, 너무 짓궂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가던 길을 마저 간다.

 그는 숙소에 돌아가서,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자신이 Doggy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색해보니, 인종차별을 하는 몰상식한 이들이 많이 쓰는 비유다. 개나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말포이가 헤르미온느에게 잡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를 깨닫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바보같이 자신을 모욕한 외국인에게 웃으며 다가가 무슨 말을 했냐고 멍청하게 물었던 것이다. 모욕을 당한지조차 모르는 멍청한 그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낄낄거렸을까. 옆에서 말리던 외국인 여자도 싫다. 여자는 진심으로 말리려는 게 아니라, 같이 즐기면서 말리는 척했을 뿐이다. 끼리끼리 만난 인종차별주의자 커플이었다.

 

 이외에도 인종차별 관련 게시글이 한인 워홀러 커뮤니티에도 많다. 그가 호주에 있던 시절, 술에 취한 10대 백인이 아무 이유 없이 한국인 남성에게 술병을 휘둘렀다. 술병에 맞은 한국인 남성은 순간 눈이 핑 돌고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고 했다. 

 

 이처럼 인종차별이 확실한 경우도 있지만, 애매모호한 경우도 있다. 

 

 도로 옆을 걷고 있으면, 가끔씩 차가 빵빵거리면서 지나간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십대로 보이는 백인들이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그는 이 사례를 공장의 동료에게 이야기한다. 이 동료는 시드니에서 브리즈번으로 넘어온 호주인이다. 그런데 동료가 말하길, 동료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한다. 도로를 걷다 보면, 경적을 울리며 놀래키고 소리 지르는 차주들을 마주치곤 한다는 것이다.

 

 동료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료의 말을 듣고 나자, 그는 조금은 이성을 되찾는다. 무조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인종차별적 동기로 인한 행동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행동이었는지를 판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철없이 행동하고 몰상식한 이들은 존재한다. 그는 공장 동료의 말을 듣고, 도로에서 차들에게 겪었던 일은 인종차별 사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다.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자신을 상정하면, 화가 나면서도 편안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애매하고 어려운 문제다. 무조건적인 선악은 없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국인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인이 많은 고기 포장 파트에서 일하던 시절, 한 인도인이 신입으로 들어왔다. 첫날이었으므로 인도인은 어리버리했고, 더군다나 영어가 서툴렀다. 파트의 한국인들은 어리버리한 인도인을 예의주시했다. 인도인의 속도가 느리자, 한국인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라, 제대로 일해라는 식이다. 성화에 못 이긴 인도인이 무리하게 일을 빠르게 하다가 여러 실수를 한다. 한국인 무리 중 한 명이 인도인에게 다가가, 인도인이 손에 쥔 고기를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NO!" 라고 외친다. 이 모습을 본 다른 한국인들은 고개를 젓기도 하고, 낄낄거리며 비웃기도 했다. 인도인은 이 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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