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부터 5명의 무리(그, 한국인 쉐어메이트, 독일인 1/2, 이탈리아인)는 주방 식탁에 앉아 있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인 2가 클럽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생뚱맞긴 하지만, 마침 다들 클럽을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독일인 2의 한 마디가 무리 전체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5명 모두 남자인지라, 클럽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있다. 여자와 클럽 얘기밖에 안 하는 독일인 2는 어느 때보다 신이 나 있다.
그와 쉐어메이트들은 멜버른 도심으로 향한다. 입장료가 무료인 클럽을 찾아 들어간다. 클럽은 어두컴컴하고,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온갖 피부색, 인종, 국적을 총망라하는 곳이 클럽이다. 그는 클럽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호주의 클럽을 가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해서 따라왔다. 들어가보니, 내부 구조나 조명 등은 한국의 클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들리는 음악이 다를 뿐이다. 한국인 쉐어메이트 'ㅇ'은 함께 오긴 했으나, 이미 술에 취해 있다. ㅇ은 클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클럽에 도착하자, 5명의 무리는 뿔뿔이 흩어진다. 남자들이 클럽에 가는 이유는, 친구들끼리 우정의 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성을 찾으려는 목적이 크다. 그는 스테이지 정중앙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그저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그는 춤을 출 줄 모른다. 춤을 잘 추지 못하니, 이성이 다가올 리가 없다. 아무런 소득 없이 흔들어대는 것에 지친 그는,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함께 온 4명의 쉐어메이트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일인 1과 2 - 붙어서 같이 다닌다. 2명의 이성을 노리는 듯하다. 둘의 주위엔 여성들이 꽤 포진해 있다.
독일인 1은 조용하지만 생긴 것은 미소년 느낌이다. 말은 적지만 외모는 괜찮게 생겼다. 얼굴마담 역할로 보인다. 독일인 2는 크리스마스 때 클럽에서 여성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고 했다. 오늘도 뜨거운 밤을 보낼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독일인 1의 외모를 이용하여, 다가온 이성에게 접근하려는 듯하다.
한국인 쉐어메이트 ㅇ - 클럽을 그리 즐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비틀비틀거리다가 클럽 구석의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그런 ㅇ을 챙겨줄 쉐어메이트는 없다. 그를 포함한 다른 일행들은 ㅇ을 버려둔 채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바쁘다.
이탈리아인 - 이탈리아인은 그야말로 음악과 춤을 즐기러 온 듯하다. 이탈리아인은 스테이지 가장 앞쪽, 디제이가 위치한 박스 앞에서 뒤돌아서서 홀로 춤을 추고 있다.
독일인 1/2, 한국인 쉐어메이트 ㅇ의 모습은 그리 흥미롭지 않다. 클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인을 눈여겨본다. 이탈리아인은 스테이지 맨 앞에서 춤을 춘다.
이탈리아인은 술을 샷으로 마시면서, DJ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DJ는 남자이고, 단 위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탈리아인은 다른 사람들을 등지고 뒤돌아서서, 박스에다 대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이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가끔씩 박스 위에 올려둔 샷들을 단숨에 들이킨다. 위스키나 데킬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알 수 없는 것에 이끌려, 이탈리아인을 계속 관찰한다. 이탈리아인은 정말로 클럽을 즐기고 있다. 클럽은 전체적으로 어두운데, 눈이 부신 동그란 라이트가 무작위적으로 이곳저곳을 비춘다. 클럽의 푸른색 라이트가 가끔씩 이탈리아인을 비추면, 이탈리아인의 모습은 마치 발레 공연장의 발레리노같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탈리아인은 끊임없이 몸을 들썩들썩 춤을 추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인이 추는 춤이 마음에 들어서, 따라하기 위해 관찰한다. 그렇게 어려운 춤은 아니다. 이탈리아인은 그저 다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스텝만 밟고 있다. 상체와 팔은 그저 스텝이 가는 대로 흐느적거리고, 가끔씩 샷을 집어 들이킨다. 다리가 길고 마른 체형이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여서 그런지, 춤을 추고 있는 이탈리아인의 등이 더욱 넓게 느껴진다. 그는,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이탈리아인 쉐어메이트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원리를 알아냈으니, 그는 이탈리아인의 춤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느낌이 살지 않는다. 그는 자신만의 느낌을 섞어서 마구 몸부림을 친다. 옆에 있던 익명의 외국인이, 너무 난동을 부리는 그에게 진정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춤과 음악에 심취해 있는 이탈리아인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클럽의 재미를 느낀다.
호주 클럽은 처음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도 몇 차례 클럽을 가본 경험이 있다. 그는 클럽을 갈 때마다,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춤에는 문외한인 데다, 음악은 시끄럽고 사람은 바글바글하다. 그런 상태에서 이성을 찾아 헤매기만 했으니,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그에게 클럽은, 시끄럽고 불편하고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이탈리아인 쉐어메이트는 이성이 아니라 클럽 자체를 즐기고 있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롯이 음악과 춤, 술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인이 모습이 멋있고, 부럽다. 저게 바로 클럽을 제대로 즐기는 모습이구나 생각한다.
새벽 3시 즈음, 그와 쉐어메이트들은 클럽에서 빠져나온다. 한국인 쉐어메이트 ㅇ은 아까 벌써 우버를 타고 먼저 쉐어하우스로 가버렸다. 그는 이탈리아인 쉐어메이트를 보면서, 계속해서 신나게 몸을 흔들다가 나왔다. 클럽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처럼 따라하다가 나온 것이다. 그는 기분이 썩 괜찮다. 그가 몰래 따라한 선생님인 이탈리아인도 즐길 만큼 즐겼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독일인 1, 2도 함께 나온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독일인 2는 기분이 더 나빠 보인다. 그는 독일인 2를 보며 속으로 웃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독일인 2는 이 클럽에는 자신의 스타일인 이성이 없다며, 재미없었다고 말한다. 독일인 1은 평상시처럼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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