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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38 - 벽 철거

 바닥 골조에서 못을 뽑는 일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난다. 전체 집 중에서 절반의 면적만이 바닥 골조가 드러나 있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의 골조는 아직 손을 댈 수 없다. 나머지 절반의 집이 아직 철거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지붕 때문인 것으로 예상된다. 철거되지 않은 건물의 지붕은 박공지붕이다. 책을 뒤집어 놓은 뾰족한 모양의 지붕이다. 박공지붕은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 골조를 더 박아 단단히 고정하기 때문에, 밋밋한 지붕보다 철거하기가 힘들다. 철거되지 않은 쪽 건물과 차고의 박공지붕은, 기와는 모두 제거되었지만 나무 골조가 아직 건재하다.

 

 

 바닥 골조를 깨끗이 하는 작업이 끝나자, 곧바로 다음 작업으로 돌입한다. 작업의 순서는 데이빗이 결정한다. 데이빗은 그에게,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벽돌담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벽돌담은 물론, 집의 일부인 벽돌벽도 철거해야 한다. 그가 오기 전, 데이빗이 혼자서 철거하다가 남은 부분인 듯하다. 데이빗이 먼저 시범을 보인다. 벽돌로 이루어진 담과 벽은, 중간중간 시멘트를 발라 굳혔기 때문에 일반 망치로는 철거가 불가능하다. 시멘트 회반죽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해머를 사용해야 한다. 그가 군대 시절에나 보았던, 영화 타짜에서 나오는 오함마다. 데이빗은 오함마를 가져와, 벽의 가장자리를 때리기 시작한다. 벽을 철거하는 데이빗의 모습을 보며, 그의 눈이 빛난다. 데이빗은 시범을 보인 뒤, 그에게도 해머를 하나 가져다준다.

 

 그는 어서 자신이 직접 해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영화에서나 보던 해머링이다. 오함마는 손잡이의 길이가 길고, 상당히 무겁다. 무게 중심이 손잡이가 아니라 타격이 이루어지는 쇳덩이에 있기 때문에,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아 오함마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꼭 한 손을 써야 한다면, 쇳덩이 바로 아랫부분의 손잡이를 잡으면 미약하게나마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는 오른손잡이다. 왼손으로는 손잡이 가장 끝을 잡고, 오른손은 왼손보다는 쇳덩이에 가까운 적당한 지점을 잡는다. 해머는 무겁기 때문에, 계속 들고서 망치질을 하면 힘이 빠진다. 그와 데이빗은, 해머를 들어서 가격하고 난 뒤에는 발의 위치에 유의하면서 해머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리곤 다시 온 힘을 다해서 해머를 들어 올려 벽돌을 가격하고, 떨어뜨린다. 

 

 

 서구권 영화나 뮤직비디오에서 해머링이 꽤 자주 나온다. 해머링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팔이 두껍고 몸이 좋으면서 먼지투성이인 남자다. 커다란 해머를 들어서, 벽을 쿵 때린다. 해머를 들어 올리고 벽을 가격하는 과정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해서, 더욱 돋보인다. 그는 자신이 영화나 뮤직비디오에 나온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벽을 가격한다.

 

 재밌긴 하지만 해머링은 꽤 위험한 작업이다. 몸의 중심을 잘 잡고, 무거운 해머에 몸이 딸려나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벽을 때릴 때, 그리고 때리고 난 이후에도 해머의 쇳덩이가 몸을 향하지 않도록 유지한다. 해머가 벽을 때릴 때 튕겨 나오는 파편에도 주의해야 한다. 무거운 쇳덩이의 해머는 강력하지만, 강력한 만큼 무겁고 그의 힘은 한계가 있다. 해머를 제대로 휘두른다면 벽돌 하나 두께의 벽을 뚫어버릴 수도 있겠으나, 인력으로 해머를 그렇게 휘두르기는 힘들다. 그와 데이빗은 가장자리의 벽돌을 노려 때린다. 해머가 잘 맞으면 벽돌 하나가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다. 빗맞으면, 떨어져 나가지 않거나 벽돌이 쪼개진다. 뮤직비디오처럼 해머링 한 번에 벽이 뚫리거나 전체가 넘어가는 장면은 일어나지 않는다.

 

 

 데이빗은 그에게, 깨끗하게 떨어져 나온 벽돌들은 따로 쌓아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건물 신축 때 재활용을 하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벽돌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신중하게 벽을 때릴 필요는 없다. 가끔 눈에 띄는 깨끗한 자재들을 모아놓는 정도다. 가장자리부터 철거를 시작해서 어느새 벽의 크기가 꽤 줄어들면, 마지막에는 발로 밀어서 벽 자체를 넘어뜨린다. 넘어뜨리고 난 후, 여기저기 널려있는 벽돌들을 정리해야 한다. 깨끗한 벽돌들은 따로 쌓아두고, 쪼개진 벽돌들은 도로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통까지 가져가서 버린다. 

 

 쓰레기통이라고 표현한 것은, 커다란 덤프트럭의 뒤편 짐 싣는 곳이다. 트럭은 보이지 않고, 트럭 뒤편 짐 싣는 커다랗고 네모 각진 철제 트렁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폐기물이 가득 찰 때마다, 덤프트럭을 불러 철제 트렁크를 가져가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덤프트럭이 가져가기 용이하게끔, 커다란 트렁크는 도로 바로 앞에 위치한다. 부지가 넓기 때문에, 그와 데이빗은 해머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벽돌 조각들을 꽤 멀리서부터 날라야 한다.

 

 

 벽돌을 나를 때는 손수레를 이용한다. 데이빗은 이 손수레를, Wheel barrow라고 부른다. 그가 처음 듣는 단어다. 검색해보니, Wheel barrow는 '외바퀴 손수레'라는 뜻이다. 그와 데이빗은 Wheel barrow에 벽돌을 가득 담아서, 도로 앞 트렁크까지 끌고 가서 쏟아버린다. Wheel barrow는 혼자서 밀어서 옮겨야 한다. 바퀴가 하나밖에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옆으로 쓰러진다. 벽돌로 가득 찬 손수레는 상당히 무거워서, 균형을 잘 잡으면서도 힘을 실어서 밀어야 한다. 데이빗은 경력자라 Wheel barrow를 잘 몬다. 경사진 곳, 턱이 있는 곳에서도 힘 있게 밀어서 잘 넘긴다. 그는 처음에는 많이 서투르다. 살짝만 턱이 있어도 넘어가지 못했고, 경사진 곳에서도 올라가다가 막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가 생각하는 야성적인 남성의 모습에, 데이빗이 더 어울려서 자신이 패배한 느낌이다. 

 

 Wheel barrow를 다루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서, 적응에 시간이 소요된다.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그와 데이빗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돌담을 해머로 가격해서 철거하고, 벽돌들을 골라낸다. 상태가 좋은 벽돌도 꽤 많아서, 뒷마당 수영장 한편에 쌓아둔 것이 조그마한 담을 형성한다. 조각난 벽돌들과 쓰레기는 전부 손수레에 담아 쓰레기통으로 돌진한다. 뒷마당의 벽과 담들은 계단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계단에 나무판자를 깔아놓고 손수레를 밀어 올린다. 경사나 턱이 있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벽돌을 가득 담은 무거운 손수레는 그 자리에서 전진을 멈추기 때문에 다시 내려가야 한다. 경사나 턱이 있는 곳일수록, 망설임없이 과감하게 힘껏 밀어야지만 넘어갈 수 있다. 

 

 

 그도 조금씩 손수레를 다루는 데 익숙해진다. 데이빗과 손수레 밀기, 벽돌 멀리 던지기 시합을 하기도 한다.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 즈음, 커다란 담장들과 커다란 벽들의 철거가 어느정도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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