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장은 항상 친한 친구를 레스토랑에 데려온다. 나이는 남사장과 비슷한 중년으로 보이며, 키와 체구가 상당히 크고 수염이 많다. 남사장의 친구는 레스토랑 오픈 전부터 2시간 정도 머물며 웃고 떠들다가, 레스토랑이 바빠질 즈음 떠난다. 그는 남사장을 대하기가 조금 껄끄러웠지만, 남사장의 친구는 푸근한 아저씨같이 인상이 좋다. 출근할 때마다 마주치다 보니, 그와 남사장의 친구는 어느덧 안면이 튼다. 남사장의 친구도, 그를 굉장히 좋게 본 듯하다. 그는 사실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인상이다.
그는 평소처럼 웨이터 일을 하다가, 문득 날짜를 본다. 이 날은 그의 생일이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는 원래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다. 친구들의 생일에도 아주 가끔 축하 메시지만 보낼 뿐, 선물을 주는 등의 이벤트는 해준 적이 없다. 관심이 별로 없고 귀찮다. 그는 본인의 생일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던 그도, 가족과 친구 없이 홀로 생활하다 보니 생일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나 철판요리 레스토랑에서는 생일 파티가 많다. 케잌을 가져와서 보관해달라고 했다가, 식사가 끝날 때 즈음 그와 웨이트리스들이 케잌에 불을 붙여서 노래를 부르며 갖다 주곤 한다. 일 때문에 한 행동이지만, 일부러 웃으며 다른 이들의 생일을 축하해주다 보니 그도 조금은 생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생일이라도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그는 철거 일을 끝낸 뒤 레스토랑에 와서 웨이터 일을 한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 테이블을 닦고 의자 밑을 청소한다. 누군가는 슬픈 생일이라고 하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생일에도 일을 할 정도로 호주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그다.
그런데 이날, 정말 우연히도 여사장이 그의 생일을 묻는다. 의자 밑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그와 뭔가 대화를 하던 여사장은, 뜬금없이 그의 생일이 언제냐고 묻는다. 그는 약간 당황스럽다.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하면, 무언가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한다. 여사장에게, 사실 오늘이 생일이라고 답한다. 생일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는 굳이 축하의 말이나 무언가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레스토랑 손님들에게서 본 것처럼,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생일은 의미가 큰 것 같다. 여사장은 깜짝 놀라더니, 남사장에게 이를 알린다. 레스토랑에는 그와 요리사, 여사장, 남사장과 남사장의 친구가 남아 있었다. 원래라면 이미 떠나고 없을 남사장의 친구도 이상하게 이날은 마감 시간까지 남아있다. 남사장은 여사장에게 이 말을 듣자마자, 그에게 마감을 끝내도 집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마감이 끝나자, 남사장은 레스토랑 문을 걸어 잠그고 와인병을 딴다. 그를 위한 축하 파티가 열린다.
인도네시안 요리사, 여사장, 남사장, 남사장의 친구, 그 이렇게 5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남사장은 음악을 틀고, 와인병을 따서 잔을 돌린다. 그에게도 잔을 권한다. 그는 정말이냐고 물은 뒤, 잔을 받는다. 그는 생일 축하를 받는다는 사실보다, 꽤 비싼 와인을 흔쾌히 마시게 해주는 데 조금 더 고마움을 느낀다. 다 같이 잔을 채운 뒤, Cheers를 외치며 잔을 부딪힌다.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남사장과 여사장은 이미 와인을 마신 후여서 마감 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와인과 아담한 축하 파티에 그는 가슴 속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이때 처음으로 그는 남사장의 친구와 이야기할 시간이 생긴다. 오며 가며 인사는 많이 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다. 남사장의 친구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라고 한다. 푸근한 인상에, 하는 일도 멋있다. 남사장의 친구와 그는 생각이 꽤 잘 맞는다.
남사장의 친구는 그에게,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라고 말한다. 남자라면 새로운 것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집어던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새로운 것을 도전하거나 헤쳐나갈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 호주에서 행동해온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남사장의 친구는 그에게 여러 상황, 직업, 이성 등 다양하게 경험해보라고 조언한다. 본인도 많은 경험을 하긴 했으나, 아직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는 이 조언이 마음에 든다. 그가 호주에 온 이유, 호주에서 해온 경험들과 일맥상통하는 조언이다. 그는 조언을 들으면서, 자신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인정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사장의 친구가 그의 진짜 한국식 이름을 묻는다. 호주에서 만난 외국인 중 처음으로,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는 놀라우면서도 감동한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한국식 이름을 제대로 알려준다. 남사장의 친구는 몇 번 더 되묻고, 발음이 맞는지 확인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남사장이 옆에서 그를 부른다. 그러자 남사장의 친구가 남사장에게 "No No, He's name is ~~~~ " 라고 고친다. 그의 이름 중 ㅇ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남사장은 U로 발음해서 [어]라고 한다. 방금 막 진짜 이름을 배운 남사장의 친구가, 어가 아니라 w의 [우우우우]라며 장난스럽게 지적한다. 그는 이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난다.
그의 생일 파티는 약 1시간 정도 이후 끝난다. 캠리를 몰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그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준 이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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