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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51 - 핸드폰 고장

 투잡 생활을 하던 중, 잘 버텨주던 그의 핸드폰이 고장 난다. 그가 호주에 도착한 순간부터 함께 했던 핸드폰이 먹통이 된다. 처음에는 액정 화면이 지직거리는가 싶더니, 점점 검은 화면이 뒤덮어서 결국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실 이전부터 조짐이 있기는 했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전원을 다시 킬 때, 전원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세 번 시도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빈도가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에는 핸드폰이 완전히 나가버린다.

 

 

 하필이면 그의 핸드폰이 고장 난 때는, 남사장과 새로운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던 와중이었다. 남사장과 문자를 주고받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바닥나서 충전하려 꽂아두었다. 꽂아두고 조금 있다가 보니 핸드폰이 꺼져있었고, 이후로 그의 핸드폰은 두 번 다시 켜지지 않는다.

 

 정 급하면 숙소 내의 다른 방문을 두드리고, 처음 보는 플랫메이트들에게서라도 잠시 폰을 빌리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남사장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남사장이나 데이빗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았다. 어찌저찌 핸드폰을 빌리더라도, 번호를 모르니 문자나 전화를 할 수 없다. 늦은 밤이어서, 마트들도 모두 닫았다. 그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

 

 

 새로운 건설 현장은 문자를 받지도 못했고, 핸드폰이 없어 네비를 볼 수도 없으니 포기한다. 그의 캠리에는 네비게이션이 달려있지 않다. 그는 다음날, 건설 일은 포기하고 바로 레스토랑으로 간다. 레스토랑까지의 길은 이미 외웠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이 필요 없다. 그가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남사장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그는 남사장에게,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남사장은 처음에는 약간 화가 난 듯했으나, 그의 해명을 듣고는 이해했다는 표정이다.

 

 웨이터 일은 늦은 밤에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쇼핑센터가 문을 닫는다. 마침 다음날이 주말이라, 건설현장과 웨이터 일이 모두 없다. 그는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K-MART로 향한다. K-MART에는 그가 자주 돌아다니는 의류, 작업화 코너 외에도 전자제품 코너가 있다. 전자제품 코너에는 핸드폰들이 포장되어 걸려있다. 그는 전자제품 코너 진열장으로 향한다.

 

 전자제품 코너에는 핸드폰 공기계, 유심, 충전 케이블, 액정 보호 필름, 보호 케이스 등 악세사리가 많다. 핸드폰 기종이 많지는 않으나 약 5가지 정도 있다. 비싼 것은 몇 백 불이 넘어간다. 그는 그만한 돈을 지출할 의향이 없다. 가장 싼 핸드폰을 찾는다. 가장 싼 것은 15불 정도인데,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하다. 화면이 너무 작고, 거의 폴더폰에 가깝다. 그는 네비게이션 기능을 써야 하므로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중 가장 싼 것을 고른다. 다행히도 싼 모델이 있다. 약 30불의 가격이다. 액정도 작고 속도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하겠지만,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구매한다.

 

 

 그는 새로 산 스마트폰 기계에, 그가 쓰던 유심 카드를 끼워 넣는다. 아주 간단한 절차만 거치자 즉시 개통이 된다. 유심 카드가 옮겨왔으니, 연락처와 문자 등이 그대로 넘어온다. 약 3일 만에, 그는 다시 온라인 세상에 접속한다. 접속이 끊긴 동안 특별한 문자나 전화가 오진 않았지만, 다시 접속되었다는 사실에 왠지 기분이 좋다.

 

 그의 새로운 핸드폰은 전화와 문자, 유튜브 시청 등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이 많다. 그는 이전 핸드폰에 가계부 어플을 다운받아 사용했다. 해당 가계부 어플에 매일매일의 지출 내역을 상세히 분류하고 적어놓았다. 그가 노트에 수기로 정리한 가계부는, 핸드폰 가계부 어플을 보면서 큰 줄기만 정리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가계부 어플은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소비 성향을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와 소수점 단위까지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어플의 데이터가 전부 날아갔다. 가계부 어플을 구글 계정과 연동시켜놓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폰에서 가계부 어플을 다운로드하니 순수한 백지다. 약 8개월 동안 매일 꼼꼼히 앱에 기록해두었던 지출 관련 데이터가 모조리 날아갔다. 이후 그가 이전 핸드폰을 복구하려 노력해보았으나, 메인 보드가 손상되어서 결국 복원하지 못한다. 한 순간의 고장에, 긴 시간 동안 공들여서 만들어둔 방대한 데이터가 날아가니 허탈하다. 그는 이후에는 가계부 어플을 깔지 않고 노트에만 간단히 정리한다.

 

 

 새로 구비한 핸드폰도 문제다. 전화와 문자, 유튜브 시청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값이 싼 만큼, 성능이 떨어진다. 다른 무엇보다, 구글 맵과 네비게이션 사용에 지장이 있다. 그의 새로운 값싼 폰은, 데이터 처리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구글 맵을 시작할 때, 장소를 검색할 때 핸드폰 화면이 한참 동안 정지하면서 버벅거린다. 거의 1분은 기다려야 구동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구글 맵을 여는 것과 검색까지는 가능하기라도 하다. 그런데 그가 목표지까지의 네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는 순간, 핸드폰은 아예 마비된다. 

 

 구글 맵은, 네비게이션 기능을 시작할 때 본 서버에서 데이터를 불러와 다운받는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지도를 켜고, 목적지를 검색한다. 목적지에 대한 정보들이 나온다. 현재 위치부터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설정한다. 대략적인 경로와, 예상 시간이 뜬다. 여기까지는 가능하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네비게이션, 즉 안내 시작을 누르는 순간 핸드폰은 멈춰버린다. 아마도 서버에서 지도 정보, 교통 상황, GPS 정보 등을 종합한 뒤에 그의 핸드폰으로 보내서 다운로드가 완료되면 안내를 시작할 수 있는 듯하다. 그가 판단하기에, 그의 핸드폰은 네비게이션 안내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이 방대한 데이터를 다운로드할 수 없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가 얼마나 걸리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네비게이션 안내 시작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보았다. 15분까지 기다려본 뒤, 네비게이션 기능은 그의 핸드폰에서 없는 기능으로 결론짓는다. 

 

 그는 이후 혹시 네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할 일이 생기면, 안내 시작 버튼을 누르기 직전 화면을 보면서 운전한다. 안내 시작 버튼을 누르면 핸드폰 전체가 멈춰버리기 때문에, 지도조차 볼 수 없다. 그는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경로 설정 단계까지만 진행시킨다. 경로가 설정되고, GPS를 통해 그의 현재 위치가 경로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이 상태로 네비게이션 안내 없이, GPS가 표시하는 그의 위치를 보면서 운전한다. 주변 식당이나 건물들을 보면 대강의 방위 파악이 가능하다. 옳게 가고 있는지는 표시된 경로에서 이탈하는지, 반짝이는 그의 GPS 위치가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지 보면 된다. 오른손으로는 김이 서리는 앞유리를 닦고 / 핸드폰 구글 맵의 GPS 위치를 계속 확인하며, 왼손으로 운전한다. 곡예에 가깝다. 하지만 불편함을 참고 억지로 하다 보니, 불가능하진 않다. 곡예에 가까운 운전을 통해, 그의 운전 실력이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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