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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92 - 에어컨 분해, 재조립

 그가 새롭게 구한 단기 알바는, 에어컨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알바다. 현장은 상당한 높이의 고층 빌딩으로, 멜버른 도심 한복판에서 공사 중이다. 그는 가족여행 당시, 전망대가 있던 유레카 타워에 올라간 적이 있다. 그가 새롭게 일을 할 현장인 고층 빌딩은, 전망대가 있는 유레카 타워에 필적할 정도로 높다.

 

 공사는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 공사는 거의 끝났다. 밖에서 보면, 높이 솟아 반짝이는 고층 빌딩이다. 외부와 골조 공사는 거의 끝났지만, 내부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공사 중인 건물에, 그와 한국인 인부들이 투입된다.

 

  

 그와 10명 남짓 한국인들의 임무는, 주거용 구역 호실의 에어컨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다. 이 고층 빌딩 공사에서, 당연히 에어컨 설치를 전담하는 인부가 있다. 해당 인부가 일을 완벽하게 했다면, 그와 한국인들에게는 단기 알바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에어컨 설치 담당 인부는 낮은 층수의 호실부터 에어컨만 설치하며 차근차근 올라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해당 인부는 현재 약 70층에서 에어컨을 설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해당 인부가 에어컨을 설치할 때 전기 배선을 잘못 꽂았는지,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70층까지 이미 설치된 에어컨이 전부 오작동이다. 공사 기간과 입주일은 정해져 있으니, 해당 인부가 다시 내려와서 고칠 시간이 없다. 인부는 앞으로 오작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70층 위로 설치를 계속한다. 최고층까지 설치가 끝나면, 해당 인부는 70층부터 오작동하는 에어컨을 고치면서 내려온다.

 

 그와 한국인 인부들은 지상에서부터 오작동하는 에어컨을 분해하면서 올라간다. 완전히 분해하는 것은 아니고, 전기선이 드러날 정도까지만 분해한다. 나사 몇 개를 풀고, 껍데기만 들어내면 된다. 그러면 한국인들 중 에어컨 기술자가, 전기선을 다시 연결한다. 연결 후 인부들은 껍데기를 다시 씌우고 나사를 조여 에어컨을 완성시킨 뒤, 리모컨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다음 호실로 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인 인부들은 세 팀으로 나뉜다.

 

 1. 가장 앞선 조 - 분해 담당. 나사를 풀고 껍데기를 제거하기만 하면서 올라가는 조로 2명씩 2개 조

 2. 중간조 - 가장 중요한 부분, 에어컨 전기 배선을 다시 연결하는 기술자 

 3. 마지막 조 - 재조립 담당. 껍데기를 씌우고 나사를 조이고 리모컨으로 작동 확인. 2명씩 2개 조

 이렇게 조를 짜도 남는 인원 몇몇은, 그때그때 속도롤 더 내야 하는 조에 따라붙어서 일을 돕는다. 

 

 

 첫날은 다같이 돌아다니며 해야 할 일을 파악하고 체계를 잡는데 집중한다. 기술자를 중심으로, 조를 어떻게 짜야하고 분해와 조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나눈다. 다 같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것이 나을 것이냐, 조를 정해서 따로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이냐, 작업 속도는 어느 정도가 돼야 하느냐 등이다. 도출해낸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이렇다. 분해 조가 앞서고, 두개 층 정도 밑에서 기술자가 연결하며 따라가고, 재조립 조가 기술자의 두개 층 정도 밑에서 마감하는 식이다.

 

 기술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제가 생긴 에어컨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 돌발 상황은 누구에게나 난감하다. 기술자는 에어컨을 직접 해체하고 조립하며 시범을 보이는데, 매번 할 때마다 주의사항이 하나씩 추가된다. 그는 처음에는 해야 할 일을 알아듣는데 바빠 신경 쓰지 못했으나, 이내 상황을 알게 된다. 

 

 이 고층 빌딩의 주거용 구역 모든 호실에 설치된 에어컨은 한국 대기업 모 사의 에어컨이다. 시공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현장에서는 한국 대기업 본사에 이를 알렸고 모 사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직원을 파견보냈다. 이 직원이 바로 가장 중요한 중간조의, 에어컨 전기 배선을 보고 다룰 줄 아는 한국인 기술자다. 한국 기업의 에어컨이기도 하고, 한국인 직원과 함께 해체와 재조립을 진행하는 데는 같은 한국인들과 일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하에 멜버른 현지에서 한국인 인력을 고용한 것이다. 본사에서 온 기술자를 제외하면 그와 다른 한국인들은 배선을 다룰 줄 모른다. 그는 어떤 날은 에어컨을 해체하고, 어떤 날은 재조립한다. 

 

 그의 면접을 봤던 면접관은, 모 사로부터 일을 받은 중간 매니저인 셈이다. 일을 받고, 인력들을 모집하던 와중 화이트 카드를 소지한 그가 운 좋게 발탁된 것이다. 그는 한국 대기업의 에어컨이 이 커다란 고층빌딩 전체에 시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약간의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간만에 한국 대기업의 친숙한 로고가 표시된, 깔끔한 하얀 에어컨을 본다. 왠지 이 일을 문제없이 잘 해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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