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로 결심했을 때는, 이러저러한 외부 상황 등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특별히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자리도 잡고, 발전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라도 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도피하여 선택한 것이 독서였습니다. 남들처럼 뭐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려 독서실을 갔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독서실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누군가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야지, 책을 읽느냐" 고 질책했지만 당시 저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책을 읽었고, 다행스럽게도 이는 틀린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시작한 독서였지만, '그래도 책이라도 읽으면 시간 낭비는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옳았고, 그 결과 자존감 회복은 물론 건강하고 확고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제가 책을 읽는 이유를 나름 거창한 말로 포장하고 합리화해보려 합니다. 또 이에 더해 '책을 읽으면 좋습니다' 라는 진부한 교훈을 진부하지 않게 전달해 보고자 합니다.
책 속에는 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책 속에서 찾고자 한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식'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그래야 하지?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식으로 불만을 품었으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찾으려 시도한 적은 없었습니다. 갈수록 불만은 쌓였고, 이는 분노로 표출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접근해보지 않았으므로, 이는 무지로 인한 불만과 갈 곳 없는 분노였습니다.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평이 좋고 멋있어 보이지만 시도할 엄두는 내지 못했던 책인 '총, 균, 쇠'를 골랐습니다. 다행인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이 책은 제 불만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해답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궁금했던 것은 '인간과 세상' 이었습니다. 왜 인간은 이런 모습일까? 왜 세상은 이런 모습일까? 인간과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을까? 제가 가진 의문이었습니다. 총균쇠를 읽으며 이 의문에 대한 저자 나름의 주장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본문에서 저자가 추천하거나 참조한 책들도 읽었습니다. 이후 몇 개월에 걸쳐 독서를 지속하면서, 어떤 독서를 해야할까 생각하며 정리하고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시간이 꽤 걸린 일이었지만, 이 때 정립한 독서 방향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며 진행 중입니다. 아래는 제가 정립한 세 가지 독서 방향입니다.
1)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했으며 현재 어떤 모습인가 (KDC 400 자연과학 / 900 역사 등)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했으며 현재 어떤 모습인가 (KDC 300 사회과학 / 900 역사 등)
2) 그러한 모습의 인간으로써, 그러한 모습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KDC 100 철학 등)
3)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위인전, 자서전 등)
제가 큰 줄기로 잡은 세 방향입니다. 각각의 분야가 겹칠 때도 있지만 나름 명확하게 나눌 수 있겠다 생각하여 이렇게 잡았습니다. 애초에 제가 가진 의문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의문이었으므로, 읽은 책들은 대부분 KDC 300번(사회과학 분야) 도서들이었습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나름의 틀이 잡힌 이후에 2번과 3번에 대해 독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향상 2번보다 1번과 3번에 대해 독서할 때가 더 재미있어서 아직 철학 쪽 독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보면 모든 것이 혼란 그 자체입니다. 숨가쁘게 움직이는 물류센터,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해내는 주방은 그렇게 혼란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물품이 섞이거나 꼬이지 않는지, 어떻게 많은 주문들 속에서 주방 스탭들이 두 손 놓고 항복을 선언하지 않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물류센터는 재고관리시스템, 운영관리시스템, 수송관리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물류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모든 데이터를 전산으로 관리합니다. 바쁜 주방에서는 이선균이나 고든램지 같은 주방장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음식들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지시를 내리고, 각 파트를 담당한 조리원들은 주방장과 팀원의 압박 속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며 음식을 제 시간에 제공하려 바삐 움직입니다.
물류센터와 주방조차도 첫 눈에 이해하기가 힘든데, 하물며 '인간' 이나 '사회' 는 오죽하겠습니까.
물류센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물류시스템 관련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방이 돌아가는 생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실제로 경험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도 경험과 공부를 하면 이해하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이 때 책은 무한한 간접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공부를 돕는 최적의 도구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정립된다면, 나와 내 주변을 바라볼 때 느끼는 혼란이 줄어들 것이고, 그로 인해 불만과 분노가 아니라 더 건강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 속에서 인간과 사회에 관한 지식을 읽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나름의 가치관을 확립했습니다. 무지한 상태에서 불만과 분노로 가득했던 시절보다, 책을 통해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비록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확실히 변화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시작하고 1년이 다 되었을 무렵, 어느샌가 사고가 넓어지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자세한 내역은 '도서분류표 포스팅 - 읽은 도서 목록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책 속에는 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찾고자 했고, 책 속에는 그 지식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지식을 얻을 겁니다. 저처럼 지식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와 달리 책 속에서 위안을 찾고자 할 수도, 재미를 찾고자 할 수도, 아니면 또다른 무언가를 찾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각자 개인마다 찾고자 하는 것은 다양할 겁니다. 하지만 제 경험과 견해로는, 무엇을 찾던 책 속에는 그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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