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찢어버리고, 그는 다시 서류 지원에 착수한다. 정신없이 서류를 지원하던 와중, 한 공고가 눈에 띈다. 산업군도, 직무도 생소한 공고다. 바로 8번째 기업의 공고다.
8번째 기업은 무슨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직무도 '서비스 기획'이란다. 서비스 기획이라니,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고민하는 직무인가? 실제로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로서는, 뭐하는 회사인지 직무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도 자X설닷컴에 공고가 올라왔고, 매출도 1000억이 넘는다. 그는 일단은 8번째 기업에 서류를 지원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사와 직무에 대한 이해 따위는 내동댕이치고 복사-붙여넣기로 난사한 이력서는 서류에서 걸러지는 것이 맞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또 정상적인 채용 프로세스와 필터를 지니고 있는 회사라면 그는 서류에서부터 걸러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8번째 기업은 서류 단계에서 그를 걸러내지 않았다.(걸러내지 않은 것인지 걸러내지 못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는, 8번째 기업이 자신의 이력서에서 가능성을 읽었겠거니 기대한다. 면접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리라. 그는 서류 합격 통지를 받고나서야, 8번째 기업과 해당 직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8번째 기업 홈페이지를 이것저것 누르다 보니, 계속해서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바로 '지역 화폐'다. 8번째 기업은, 국내 지역화폐 플랫폼 1위라며 자신들을 선전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주로 앱을 설치한 뒤, 돈을 충전해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지역화폐 서비스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8번째 기업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나름 신생 기업이다. 신생 기업인데, 매출은 1200억으로 꽤 규모가 있다. 지역 화폐 서비스 분야에서 꽤 잘 나가는지, 8번째 기업은 주식 시장에도 상장을 한 상태다. 물론 코스피가 아닌, 코스닥 상장사다.
그는 상장 관련하여, 기업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
1 - 코스피 상장 : 코스피 시장은 다른 말로 유가증권시장이라고 불리며, 유명하고 안정적인 대기업들이 많다. 한국의 유명 대기업들은 십중팔구 코스피 시장에 등록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2 - 코스닥 상장 : 코스닥 시장은, 코스피보다는 규모가 작고 리스크가 큰 기업들이 많다. 간단히 말하자면, 벤처 기업이 많다. 덩치가 작고 매출도 작지만,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에 포진해 있다고 보면 된다. 잠재력도 있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코스닥 시장은 코스피에 비해 변동성이 크다.
3 - 비상장 : 코스피에도, 코스닥에도 상장되지 않은 비상장사다. 비상장사이므로, 재무제표를 공시할 의무가 없다. 재무제표가 없으니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알아볼 정보가 극히 제한된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 많다.
취업준비생인 그로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코스피 상장사가 제일 좋아 보인다. 코스피 상장사는 정보가 공개되어 비교적 투명한 편이며, 언론과 주식 시장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코스피 상장사는 취업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8번째 기업은 코스닥 상장사로, 나름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은 축에 속하는 벤처기업이다. 매출이 꾸준히 증가해 1200억에 달하고, 지역화폐 시장에서 나름 1위라고 선전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라서인지, 8번째 기업은 코스닥 주주들에게 꽤나 관심을 받는 회사다. 그가 유튜브에 8번째 기업의 이름을 검색하자, 각종 증권 티비에서 쉴 새 없이 이름이 오르내린다. 8번째 기업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이 꽤 많은가 보다. 투자자들이 많아서인지, 8번째 기업 회장은 증권 티비에 자주 출연한다. 8번째 기업 회장이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은 비슷하다. 현재 기업의 이익이 어떻다느니, 얼마 전 투자를 받아서 자금 상태가 문제가 없다느니, 앞으로는 또 어떤 서비스 출시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느니 등의 말을 한다.
회장으로부터 긍정적인 전망과 말만 들어서인지, 그는 조그만 기업이라도 이 정도면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넣은 직무다.
8번째 기업은 지역화폐 앱을 론칭하고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이다. 플랫폼 기업이란,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이용자 사이에 '플랫폼', 즉 장을 깔아주는 기업을 말한다. 제공자와 이용자가 만날 장소를 깔아주고, 장소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소정의 이용료만 받는 기업을 플랫폼 기업이라 칭한다. 초창기 플랫폼 구축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플랫폼이 주류로 자리잡기만 하면(그럴 수만 있다면) 이후에는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바로 플랫폼 비즈니스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한때는 너도나도 미래의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며 비전을 바꿔 제시하곤 했었다.
8번째 기업은, 지역화폐라는 서비스의 플랫폼을 깔아준다. 지역화폐 제공자와, 지역화폐 이용자 사이에서 앱을 구축해서 그들이 잘 만나고 이용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그 지역화폐 플랫폼은, 앱을 기반으로 해서 구축한다. 즉, 온라인 시장과 앱 기반 서비스에 대해 잘 아는 인재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그는 온라인 시장, 앱 기반 서비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가 서류 합격한 '서비스 기획'이란, 결론적으로 지역화폐 앱을 어떻게 더 잘 구축하고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직무다. 채용 공고에 적혀있는 짧은 직무 소개에는, 'UX, UI 기획'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UX와 UI가 무엇인지 검색해본다.
UX - 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UI - 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
한글 뜻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름 깊게 알아보고자, 그는 관련 블로그를 들어간다. 한 블로거는, UX와 UI의 뜻에 대해 뭐라뭐라 말을 써놓았다. 설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잘은 모르겠지만 컴퓨터 공학이나 프로그램 쪽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느끼는 그다.
블로거는 대략 이런 식을 말을 써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UX와 UI를 혼동하곤 합니다. 하지만 UX와 UI는 엄연히 다른 용어입니다. 먼저 UI란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쉽게 말해 우리가 앱을 작동시키면 나오는 버튼의 모양, 위치 등 디자인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 그에 반해 UX는, 사용자 경험입니다. UI가 디자인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다면, UX는 그보다 더 넓은, 사용자의 경험 측면에 중점을 두는 용어입니다. 사용자가 앱을 구동한 이후, 어떤 경로로 어떻게 버튼을 찾고 누르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UX, 사용자 경험입니다. ..."
그는 대강, UI는 전체적인 앱 화면의 모양, 색, 디자인 같은 것을 고려하는 용어라고 이해한다. UX는, UI보다 포괄적으로 사용자의 동선을 고려하는 용어라고 이해한다. 이것이 그의 면접 준비 과정 중,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한 전부였다. 사실, 서류 합격 이후부터 준비를 시작한 그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직무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정도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용어들이며, 그 용어들로 도배된 채용 공고는 결국 그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공고다. 하지만 8번째 기업은 그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권유하고 있다. 인사담당자들과 면접관들이 뭔가 뜻하는 바가 있겠거니, 그는 면접에 참석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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