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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취준생의 아지트 (독서실)

 어느덧 그가 졸업 유예를 하고도 반년이 다 되어간다. 그는 자신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이상적인 루트는 밟지 못했으나, 적어도 졸업 유예가 만료될 때까지는 취업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6개월의 졸업 유예가 끝날 때까지도 취업은 요원해 보인다. 졸업 유예 신청 이후에만도, 서류 탈락이 벌써 100번을 훌쩍 넘는다. 그나마 서류에 합격한 기업들도, 면접에서 번번히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더 좋은 회사를 가려는 밑거름이겠거니, 인생의 쓴 맛을 보는 시기이겠거니 그는 생각한다.

 

 취업준비생인 그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는 졸업 유예를 신청한 얼마 뒤, 동생을 따라 독서실을 등록했다. 그의 동생은 막 학기 대학생이 되는 시점이었다. 그는 동생이 독서실을 등록한다는 말에, 어떤 장소인지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독서실을 가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독서실을 갔던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때다. 당시의 독서실들은, 어두운 커다란 방에 책상을 주루룩 나열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독서실도 진화를 거듭했다. 그는 동생을 따라 독서실에 들어선 순간, 현대식 문물을 본 것처럼 새롭다. 현대 독서실은 깔끔한 인테리어에, 모든 좌석이 1인실로 칸막이가 쳐져 있다. 사방이 막혀 있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그는 독서실에서 정말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느껴서인지, 시설이 끌려서인지,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서인지, 동생을 따라 독서실을 등록한다.

 

 

 그는 돈을 아끼는 성격이라, 원래는 더 저렴한 독서실을 이용하려고 했었다. 가격이 싸지면, 당연히 편의성이 떨어진다. 그는 1인실 독서실을 이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안락함과 편의성을 알지 못한다. 좌우가 뻥 뚫리고 바로 옆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1인실을 갖춘 현대식 독서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리하고 좋아 보이긴 하나, 가격이 10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그는 취준생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10만 원이 넘으면 비싸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동생이 다닌다고 하니, 그는 속는 셈 치고 한번 등록한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는, 이 비싼 돈을 주고도 제값을 못한다면 언제든지 싼 독서실로 바꾸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현대식 독서실을 등록하고, 그는 자리를 배정받는다. 그가 받은 자리는, 출입문 바로 앞자리다. 그는 독서실 자리들 중에서도, 그나마 출입문 바로 앞이라 조금이라도 할인을 받는 자리를 택했다. 어차피 자리에 앉고 슬라이딩 도어를 닫기 때문에, 출입문이 바로 옆이라도 소리가 덜 들릴 것이라 판단한 그다.

 

 

 독서실은 1달 정액제로, 10만 원을 지불하고 나면 1달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는, 10만 원이라는 돈을 지불했으니 어떻게든 뽕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독서실 1인실 좌석 책상 위편에는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는 서랍이 달려 있다. 그는 그 서랍에, 자신과 독서실 생활을 함께 할 동료들을 배치한다. 그의 동료는 다음과 같다.

 물병 : 독서실 정수기에서 수시로 물을 채워 마시며, 물값으로 이익을 내기 위한 용도

 충전기 : 좌석의 콘센트를 이용해 전자 기기를 충전하며, 전기값으로 이익을 내기 위한 용도

 

 그는 매일같이 독서실에 출근하여, 안 마시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핸드폰, 노트북, 블루투스 이어폰을 모조리 가져가서 충전한다. 되도록이면 집에서 충전하지 않고, 독서실에서 충전한다. 독서실에서 있는 시간이 길수록, 독서실의 정수기와 전기를 많이 쓸수록 자신이 이득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그로서는 독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레 그는 독서실 좌석에 정을 붙이게 된 것 같다.

 

 

 독서실을 등록한 이후, 그는 현대식 독서실의 매력에 흠뻑 취한다. 처음 등록할 때 비싸게 느껴졌던 가격도, 이제는 불만이 되지 않는다. 그는 거의 매일 독서실을 이용한다. 독서실 좌석이 1인실이긴 하나, 가벽을 세워 구획을 나눈 것일 뿐 양옆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좌석에서는 노트북을 사용할 수가 없다. 타자를 치는 소리는 가벽을 넘어 다른 이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서 미친 듯이 이력서를 날리고, 서류 난사가 끝나면 독서실로 향한다.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1인실 좌석으로 들어간다. 누가 보지도 않지만 그는 황급히 슬라이딩 도어를 닫는다. 이 도어를 닫아야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느낀다. 겉옷을 뒤편 옷걸이에 걸고,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서랍 자물쇠를 연다. 서랍 안에는 물병, 충전기, 그가 가져다 놓은 여러 책들이 있다. 자리가 비좁으니, 그는 가방을 서랍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충전기로 전자 기기를 충전시키고, 물병을 꺼내 정수기에서 물을 길어온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슬라이딩 도어 문을 닫는다. 안도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무엇인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눕듯 기댄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그의 시선에 천장이 보인다. 사면을 막아놓은 가벽 때문에, 시야가 막혀 천장은 조그만 네모로 보인다. 그는 조그맣고 네모난 천장을 바라본다. 비좁은 1인실 좌석의 네모난 천장, 우물 안 개구리가 본다는 조그맣고 동그란 하늘인가. 그는 피식 웃음이 난다.

 

 아직은 괜찮다. 그의 멘탈은 꽤나 잘 버티고 있으며, 그도 취준생인 자신의 처지를 그리 비관하지는 않는다. 약간의 자조감이 느껴지는 감상이긴 하나, 그는 아직까지는 1인 좌석의 비좁음이 안락함으로 느껴진다. 1평도 되지 못하는, 책상과 의자만 들어가는 비좁은 공간이지만 그는 안락함과 따뜻함을 느낀다. 돈을 지불하고 자신이 소유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그는 예전 워킹홀리데이 당시, 쉐어메이트가 있는 방을 놔두고 굳이 자신의 캠리에서 쉬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비좁았던 캠리가 방보다 더 편했고 안락했다. 그는 한국에서,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제2의 캠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취업준비생인 그는 자신의 아지트를 찾았다. 한 달 10만 원을 지불하고, 그는 독서실에서 1인실 좌석을 하나 배정받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정을 붙이기 시작한다. 다만 문제는, 그가 새롭게 찾은 자신의 안락한 아지트에서, 취준생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