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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8번째 기업, 9번째 면접

 이메일에 안내된 시간에 맞추어, 그는 8번째 기업에 도착한다. 도착하니, 인사팀 직원은 그를 로비로 안내한다. 로비에는, 출입문은 따로 없고 얇은 벽으로만 나눠진 앉을자리가 두 곳 있다. 각각의 앉을자리는, 커다란 책상과 책상을 삼면으로 둘러싼 의자로 이루어진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두 곳 중 하나는 이미 다른 지원자들이 앉아 있는 상태였다. 인사팀 직원은 그를, 비어있는 다른 구역에 안내하여 앉게 한다.

 

 그는 지금껏 면접을 봐오면서, 주로 남성 면접자들만을 봐왔다. 그런데 이번 8번째 기업에 도착하자, 그를 제외한 모든 면접자들이 여성이다. 그는 살짝 긴장이 되면서도,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4명의 여성 지원자는, 먼저 면접에 들어가더니 30분 정도 있다가 모두 나온다. 나와서는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기다리던 와중, 그가 앉은자리에 여성 지원자 한 명이 더 도착했다. 그와 오늘 함께 면접을 볼 경쟁자다.

 

 

 인사팀 직원은, 오늘 면접은 PT 면접과 실무진 면접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면접 10분 전, 문제가 적힌 종이를 배부할 것이며 문제풀이는 지금 앉아있는 장소에서 그대로 이루어진다. 10분 동안 답안 구성이 끝나면, 면접실로 들어간다. 면접관들 앞에서 앉은 상태 그대로, 자신의 답지를 보여주며 편안하게 5분 내외로 답변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는 앉아서 발표한다는 인사팀 직원의 말에, 혼자 일어서서 PT 했던 이전 면접보다는 그나마 편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뒤, 인사팀 직원은 시간이 다 됐다며 문제지를 나눠준다. 문제지에는 3개의 문제가 적혀 있는데, 그중 하나를 골라 답안을 작성하고 발표하라고 한다. 

1. 8번째 기업 서비스를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하시오

2. 기억나지 않음

3. 신체 인증 등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간편 결제 서비스의 미래 전망 및 본인 의견

 

 그는 지역화폐, 앱, 간편 결제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1번 문제는 접근하기 힘들었고, 2번 문제는 무슨 문제였는지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손을 댈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그는 그나마, 뜬구름 잡는 소리를 떠들 수 있는 3번 문제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 선택 또한,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약 10분 뒤, 답안 작성이 끝나자 인사팀 직원이 면접자들을 면접실로 안내한다. 그와 여성 면접자 둘은, 인사팀 직원의 안내를 따라 면접실로 향한다.

 

 

 

8번째 기업, 서비스기획 신입 면접 (PT 후 실무 면접)

 

면접자 : 그를 포함해서 2명, 다른 한 명은 여자

  그

  긴 머리를 묶은, 정장 차림의 여성 면접자 2

 

면접관 : 4명, 모두 남자

  마른 상체, 40대로 보이는 면접관 1

  둥근 얼굴, 안경을 끼고 인상이 좋은 구릿빛 피부의 면접관 2

  하얀 피부, 얼굴과 몸집이 둥근 면접관 3

  정장 차림, 잘생긴 편이며 젊은 면접관 4 (인사팀으로 보이며, 면접을 진행한다)

 

 

면접실 입장.

  면접관 일동 : 하얀 얼굴 씨, 그리고 면접관 2 씨 맞으시죠? 편하게 자리에 앉으세요.

  면접자 일동 : 네 감사합니다!

 

  면접관 4 : 네, 앞서 안내받으셨겠지만, 먼저 PT 발표를 해주세요. 하얀 얼굴 씨부터 해주세요.

  그 : 네, 저는 문제 3번, 신체 인증 도입 등 신기술로 인한 간편 결제 서비스의 미래 전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마이클 센델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해당 책에서는,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돈으로 가치를 매겼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최근 간편 결제 서비스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 중, 신체 인증을 통한 결제 서비스가 있습니다. 지문이나 동공, 혹은 신체에 칩을 심어서 간편하게 결제하게 하겠다는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신기술 도입에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라는 책에서도, 공공의 가치나 신체는 돈으로 환산했을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재는 결제 수단을 도둑질하려면 지갑을 훔치면 되지만, 신체 인식이 대중화될 경우 결제 수단을 훔치려 다른 이의 신체를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기술 도입과 개발은 물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긴 하나, 이러한 부작용이나 새로운 현상들에 대한 고찰과 조치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간편 결제 시장을 이용해본 적이 없고, 따라서 이해도가 상당히 얕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을 토대로, 그저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며 뜬구름을 잡아볼 뿐이다)

 

  면접관 일동 : (그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네, 잘 들었습니다. 다음, 면접자 2께서 말씀해주세요.

  면접자 2 : 네 안녕하세요. 저는 문제 1번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

 

 

  면접관 2 : 네, 답변 잘 들었습니다. 이제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 : 안녕하십니까! 8번째 기업 서비스기획 직무에 지원한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저는 두 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 이상,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 두 가지 강점을 통해 8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얀.얼.굴. 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눈 감고도 달달 외워버리는, 회사명과 직무만 빼면 글자 하나 바뀌지 않는 그의 똑같은 자기소개다)

  면접자 2 : 안녕하세요, 서비스 기획 직무에 지원한 면접자 2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며 업계에 대한 관심을 키워 왔는데요. ...

 

 면접자 2는 여성이며, 당연히 그보다 나이도 어리다.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면접자 2는 학교에서 디자인 관련 전공을 한 뒤, 이에 더해 어플 관련 수업이나 학원을 다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답변의 구성이 조금 허술하고, 말투도 계속해서 ~했는데요 체를 쓴다. 그는 그동안 딱딱한 회사들 면접만 보아와서인지, 이러한 했는데요 체의 답변이 귀에 살짝 거슬린다. 자신의 '다나까'체가 더 절도 있고 임팩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그 혼자만의 망상이었다.

 

 

  면접관 4 : 네, 하얀 얼굴 씨한테 질문드릴게요. 하얀 얼굴 씨, 서비스 기획 직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세요.

  그 : 네, 채용 공고의 설명 중 UX/UI 기획과 관련된 직무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UI, 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의 디자인, 그리고 UX,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동선을 고려하면서 앱 서비스를 기획하는 직무라고 생각하여 지원했습니다. 경영학에서 배운 지식들이, 서비스 기획에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면접관 4 : 아... 채용 공고를 잘 읽으셨군요.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하얀 얼굴 씨가 경영학을 전공하셨잖아요? 사실 경영학 전공자들이, 서비스 기획 직무와 경영 기획 직무를 혼동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직무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계신지 질문을 드린 거였는데, 하얀 얼굴 씨께서는 경영 기획 직무로 혼동하진 않으셨다는 말씀 같네요.

  그 : 네, 맞습니다.

 

 면접관 4의 이 같은 예상과 우려는 타당한 것이었으며, 사실 그는 면접관 4의 우려에 완벽하게 해당하는 인물이다. 채용 공고에서 대강 읽고 찾아본 UX/UI 라는 용어를 곁들여 답을 하긴 했으나, 그는 사실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경영학과니깐, 경영 기획과 비슷하겠지. 기획이 별건가? 잘 되게끔 계획 세우는 것이 기획 아닌가? 이런 얕은 생각으로 지원한 그다.

 

 궁금한 것은, 면접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해야 할 정도로 서류에서 검증이 되지 않는 이유다. 면접관 4의 말을 들어보면,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직무를 혼동했던 지원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서류를 더 꼼꼼히 검토하면 될 것이다. 그의 경우에도, 복사와 붙여넣기로 일관한 이력서였으니 충분히 필터링이 걸렸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8번째 기업은 계속해서 서류에서 그와 같은 불순인자를 걸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것인지, 프로세스가 망가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8번째 기업에 지원하는 지원자 자체가 너무 적어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부르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면접관 3 : 면접자 2 씨, 대학교에서 디자인 관련 공부를 했네요. 우리 회사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있나요?

  면접자 2 : 네, 저는 현재 8번째 기업 서비스를 계속해서 이용하고 있는데요. 아 참, 그리고 얼마 전에 업데이트가 있었잖아요?

  면접관 3 : 네네 맞아요. 사용자 입장에서 어떻던가요?

  면접자 2 : 아 네, 이번 업데이트 이후에 UI가 더 깔끔하고 보기 편하게 바뀐 것 같아요. 메뉴 탭도 추가가 되고, 새롭게 더해진 색깔로 인해서 전반적으로 더 깔끔해진 것 같아요.

  면접관 3 : (신이 난 듯한 모습으로) 이번 업데이트에서 저희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입니다. 하하... 혹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나요?

  면접자 2 : 아 저는 사실 지금 인천에 살아서요. 인천 OO을 쓰고 있어요. (그는 듣긴 했으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3 : 아 인천 OO을 쓰시는군요? 직접 사용하시다 보면, 이런저런 것들을 느끼실 텐데, 혹시 입사하게 된다면 이런 것들을 개선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나요?

  면접자 2 : 아... 저는 사용해보면서 ...

 

 면접관 3은, 대놓고 면접자 2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는 이야기와 질문으로 보아, 면접관 3은 개발 및 UI 디자인 등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면접관 3과 면접자 2의 대화가, 공대 앱 개발자들의 대화로 들린다. 즉, 그로서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들린다. 그가 대학교 시절, 이공계 친구들과 대화했을 때의 느낌 그대로다. 특히나 그는, 면접자 2의 답변을 들으며 그다지 의미 없는 답변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그런 기능 개선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그 정도로 그는 면접자 2의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면접관 3의 표정은 답변을 들을수록 밝아진다.

 

 

 너무 편향된 것을 알았던지, 면접관 3은 그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 하얀 얼굴 씨께서는 우리 회사 서비스를 사용해보셨나요?

  그 : 아, 저는 아직 사용해보지 않았습니다.

  면접관 3 :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인데, 안 써보셨어요?

  그 : 네.

  면접관 3 : 아... 알겠습니다.

 

 그는 정말로 8번째 기업의 서비스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괜히 거짓말로 도박을 하느니, 깔끔하게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관 3은 그의 이런 답변으로 인해 관심이 더욱 땅으로 꺼진 듯하다. 면접관 3은, 그에게 비수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한다.

 

  면접관 3 : 하얀 얼굴 씨는... 아까 PT 답변을 제가 관심 있게 들었어요. 신체 인증 등 미래 기술 도입으로 인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잘 말씀해주셨고, 읽었던 책을 바탕으로 잘 얘기해주셔서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상황과 문제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이라는 거였어요. 그 상황과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어떻게 이용해서 기업에 도움이 될지를 이야기해주질 않았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 : 아... 네 그 부분은 제가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PT 답변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만 했던, 망상의 날개만 펼쳤던 그에게는 치명적인 비수다. 그는 속으로 뜨끔하며, 자신의 면접이 망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면접관 2 : (갑작스레) 하얀 얼굴 씨, 혹시 서비스 기획 말고 영업 직무에도 관심이 있나요?

  그 : (갑작스럽긴 하지만) 네, 면접관님들께서 저를 보시기에 영업이 맞는다고 생각하시고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감사합니다.

  면접관 2 : 음... 그래요. 아니 답변이나, 이야기하는 걸 보았을 때 영업을 하면 잘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 : 감사합니다.

 

 면접관 2는 약간 웃음을 띈 채로,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다. 그는 면접관 3에게 찍힌 마당에, 면접관 2가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잡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면접관 2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면접관 2에게 어필하고자 노력한다.

 

 

  면접관 4 : 네, 이제 마지막 말하시고, 면접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면접자 2부터 해주세요.

  면접자 2 : 네, 오늘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대학교에서 디자인과 앱 공부를 하면서 관심을 키워왔는데요....

  그 : 저도, 오늘 면접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8번째 기업 면접 준비를 하며, 저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8번째 기업에 동참하여 8번째 기업이 그리는 미래를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이 끝났다. 8번째 기업은, 면접비를 지역 화폐로 지급한다. 그는 8번째 기업의 충전형 카드를 면접비로 받는다. 해당 카드에는 1만 원이 충전되어 있다고 인사팀 직원이 말한다. 자사 서비스를 홍보함과 동시에, 이용자를 늘릴 수 있는 일종의 마케팅이리라.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그는 8번째 기업에서의 면접 결과가 썩 기대되지 않는다. 얼마 뒤 결과 문자가 도착한다. 결과는 여지없는 '1차 면접 불합격'이다.

 

 8번째 기업에서의 9번째 면접, 그는 이번 면접에서 두 가지를 깨닫는다.

1 - UX/UI/서비스 기획 직무에는 지원하지 말 것 (그 자신에게는 부적합한 직무라고 판단)

2 - PT든 무엇이든, 답변을 할 때는 해결책을 반드시 제시할 것. 기업은 문제만 찾는 사람이 아닌, 문제와 해결책을 모두 제시하는 사람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