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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10번째 기업 최종 탈락 (배신감, 뒤늦은 분노)

 10번째 기업 최종 면접 바로 다음날, 그는 한 살을 더 먹어버린다. 이제는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는 20대 후반이다. 그래도 그는 헛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0번째 기업 최종 면접 결과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일주일이 지나도, 2주일이 지나도, 10번째 기업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는 사실 최종 면접 당일날, 안내하는 직원에게 최종 면접을 보는 인원이 몇 명인지 물어봤었다. 직원은, 그 혼자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는 10번째 기업에게 더욱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최종 면접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PT를 못하긴 했지만 웃는 낯으로 면접관들의 비평을 모두 받아들인 그다. 면접관들도 그렇게 에너지를 써가며 비평한 이유가 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긍정적인 생각과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10번째 기업은 다시 공고를 낸다. 전략자원본부, 그가 지원했던 부서의 채용 공고가 그대로 올라온다. 달라진 것은 딱 하나, 지원자격이다. 그가 지원했던 10번째 기업의 공고에는, 최저 학벌이 대졸로 되어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올라온 전략자원본부 채용 공고는, 최저 학벌이 대학원 석사로 되어 있다.

 

 

 그는 어리둥절하다. 아직 결과 발표도 받지 못한 그다. 대학원 석사로 신입을 한 명 더 뽑으려는 건가? 그는 슬픈 예감이 들지만, 애써 부정한다. 한 명 더 뽑으려는 거겠지. 기다리면 되겠지. 그는 스스로 바보가 되길 택하고, 생각을 멈춘다. 곧 연락을 주겠지. 설마 이런 식으로 결과도 안 알려주고 공고를 올리는 양아치 기업일 리가 있나.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가 힘들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는 명백해진다. 그는 10번째 기업 최종 면접에 탈락했을 것이다. 그래, 그건 좋다. 그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열정적으로 그를 까대는 면접관들 앞에서 웃는 낯짝을 유지하며 비굴하게 합격을 구걸한 자신의 모습이다. 발표 내용을 까도, 기껏 준비한 발표에 들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슬라이드 하나하나에 생각은 하고 사진을 집어넣었느냐는 말을 들어도, 그는 변함없이 웃으며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했다. 그가 그런 인간이어서, 욕 듣는 것이 좋아서 웃고 있던 것이 아니다. 합격만 시켜줬으면, 무슨 소리를 해도 좋으니 합격만 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혹여나 면접관님들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광대뼈를 올리고 웃는 낯짝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면접관들은 그런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때려도 웃음으로 보답하는 샌드백처럼 봤던 것은 아닐까. 업무 스트레스도 심한데, 어차피 떨어트릴 녀석한테 화풀이나 해보자는 심정이었을까. 어차피 면접비도 안 주겠다. 돈도 안 드는  공짜 샌드백, 무슨 말로 때려도 계속 웃는 낯짝이니 타격감도 좋은 샌드백이었나.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다가 결국 폭발해버린다. 10번째 기업의 이미지가 박살나는 것에 더해, 면접 당시의 기억 하나하나가 모두 그를 부정적으로 자극한다. 깽판이라도 한번 치고 나왔어야 했는데. 시간이나 넉넉하게 주고 그런 소리하라고 한 마디 먹이고 나왔어야 했는데. 면접비는 없느냐고 다시 들어가서 대놓고 묻고 나왔어야 했는데.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지원자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채용 공고를 다시 올려버리는 기업에서 보냈다는 점에 대해, 그는 분노하면서도 허탈하다.

 

 

 어느덧 취업준비를 하다가 나이 한 살을 더 먹어버린 그, 그는 10번째 기업의 채용 공고를 띄워놓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찬찬히 다시 읽는다. 공고의 내용은 똑같다. 단 하나, 지원 가능 최저 학력이 '석사'라는 것만 빼놓고 말이다. 그는 10번째 기업의 채용 공고와, 이 '석사'라는 바뀐 단어를 보며 속으로 마음껏 욕을 한다.

 

 면접비도 못 주는 허접한 기업 주제에, 꼴에 눈은 높은가보지? 학사 지원자가 한 발표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석사로 기준을 높이는 수작인가? 면접날 봤던 사무실 분위기도 별로더니, 초장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동안 그가 경험한 모든 면접 탈락으로 인한 좌절과 분노가, 10번째 기업 한 곳에 쏟아진다. 그럴만도 하다. 최종 면접까지 진행해 놓고, 면접 결과를 통보하지 않은 채 곧바로 똑같은 공고를 올리는 기업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그는 10번째 기업의 모든 것들을 다 깔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10번째 기업은 그에게는 신 포도가 되었다.

 

 

 약 2달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 그의 분노가 가라앉을 무렵 10번째 기업으로부터 메일이 온다. 최종 면접 불합격 안내 메일이다. 메일을 본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 이미 그는 10번째 기업이 새로 공고 낸 것을 보았으며, 합격하더라도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힌 지가 오래다. 때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뒤늦게 도착한 결과 발표 메일은, 10번째 기업에 대한 그의 편견을 더욱 공고히 만든다. 10번째 기업은, 신포도를 넘어 그에게는 썩은 포도로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