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기업은, 면접도 인적성 시험처럼 비대면으로 진행한다고 안내한다. 몇 번의 면접을 보았는지 어느새 익숙해진 Zoom으로 면접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면접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리라, 해외시장전문가에 꼭 맞는 인재가 바로 자신이란 걸 보여주리라 다짐하는 그다. 그는 이전 면접들처럼, 면접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1. Dart에 공시된 재무제표에서 필요한 숫자들을 뽑아 간이 재무제표를 만든다.
2.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사명과 로고의 의미를 외우고, 판매하는 제품들을 표로 만들고, 해외시장전문가 직무 인터뷰를 본다.
3. 잡X레닛의 회사평, 면접 후기 등에서 면접 질문을 뽑아낸다.
면접 준비 중,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직무 인터뷰와 잡X레닛의 회사평 및 후기다. 회사 홈페이지의 직무 인터뷰는, 어차피 자신들을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으니 비슷비슷하다. 너무 일하기 좋다느니, 좋은 선배들이 있고 커리어를 키워가는 보람이 있다느니, 어서 후배님들도 합류해서 같이 일하고 싶다느니 등의 뻔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11번째 기업 홈페이지의 직무 인터뷰도 이런 뻔한 내용 위주이긴 했으나, 그는 뭔가 조금 다른 기운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가 느낀 기운은, 11번째 기업의 자부심이 이상하리만치 높다는 것이다. 11번째 기업 홈페이지의 직무 인터뷰는, 하나같이 자부심이 철철 흘러넘친다. 세계 1위 기업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느니, 일은 힘들지만 노력한 만큼 성장함을 느낄 수 있는 회사라서 좋다느니 등이다. 다른 회사의 직무 인터뷰들과 비슷한 뻔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자부심은 이상하리만치 다른 기업들보다 높다. 정말로 그런 자부심을 느낄 만큼의 알짜배기 회사인 건지, 아니면 번지르르하게 말만 잘 써놓은 것인지 그는 알 길이 없다. 다만 11번째 기업 면접을 앞둔 취준생으로서, 그는 전자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결정해버린다.
11번째 기업은 인턴 기간이 꽤 빡센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읽어본 후기들 중, 인턴 기간 중의 일과 과제가 너무 힘들었다는 내용이 많다. 실무를 빠르게 익힌다는 것은 좋은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한 후기는, 자신이 11번째 기업으로부터 인턴 기간 받았던 과제를 대놓고 적어놓았다. 신입 인턴에게, 당장 밖에 나가 인체 분석 기계 3대를 팔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해도 벌써 막막하다. 회사 생활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드라마에서, 영업팀 인턴 사원에게 지금부터 밖에 나가 물건을 팔기 전엔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까짓것 맨 땅에 헤딩하면 되지 않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아닌가. 맨 땅에 헤딩하면서 얻은 경험, 그 과정들 모두가 쌓이고 쌓여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11번째 기업은 그런 무모한 과제를 내줌으로써 오히려 직원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주는 알짜배기 기업이 아닌가?
그가 11번째 기업이 알짜배기라고 생각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회사 대표인 CEO의 영상이 그것이다. 11번째 기업 CEO는, 유튜브에 검색하면 영상이 꽤 많다. 대부분 어떤 대학교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앉혀놓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전파하는 영상이다. 뻔하디 뻔한 내용이지만, 그는 절박한 취업준비생이므로 이미 눈에 콩깍지가 씌여 있다. CEO가 영상마다 하는 말은 똑같다. 그는 계속해서 CEO의 영상을 보며, CEO의 경영철학으로 자신의 머리를 세뇌시키고 어떻게든 면접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CEO가 하는 말은 대략 이렇다.
"저는 직원들이, 주인의식 없이 일하는 게 싫습니다. 내 회사가 아니라고, 자기는 남의 일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싫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발전이 없어요. 회사에서 하는 일은 내 일이다, 나는 이 회사의 '작은 주인'이다라고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저희 회사 직원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회사의 주인입니다. 각각이 모두 회사의 작은 주인입니다."
조그마한 회사를 설립하고, 20년 가까이 유지하며 1000억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는 11번째 기업 CEO가 하는 말이니 왠지 그럴듯하다. 그는, 뻔한 소리인 것 같기도 하나 어쨌든 면접 준비를 위해 CEO의 영상을 계속 본다. CEO 얼굴도 익힐 겸, 어떻게든 어필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11번째 기업 CEO가 그토록 강조한 주인의식이 박힌다. 동시에, 주인의식을 가진 조그마한 주인인 각각의 직원들을 소중히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채용 과정에서도 알맞은 인재를 뽑고자 세심하게 신경을 쓰리라.
경영자인 CEO의 강의를 듣다 보니, 그도 점점 뜬구름 잡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까지 직원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고 아낀다는데, 1차 면접 때부터 CEO가 들어오는 건 아닐까? 들어온다면, 인생의 의미와 인생에 있어서 일의 의미에 대해 묻는 건 아닐까? 그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야말로, 자신의 깊은 철학을 마음껏 드러내 11번째 기업 CEO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 생각한다. 가뜩이나 독서실에서 책만 읽으면서 이런저런 뜬구름 잡는 생각을 많이 하는 그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11번째 기업에 과몰입하고 있다. 그는 이미 자기소개서에 다른 기업 이름을 기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직원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고 신경 써서 뽑는 철학을 가진 CEO가 운영하는 기업이니, 분명 자기소개서도 꼼꼼히 읽어보고 그의 실수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다. 혹시라도 해당 실수에 대해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그는, 너무나도 명백한 실수이니 그냥 깔끔하게 인정하는 전략을 쓰기로 결정한다.
11번째 기업이야말로 그에게 꼭 맞는 직장인 것 마냥, 그는 CEO 강의 영상까지 일일이 시청해가며 열심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CEO의 모습과 일치하는 강의였는지, 실제로 그 CEO가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과 일치하는 강의였는지, 또 11번째 기업이 과연 그런 알짜배기 기업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취준생으로서 11번째 기업이 그런 마냥 좋은 기업이길 바라는, 꿈에 그리는 파랑새를 투영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자신의 파랑새를 11번째 기업에 투영해서 몰입하고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11번째 기업의 실제 모습은 그가 투영한 파랑새일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11번째 기업에 덮어씌워 놓은 파랑새 탈이 어디까지 변형될지, 억지로 씌워놓은 탈이 아예 찢겨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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