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
마이클 샌델 지음 / 함규진 옮김
2020 출판, 한국어판(와이즈베리) 2020출판 / 418p
외국도서들은 번역 작업을 거치면서 제목도 바뀐다. 번역 이전의 원제를 살펴보는 것은, 저자의 관점과 어투를 새로이 유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영어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다.
Tyranny는 독재 국가, 독재 정치 / 폭압, 억압, 압제로 번역된다.
Merit는 비교적 친근하다.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점에서 '메리트가 있어' 라는 식으로 쓰이곤 한다. 사전적 뜻은 가치, 훌륭함, 장점이다. 이 뜻에서 파생되어 능력, 실력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직역과 의역을 나름대로 섞어서 옮기자면, The Tyranny of Merit = 능력의 독재 (능력주의의 독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능력주의의 기원은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윤리에서도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고와 능력주의를 부정하는 사고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축복과 구원을 받는다면, 그 이유는 그가 구원을 받아 마땅한 인생을 살아서일까(능력), 단지 신이 그를 구원하기로 정해서일까(운)? 이에 따른 의견 차이가 종교 개혁과 종파의 갈림을 낳았다. 누군가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나가고 기도하고 회개하는 등 노력을 해야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신이 누구를 구원할 지는 인간이 감히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신의 뜻이며 인간은 단지 예정된 운명을 알맞게 살아내야 할 뿐이라고 했다.
능력주의는 미국의 유명한 신화인 아메리칸 드림과 연관이 깊다. 미국인들은 미국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미국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능력주의)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드림과 능력주의의 기본 전제는 사회적 이동성이다. 즉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커야 한다. 능력만 좋다면 개천에서 태어나도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현상은 이제 보기 힘들다. 미국의 사회적 이동성은 낮아지다 못해 소멸되어 간다. 어느 계층에서 태어났는가로 대학과 직업, 끝내는 인생 전체가 결정되어 버리는 계층 고착화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뿌리깊게 박혀있던 능력주의의 배신에,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 영향으로 포퓰리즘(대중의 견해)적 분노가 나타났으며,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트럼프 당선과 영국의 EU 탈퇴를 든다. 아래쪽에 위치한 대중들은,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엘리트가 너무도 오만하고 짜증난다. 대중들은 이제 능력주의에 대한 신화를 낭송하는 엘리트들에게 질려버렸다. 기존 엘리트들에 대한 반향이 트럼프 당선과 EU 탈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엘리트들은 '하면 된다'는 말로 연설했지만, 이는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굴욕의 단어였다. 엘리트들이 외치는 능력주의는, 엘리트에겐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듣고 있는 대중들에겐 그들이 엘리트만큼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며 모욕감을 주었다.
능력주의가 실현되는 방식 외에, 능력주의 자체에도 결함이 있다. 능력주의는 공동선과 도덕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켰다. 누군가의 성공이 그 자신의 능력 덕이라면, 누군가의 실패 또한 그 자신의 능력 탓이다.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공동선에 대한 논의와 공동체 의식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왜 실패하거나 낙오되거나 소외된 이들에게 세금을 써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부족한 능력이 자초한 것이다.
저자가 누차 강조하지만, 능력주의는 승자에겐 오만을 / 패자에겐 굴욕감을 선사하며, 공동선에 대한 논의 자체를 없애버린다.
능력주의는 교육과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능력주의를 약화시켜야 할까? 운이라는 요소를 개입시켜 패자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야 할까? 능력주의를 뛰어넘어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샌델 교수는 그의 이전 책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입장이 명확하며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추천의 글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
들어가며
서론 –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능력 지표 따내기
Chapter 1. 승자와 패자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테크노크라시’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능력주의 윤리
굴욕의 정치
기술관료적 능력과 조직적 판단
포퓰리즘의 준동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왜 능력이 중요한가
우주적 능력주의
구원과 자기 구제
과거와 지금의 섭리론
부와 건강
자유주의적 섭리론
역사의 옳은 편
도덕 세계의 궤적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고된 노력과 정당한 자격
시장과 능력
자기 책임의 담론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포퓰리즘의 반격
과연 “하면 된다”가 맞나?
보는 것과 믿는 것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무기가 된 대학 간판
불평등의 해답은 교육?
최고의 인재들
스마트해지기 위한 일
대중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학위가 있어야 통치도 한다
학력간 균열
기술관료적 담론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
기후변화 논란
Chapter 5. 성공의 윤리
기술관료의 지배냐 귀족의 지배냐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재능은 자신만의 것인가?
노력이 가치를 창출하는가?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
시장과 능력
시장 가치냐 도덕적 가치냐
쟁취한 자격인가, 권리가 인정된 자격인가?
성공에 대한 태도
운수와 선택
재능 계산하기
능력주의의 등장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능력주의 쿠데타
능력주의의 폭정,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다
코넌트의 능력주의 유산
돈 따라 가는 SAT 점수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
명문대가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
능력주의를 더 공평하게 만들기
인재 선별 작업과 사회적 명망 배분
상처 입은 승리자들
또 하나의 불타는 고리를 넘어라
오만과 굴욕
유능력자 제비뽑기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
명망의 위계질서
능력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Chapter 7. 일의 존엄성
일의 존엄성 하락
절망 끝의 죽음
분노의 원인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일
기여적 정의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열린 어젠다’의 오만
금융, 투기, 그리고 공공선
만드는 자와 가져가는 자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민주주의와 겸손
주
감사의 글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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