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가 끝났다. 이번 상반기는, 그가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의 상반기였다. 그는 졸업 후 6개월의 시간 동안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졸업 유예로 6개월을 미루고도, 그리고 졸업을 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겠다는, 늦어도 졸업 학기에 취업을 하겠다는 그의 꿈은 그렇게 완전히 날아갔다.
지난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상반기에도 그는 나름 바쁘게 지냈다. 서류를 난사하고, 난사한 서류 중 가끔 얻어걸린 회사들은 밤을 새워가며 면접을 준비했다. 워낙 난사를 많이 해서, 면접은 끊김 없이 꾸준히 있었다. 서류 난사와 면접 준비를 하면서, 그는 자신의 고급 취미 생활인 독서에 이어 글쓰기까지 새로 시작했다.
하반기 때처럼, 그는 상반기 취준 활동의 결과를 정리한다. 이미 한 번 해본 작업이니, 처음보다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끝난다. 정리를 하며, 새삼스럽지만 그는 자신이 참으로 징글징글하게도 많이 지원했고 또 그만큼 징글징글하게도 많이 떨어졌음을 실감한다.
그의 상반기 결산 성적표는 이렇다.
총 서류 지원 횟수 287회 (서류탈락 259회 / 서류합격 28회)
서류 합격 28회 전부 사기업
필기 횟수 5회 (필기탈락 4회 / 필기합격 1회)
면접 본 기업 16개 (1차 면접 탈락 12 / 1차 면접 합격 4)
(2차 면접 탈락 3 / 2차 면접 합격 0)
서류합격률 9%/ 필기합격률 20% / 1차 면접 합격률 대략 21% / 최종 합격 1번 (계약직, 입사 포기)
결산을 통해 나온 숫자들을 본다. 숫자들에 대한 감상은, 하반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반기나 상반기나, 그의 서류와 면접 합격률은 절망적이다. 뭘 더 어떻게 해야하나. 잘 모르겠다. 그는 이미, 취업에 관해서 반쯤 놓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절반의 정신머리로 간신히 난사와 면접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속된 서류 지원과 면접을 통해, 그는 자신이 넣지 말아야 할 업계와 직무를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지금 업계와 직무를 가릴 만한 처지인가? 그의 하반기와 상반기 서류 지원 횟수를 합치면 500번이 훌쩍 넘어간다. 서류합격률을 많이 쳐줘서 10%로 잡더라도, 그는 최소 450번을 서류탈락했다. 30번이 넘는 면접 횟수와, 면접 탈락은 말할 것도 없다.
상반기 결산 숫자를 보며, 그는 말이 없다. 하반기만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지원하다 보면 언젠가는 뚫리겠지, 언젠가는 취업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상반기마저 취업에 실패했다. 이번 상반기의 실패는, 그에게 꽤나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의 나이 때문이다.
어느덧 그의 20대가 끝나가고 있다. 이번 상반기는, 그의 20대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상반기였다. 앞으로 6개월의 기간 동안 또 취업에 실패한다면, 그의 20대는 영영 끝나버린다. 그의 20대는 이제 6개월, 다가올 하반기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 남자들은 원래 졸업이 늦다며, 전염병 때문이라며, 요즘에는 30대 중반 신입사원도 많다는 위로가 들려오곤 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은 결코 평범한 사례가 아니다. 무언가 특출나거나, 피나는 노력 끝에 간신히 얻은 성과인 경우가 많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한국의 기업들은 당연히 어리고 싱싱한 지원자를 선호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열정과 패기로 어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20대가 한계다. 그동안의 면접 경험을 돌이켜볼 때, 기업들이 30대 지원자를 열정과 패기만 보고 뽑아줄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는, 다가오는 하반기를 마지막 기회로 생각한다. 30살이 되어버리면, 지금 간신히 9%를 유지하는 서류 합격률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떨어지리라. 30살에 들어서자마자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체에 걸러지기 시작했다는 증언은 상당히 많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국 기업들은 30대 신입 지원자를 서류에서 걸러내는 필터를 작동시키는 듯하다.
그는 떠밀리고 떠밀려, 결국 벼랑 끝까지 왔다. 그의 마지막 20대 시간, 남은 6개월 동안 취업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30살 이후부터는, 그의 마지노선이었던 매출액 1000억이라는 기준도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는 남은 6개월 동안 어떻게든 취업을 해보겠노라고 결심한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더 착실하게, 더 철저하게, 더욱 간절하게 반복하리라.
그런데, 만약 남은 6개월 동안 취업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 백수인 채로 30대를 맞이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정말 이번 생에서 '일'에서의 의미는 놓아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평생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인력이 항상 모자란다는, 도처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약직이지만 최종 합격도 해보았고, 규모가 꽤 되는 기업들의 서류도 통과해보고 최종 면접도 몇 번 봤다. 딱 한 걸음만, 무언가 어긋나는 그 포인트만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정말 다 온 것 같다.
약 일주일 정도 채용 공고가 끊겨, 그는 타의에 의한 휴식을 갖는다. 이윽고, 하반기 채용 공고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다시 서류 난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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