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년을 훌쩍 넘긴 취업준비 기간,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서 이력서를 날리고, 이력서 난사가 끝나면 독서실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의 인간관계는 나날이 고립되어 가고 있다. 그런 그가 수렁으로 빠지지 않게 해준 사람이 있다. 그의 연인이다.
인연은 대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시작되어, 계속해서 만나다 보니 어느덧 마음이 커졌다.
연인은 그의 어떠한 점에 끌렸던 것일까. 그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이후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다는 점, 미친 듯이 서류를 지원하고 면접보러 다니는 자신의 어떤 근성을 보아준 것이리라고 생각해볼 따름이다.
똑같은 사람은 없다지만, 연인과 그는 유난히 다른 점이 많다. 성별, 학과 전공, 체형, 머리 길이, 말투부터 시작해서 취미,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 연인은 그와는 달리 커피를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외모를 가꿀 줄 안다. 다른 점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야기는 꽤 잘 통한다. 그는 연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전까지의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뭔가 다르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느끼는 그다.
연인은, 독서실에 틀어박혀 수렁으로 빠지려는 그를 계속해서 꺼내준다. 햇살 좋은 날 꽃놀이를 데려가기도 하고, 무슨무슨 밴드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라이브 공연에 데려가기도 한다. 너무 똑같은 옷만 입는다며, 그를 데리고 하루종일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어울리는 옷을 찾아준다. 그는 연인이 이끄는대로 따라간다. 연인은 그보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지만, 그는 자신을 이끄는 연인의 뒷모습을 볼 때가 많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연인에게 미안하다. 주변의 번듯한 친구들은 벌써 모은 돈이 얼마며 차를 샀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연히 그 차를 타고 데이트도 하겠지. 그는 아직 차가 없다.
미안한 마음은 가득이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짓눌려 있다. 연인과 함께 있을 때도 마음이 불편하다. 지금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 연인을 만나지 않고 독서실에 있는다 하더라도, 특별히 뭔가를 준비하지는 않는 그다. 그렇다 해도, 독서실에 앉아 무언가 준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다. 애써 숨기더라도, 이런 류의 우울한 아우라는 스멀스멀 퍼져나오기 마련이다. 둔감한 그와는 달리, 감이 좋은 연인은 이러한 낌새를 금세 파악했으리라.
연인은 그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을 제대로 판별하는 것 같다. 그가 풍기는 부정적인 아우라를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독서실에 틀어박혀 있는 그를 끌어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주의를 환기시켜 준다. 연인을 따라다닐수록, 연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지금의 취업준비 기간보다 더 우울한 나날은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시기에 함께 해준 연인, 이렇게 자신을 지탱해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어서 취업을 해서 연인에게 보답하고 싶다. 이 연인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연인의 전폭적인 지지에, 그도 조금씩 명랑함을 되찾는다. 마침 29번째 기업이라는 대기업 서류를 합격하여 면접 기회가 왔다. 면접 준비를 위해서 또 며칠간 독수공방하며 준비 자료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그런 그의 눈에, XX 건축 기자재 전시회 광고가 보인다. 전시회가 열리는 기간도, 1차 면접을 준비를 병행할 수 있는 꼭 알맞은 기간이다. 연인과 함께 이 전시회를 간다면, 색다른 경험도 되고 면접 준비까지 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연인에게 자신의 야심찬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는 면접 준비와 연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셈이다. 의도는 뻔하지만, 그가 다루는 목표에 비해 노력은 부실하다. 차라리 연인과의 시간은 연인에게 확실히 집중을 하고, 이외의 시간에 혼자 면접 준비를 하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 연인도, 그의 이러한 심산을 모르진 않았을 터다. 하지만 연인은 흔쾌히 승낙한다. 연인과 함께 전시회를 갈 생각에, 그는 뛸 듯이 기쁘다.
연인은 그에게 과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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