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인들과의 접촉을 자제했다. 초밥 샵에 오는 손님 중 가끔 한인들도 있었고, 오가는 길에서도 한인을 종종 봤다. 반갑고, 괜히 아는 체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를 위해서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그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속해 있었다.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한다는 오픈 채팅방이었고, 대부분 익명으로 참여했다. 인원은 30~40명 정도 된다. 카카오톡 단톡방은 어디나 그렇듯, 이야기하는 사람들만 이야기한다. 그는 말없이 필요한 정보가 있는지 보기만 하는 무리에 속한다. 유용하거나 특이한 정보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일상 공유, 같이 술 마실 사람을 찾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는 초밥 집에서 일을 끝내고, 백패커스에 돌아와 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배가 고프다. 하지만 그는 배고픔을 참는 일에 익숙하다. 그때, 호주 한인 단체 카톡방이 울린다. 어떤 사람이 사진들을 올렸다. 여러 음식들의 사진이다. 자신은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데, 오늘 음식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집으로 가져왔으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그의 눈이 빛난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사진 속 음식들은 연어 / 고기 / 빵 등 다양하다.
음식 사진이 올라온 시간은 밤 11시, 늦은 시간이다. 단체 카카오톡 방 내의 사람들은 반응이 없다. 그는 이때다 싶어 답장을 한다. 음식 제공자는, 자신이 사는 건물로 와달라며 주소를 보낸다. 구글 맵으로 확인하니, 그의 백패커스에서 자전거로 40분 거리다. 그에겐 멀지 않은 거리다. 40분 이후에 나와달라는 그의 말에, 음식 제공자는 놀란다. 그는 음식 제공자의 반응은 개의치 않는다. 거절인지 수락인지만이 중요하다. 그는 사진에 보이는 음식 중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통보하듯 이야기하고,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조차도 자신의 행동이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 속 음식들이 더 중요하다. 그는 음식 중에서도 특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연어를 생각하며 달린다. 연어를 맛볼 생각에 기분이 좋다.
그는 음식 제공자가 보낸 주소에 도착했다. 도심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건물이다. 그런데 멀리서 보니 3명, 음식 제공자 외에 2명이 더 있다. 무언가 이상하지만, 연어를 먹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그가 다가가 인사한다. 음식 제공자가 약간 곤란해하는 눈치다. 음식 제공자는 다른 사람이 먼저 왔다며, 남은 음식은 이것뿐이라고 말한다.
테이블 위에 남은 음식은 패스츄리 같은 빵 하나다. 그는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때, 다른 이의 손에 들려 있는 비닐봉지들이 보인다. 그중에는 그가 보았던 연어, 고기가 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
음식 제공자는 남은 건 이것뿐이지만 원한다면 가져가라고 한다. 그는 여기까지 왔으니, 이거라도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음식 배부가 끝났다. 그와 음식 제공자, 한 쌍의 커플이 어정쩡하게 서 있다. 그는 어색하지만 이야기에 끼어든다. 이야기를 들으니, 음식 제공자와 커플은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다. 음식 제공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커플은 무슨 사업을 한다고 했다.
커플은 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자전거 타면서 달리는 동안, 커플이 차를 타고 먼저 도착해서 음식들을 받은 것이다. 그는 커플 중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연어와 고기를 곁눈질로 본다. 그의 눈에는, 그 남자가 탐욕적으로 보인다.
밤이 늦었으므로 적당히 대화를 끝내고, 다들 뿔뿔이 흩어진다. 그는 자전거에 앉아서, 백패커스 1층 테이블에 앉아서 생각한다. 그의 앞에는 빵이 든 비닐봉지가 놓여 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눈여겨보았던 음식을 얻지 못해서, 하필이면 차를 탄 이들이 가져가서, 늦은 밤 수고한 것치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일까. 그런 피상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음식을 공짜로 나눠준다는 말에 거리 상관 않고 헐레벌떡 달려가던 모습, 그는 자신의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굳이 음식을 받아올 필요는 없었다. 그가 돈에 쪼들리고 배가 고프긴 하나, 이럴 정도는 아니다. 그도 그럴진대, 사업을 하며 차를 가지고 있는 커플이 늦은 밤에 먼 거리를 운전해 온 이유가 무엇일까. 배고픔이나 음식이 주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는, 음식 봉투를 손에 쥐고 어색하게 모여 있던 4명을 차근차근 떠올린다. 그는 결론을 내린다. 외로움이다. 음식을 나눠주겠다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 그, 차를 운전해 온 커플 모두 같다. 그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는 비닐 속 빵을 꺼내 한 입 물었다. 빵은 생각보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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