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2번째 고용주, 낀은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태국인 여성이다. 그는 낀을 보며, 전형적인 태국 사람이라 생각했다. 낀은 키가 작고 말랐다. 하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또렷한 눈빛에서, 강한 생활력이 느껴졌다. 낀은 한눈에 봐도 강인한 여성이었다.
낀은 자신의 이름이 낀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 비영어권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는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 영어 이름을 따로 만든다. 그는, 자신은 그들의 진짜 이름 / 진정한 이름을 불러주겠노라며 다짐했다. 그는 낀의 태국식 진짜 이름을 물었다.
낀의 진짜 이름은 '낀$#!&$(@&$$*&#%수완나파안' 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알아들은 '수완나파안'이 낀의 성이었다. 그는 군말 없이 낀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낀은 체인을 운영하는 사장인 셈이다.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을 중심으로, 10명 정도의 태국인들이 매주 대여섯 군데의 주말 시장에서 브런치를 만들어 팔았다. 취급하는 메뉴와 상점의 형태는 같다. 낀과 동료들은 주말마다 서너 대의 차로 트레일러를 끌어, 각 시장에 트레일러를 주차했다. 트레일러에서 압축가스 탱크와 버너, 천막 등을 꺼내 상점을 설치하고, 브런치를 만들어 팔고, 철거 뒤에 트레일러를 회수해서 다시 낀의 집으로 모였다. 물론 낀 자신도 어느 곳인가에서 똑같이 일을 했다. 그녀가 터를 잡은 한두 곳의 시장을 제외하면, 다른 시장들은 매주 위치가 바뀌었다. 그도 매주 다른 곳의 시장으로 출근했다. 그를 제외하면 모든 스탭이 태국인이다. 그는 이 점에도 기분이 좋다. 무언가 자신이 인정받은 느낌이다. 언젠가 낀이 자신의 집에서 차를 타고 가라며 부른 적이 있다. 그가 가니, 일하며 만났던 태국인 동료들이 모두 낀의 집 거실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낀의 집이 조직 본부 같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료들이 파는 메뉴 중 압도적인 1위는 바로 베이컨 앤 에그다. 베이컨 앤 에그는 영국식 브런치 메뉴인데, 호주도 영국 영향을 받아 음식이 비슷하다. 베이커 앤 에그는 10불이었고, 전체 메뉴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팔렸다. 그래서 한 명은 카운터를 봤고, 다른 한 명은 그릴에서 계란과 베이컨을 구웠다. 손님들은 베이컨을 바삭하게 해 달라던지, 계란을 소프트하게 / 하드하게 해 달라는 등 주문이 구체적이다.
베이컨 앤 에그 외에, 아보카도가 들어간 메뉴도 인기가 만만치 않다. 상점은 하루에 수십 개의 아보카도를 사용한다. 아보카도 껍질과 씨를 발라낸 뒤, 소금 / 후추 / 레몬 즙으로 간을 하면서 수저로 으깬다. 약식 과카몰리인 셈이다. 아보카도는 호주인에게는 밥이나 김치인 듯하다. 낀과 동료들은 으깬 아보카도를 한 움큼씩 퍼서 팔았다. 덕분에 으깬 아보카도는 항상 모자랐고, 카운터를 보는 이는 항상 아보카도를 으깨고 있었다. 그는 아보카도를 다루는 데 도가 터서, 어느 것이 잘 익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2주, 3주가 지나면서 그는 카운터뿐만 아니라 베이컨 굽기 및 다른 일도 섭렵했다. 이는 주말 시장 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매주 다른 장소에서 다른 동료와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은 만능인이 되어야 한다. 메뉴나 프로세스 자체는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므로, 이는 가능하다. 다만 그 간단한 일들을 쉼 없이 재빠르게 해내야 한다. 그는 어떤 날은 카운터를 보며, 어떤 날은 뒤에서 베이컨과 달걀을 구우며, 어떤 날은 모든 일을 넘나들며 일했다. 가끔 손님들은 그에게 태국인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일이 끝난 직후 100~150불 정도의 현금을 현장에서 지급받았다. 그가 주말 시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보통 7시~4시였으니, 엄밀히 계산하면 최저 시급과 같거나 조금 적다. 그래도 그는 이 일이 마음에 들었다. 주말마다 시장에서 현지 분위기를 느끼고, 손님들과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다. 스시 샵에서는 Tom이 그에게 카운터를 맡기지 않았는데, 주말 시장에서는 그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주말 시장 일이 끝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브리즈번의 햇빛 아래, 그릴 옆에서 바쁘게 일한 탓이다. 하지만 그는 사우나를 한 것처럼 정신이 맑고 개운함을 느낀다.
주말마다 시장을 가다 보니, 정해진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호주의 주말 시장도 한국의 시장처럼 특유의 모습이 있다.
- 천장이 없는 야외 시장이다.
- 그렇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손님이 급감한다. (그래서 그는 비가 오길 바라기도 했다)
- 시장 어딘가에 무대가 꼭 있어서, 가수나 밴드가 노래를 부른다. 그는 항상 라이브를 들으며 일한다.
- 시장의 분위기는 밝고 명랑하다. 상점 상인들도, 방문하는 손님들도 모두 표정이 밝다.
- 각 상점끼리 사이가 돈독하다. 그가 있던 쪽은 음식과 음료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상점들은 서로 자신들이 만든 음식과 음료를 맞교환해서 식사한다. 그와 동료들도 다른 상점의 시원한 과일 음료나 깔라마리(오징어) 튀김을 받아왔다. 베이컨 앤 에그 등의 브런치에 곁들여 먹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시장 광장에는 공용 급수 파이프와 전선이 있다. 임시 상점 설치, 설거지, 철거할 때 이를 다룬다.
- 시장은 해가 지기 전에 파장한다. 보통 3시~5시다.
그가 낀에게 고용된 시기는, 날씨가 좋고 손님들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시장이 파하고 나면 정산을 했는데, 보통 1500~2000불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이 많을수록 낀 자매의 표정이 밝았다. 하지만 약 2달 뒤부터, 손님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비까지 자주 내렸다. 그는 주말 시장에서의 일이라면 워킹홀리데이 1년 내내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보기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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