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작은 공놀이장에서 '사장님 나이스샷'을 외치고 구조물을 지탱하며 인간 고임돌 역할을 수행하던 그날, 회사에서는 또다른 행사가 있었다. 바로 '신입사원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다. 이 행사는, 몇 주 전에 있었던 신입사원 환영 식사 당일날 대표의 한 마디에 계획됐었다. 얼마 뒤 스포츠 경기가 있지 않냐는, 그 경기에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가서 다 같이 경기도 보고 하면 좋지 않겠냐는 대표의 말. 인사팀장은 이를 잊지 않고 실행에 옮겨, '신입사원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를 진행한다. 돌이켜보면, 이때 회사 행사가 특히 많았다. 전염병으로 인해 그동안 행사를 진행하지 못했던 한을 풀고자 하는 것인지, 못해도 격주로 행사가 하나씩은 계속 껴 있었다.
그는 티 없이 맑고 적극적인 신입사원이지만, 몇 번의 회사 행사를 참여하며 조금씩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상태다. 그가 제대로 참석한 회사 행사는 2번, '신입사원 환영 식사'와 '공놀이 행사'다. 호기심, 긴장, 설렘이 섞인 밝은 모습으로 열성적으로 참여했었다. 하지만 행사를 경험할수록, 뭔가 꺼림직한 뒷맛이 남는다. 굳이, 꼭 이런 행사들에 참석해야만 하는 걸까?
그는 용기를 내어, 예정되어 있던 3번째 행사인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에는 불참하겠노라고 말했다. 다른 동기들은 불참이라는 옵션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듯, 그를 뺀 모두가 참석했다. 참석하건 불참하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왠지 눈치가 보인다. 물론 그도 명분이 없진 않다. 얼마 전 '공놀이 행사'에 참석한 신입사원은 그 혼자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이유는 대외적 명분, 핑계에 가깝다. 그는 벌써 이때부터도, 이 회사의 '행사'에는 별로 참석하고 싶지 않음을, 무언가 맞지 않음을 내심 깨우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용감하게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에 불참하겠다 했는데, 하필 홍보팀에서 지원을 요청한 '작은 공놀이장 행사'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즉, 그는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에 굳이 불참 의사를 밝히지 않았어도 불참할 수 있었다. 혹은, 그가 용기를 내어 행사를 뺐지만 그는 어차피 이날 다른 행사에 나가 업무 지원을 해야 했다.
그가 작은 공놀이장에서 행사를 지원하는 동안, 다른 동기들은 스포츠 경기를 관람했다. 그는 별 관심이 없지만, 동기들이 관람한 스포츠 경기는 상당히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한다. 커다란 경기장에서 응원단이 북 등을 치며 응원가를 부르고,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고, 일반 관중들은 즐겁게 먹고 마시며 응원가를 따라부르는 스포츠다. 동기들의 후기를 들어보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약간 지루했다는 평이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아니어서 아쉬웠다느니, 경기가 너무 오래 걸려 그만 귀가하고 싶은데 상사들이 바로 옆에 있어서 눈치를 봤다는 이도 있다.
쏟아지던 행사가 끝난 다음날, 그는 여느 때처럼 사업지원팀에 출근한다. 신문을 올려놓고, 커피 머신을 닦고, 신문 기사를 공유하고, 전표를 치기 시작한다. 그때, 메신저가 울린다.
직원 : 얼굴 사원님 안녕하세요.
그 : 네 안녕하세요!
직원 :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스포처 경기 관람 행사 비용은 어떻게 처리해야 해요?
그 :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 비용이요?
직원 : 네
그 : 어떤 비용인가요?
직원 : 치킨이랑 육포 먹은 거랑, 맥주 마신 거요.
그 : (그걸 왜 여기에 물어보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직원 : 감사합니다!
직원의 문의에 그는 약간 어이가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맥주도 한 잔씩 하고, 무언가 간식 같은 것을 먹으며 경기를 관람한 것 같다. 그럴 만하다. 그가 티비에서 보았을 때도, 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이들은 치킨/핫도그/콜라/맥주 따위의 것을 항상 손에 쥐고서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 그러니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 직원들도 다들 무언가를 먹고 마셨을 터다. 그런데 그 비용 처리를 왜 사업지원팀에 문의하는가. 한 번 시작된 문의는 계속해서 쌓여가기 시작한다.
- 이거 비용 처리 어떻게 하나요?
- 맥주도 되나요?
- 영수증에 맥주라고 찍혀있는데 이거 되나요?
- 그때 여기 포스기가 안되서 사업자가 다른 이름으로 나왔는데 이것도 되나요?
- 인사팀에서는 이거 해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 전표 계정을 뭘로 쳐야 하나요?
- 저는 개인 카드로 결제했는데, 비용 처리가 되나요?
- 사실 법인 카드로 결제를 해야하는데 그때 법인 카드 가지신 분이 잠시 안 계셔서...
- 전표 어디로 제출해야 하나요?
- 전표 어떻게 쳐야 하나요?
- 증빙 뭐뭐가 필요한가요?
- 전표 쳐주시나요?
그는 스포츠 경기 관람 비용에 대한 전표 처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애시당초 그는 이 관람 행사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아니, 사업지원팀 전원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이 행사 문의가 왜 사업지원팀으로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계속된 문의에, U 과장이 말한다.
U 과장 : 얼굴아, 인사팀에서는 뭐래?
그 : '행사 비용' 으로 전표 치라고 답변받았습니다.
U 과장 : 증빙 받아서, 전표 처리해줘.
그 : (??) ...
U 과장 : (그의 낌새를 눈치챈 듯) 왜, 하기 싫어?
그 : 아뇨 그게 아니라. 저는 이 행사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U 과장 :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팀에서 일 못해
그 : (??? 안 하고 말지) ...
굳이 직원들의 전염병 검사 증빙을 모아서 대신 전표를 쳐주는 것에도 의문이 생겨가던 그다. 그런데,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 때 먹고 마신 것까지 전표를 대신 쳐주고 제출까지 해준다라. 의문이 더더욱 증폭된다. 그는, 용감하게 U 과장에게 말한다.
그 : 과장님, 전표를 본인들이 직접 치고, 인사팀에 제출도 직접 하라고 안내하면 어떨까요?
U 과장 :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게 나을 거 같아?
그 : 네, 그게 맞는 거 같아서요.
U 과장 : 그럼 그렇게 공지해
그 : (신이 난다) 알겠습니다.
U 과장의 허락도 받았겠다, 그는 전체방에 공지한다. 본인들이 직접 전표를 치고, 직접 인사팀으로 제출하면 된다. 전표 계정은 '행사 비용'으로 치면 된다는 내용의 공지다. 본인들이 먹고 마시느라 쓴 비용은, 당사자들이 직접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공지를 올리며, 그는 뿌듯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제동이 걸린다.
S 팀장 : 뭐야. 공지 누가 이렇게 올렸어?
그 : 제가 올렸습니다.
S 팀장 : 아니지 아니지. 전표 치는 건 뭐 알아서 친다고 쳐도. 제출은 우리팀으로 하라고 해. 모아서 한 번에 제출을 해줘야 저쪽에서도 편하지.
그 : (...??) 알겠습니다.
S 팀장 : 위층은 그렇게 가는 곳이 아니에요
그 : (그럼 어떻게 가야되는 거지)
공지가 수정된다.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에서 사용된 비용들, 먹고 마신 전표들이 모두 그에게 날아든다. 그는 이를 취합하여, 인사팀에 제출한다. 당연하게도, 인사팀은 이런저런 내용들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 물음에 대응하는 창구가 누군가? 바로 하얀 얼굴 사원이다.
인사팀 : 스포츠 경기 관람 행사 전표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잠시 올라와주세요
그 : 알겠습니다!
위층 인사팀
인사팀 : 여기 이 전표는 '행사 비용'으로 친 게 아니네요. 반려입니다.
그 : 알겠습니다.
인사팀 : 대부분 법인카드 결제인데, 개인카드로 결제한 건들은 뭐죠?
그 : 아, 법인카드를 갖고 있는 인원이 없을 때 결제를 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인사팀 : 이건 영수증이랑 금액이 다르네요. 전표 다시 쳐서 주세요.
그 : 네..
인사팀 : 이거는 영수증이랑 전표가.. ...
그 : 네네...
벌써부터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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