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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회사

70 - V 차장 (인사총무, 네트워크 문의)

 입사 이후 사업지원팀에서 그가 주로 맡았던 업무들은 '인사총무' 관련 업무였다. 그의 입사 초기 팀 회의에서, S 팀장은 그에게 '인사총무부터 먼저 주겠다'고 이야기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IT사업부의 엥간한 지원 업무는 모조리 사업지원팀으로 넘어왔다. 어느 부서에서 할지 구분이 불명확한 일들은 일단 사업지원팀으로 넘어오는 게 당연했다. 말 그대로 '사업지원' 팀이니까. 좋게 말하자면 S 팀장의 말처럼 '모든 일을 다 배울 수 있는 팀'이었고, 안 좋게 말하자면 '왠갖 잡스런 일은 모두 떠맡는 팀'이었다. 

 

 그런 사업지원팀에서도, '인사총무'를 전담하고 있는 팀원이 바로 V 차장이다. 그가 들은 바에 의하면, V 차장은 원래 콘텐츠 전송 기술팀 소속이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사업지원팀에 속해 있으며, 각종 인사총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기술팀 근무 경력으로 인한 것인지, V 차장은 컴퓨터와 IT 쪽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엔지니어 측에서 무슨 오류가 생겼다고 해도 척척 알아냈고, 팀원들의 컴퓨터가 오류가 생기면 그것도 척척 알아냈다. 문제는,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여 인사총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지원팀에는 별의별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 그중에는 기기, 통신 관련 문의도 많다. 모니터가 깜빡거린다느니, 노트북 와이파이가 안 잡힌다느니, 프린터와 연결이 잘 안 된다느니, 심지어 사내망에 연결이 잘 안 된다는 문의도 지속적으로 날아들었다. 이런 문의에 대응하는 이가 바로 V 차장이다. 원칙적으로는 위층 관리팀에 시설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으나, 대응과 조치가 너무 느려서 사업지원팀에서 직접 대응하던 것이 이렇게 굳어진 것이라 한다. (S 팀장이 말한, 위층은 그런 식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유가 아닐까 싶은 그다)

 

 특히 컴퓨터 연결, 사내망 접근 등의 '네트워크' 문의가 정말 많았다. V 차장은 랜선을 연결하는 공유기 문제일 것이라며, 어느 공유기에서 답신 없는 요청이 빙빙 돌면서 해당 공유기 전체를 먹통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통신 용어들이 섞여있는 V 차장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같은 한국말인데, 외국어보다도 알아듣기가 힘들다.

 

 V 차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무슨 까만 창을 켜놓고는 출력되는 숫자들을 본다. 요청 이후 답신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보는 것이라 한다. 그러다가 문제가 되는 공유기를 찾으면 해당 공유기로, 문제를 못 찾으면 모든 공유기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원을 뺐다가 껴서 리셋을 시켜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무언가 해야할 것 같아 V 차장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V 차장은, 저기 바닥에 깔려있는 저것이 공유기라고 했다. 랜선 여러 개가 마구 꼽혀있는 장치다. 그는 공유기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인지한다.

 

 

 V 차장은 자리로 돌아가, 그에게 전원을 뺐다가 다시 꼽으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 기술자라도 된 마냥 착각에 빠져, 부푼 가슴을 안고 전원을 뺐다가 꼽는다. 그럴 때마다, V 차장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V 차장 : 쓰읍 이게 아닌데... 얼굴아 다시 끼고 저쪽으로 가봐

  그 : 네!

 

 

 공유기로 해결이 안 될 때는, V 차장은 벽면 중간의, 쇠로 된 조그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런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부에는 전선 다발이 묶음으로 여기저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로써는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 복잡도다. V 차장은 이 부위까지 검토하곤 했다. 네트워크 문의의 결말은 항상  중 하나였다.

  - 공유기를 모두 뺐다가 끼니 일단 해결이 된다. (하지만 일주일 내로 다시 재발)

  -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건 공유기나 랜선이 아닌, 망 자체의 문제다. (사업지원팀으로서는 해결 불가)

 

 어떻게 안내를 해도, 문의는 언제나 사업지원팀으로 날아든다. 문의가 날아오면, V 차장과 그는 또다시 발로 뛴다.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진 공유기들을 다시 방문하여, 전원을 뽑았다가 다시 낀다. 어느날 그는 V 차장에게 말한다.

 

  그 : 차장님, 어떻게 이런 것들을 이렇게 잘 아시나요?

  V 차장 : 그냥 회사 생활하면서 알게 된 거지

  그 : 예전에 네트워크 전송팀에 계셔서, 전문가가 되신 거 아닌가요?

  V 차장: 뭐?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지만. 그쪽은 달라. 거기는 사업과 연관된 외부 네트워크 전송 관련인 거고. 지금 이거는 회사 내부망인 거니까.

  그 : 그래서 네트워크 전송 관련해서 알고 계시는 차장님이, 사업부 내부 문의도 해결해 주시는 거군요?

  V 차장 : 그냥 그때그때 대응만 하는 거지. 이건 원래 우리 일이 아니야. 위층 관리팀에서 해줘야 하는데. 몇 년 전부터 계속 얘기는 하고 있는데, 시설도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해결이 안 되더라고.

  그 : ...

 

 V 차장의 말을 들으며, 소를 잡을 수 있는 인원에게, 칼도 쥐어주지 않고 닭을 잡게끔 시키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그다. 

 

 

 사업지원팀에서 그는 인사총무 업무를 받기로 공표가 된 상태다. '전염병 전표'와 '창고'를 메인으로 하여, 각종 취합과 문의 대응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그다. 전염병 전표의 경우는 파견 여직원 퇴사 시의 리스크를 헷지하라는 차원에서 맡은 감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그와 업무적으로 가장 많이 얽힌 이는 V 차장이었다.

 

 그의 느낌상, V 차장은 인상이 선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다가가기가 수월한 상사였다. V 차장의 생각과 감상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V 차장을 집요하리만치 따라다니며 V 차장의 업무를 덜고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V 차장은 그의 회사 생활 초창기 적응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상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