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던 그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정보는 탐이 났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종류의 한인 커뮤니티를 보곤 한다. 오픈 단체 카카오톡방, 페이스북 페이지, 한인 웹사이트(썬브리즈번, 멜버른의 하늘 등)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커뮤니티들에 친구 추가를 하거나 익명으로 참여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하는 이야기 중 쓸만한 정보가 없는지 탐색한다.
지금부터 쓸 '호주의 한인들' 이야기는, 그가 들여다보는 한인 커뮤니티 정보 /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얻은 정보 / 그가 겪은 정보의 나열이자 조합이다. 과장되고 왜곡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조사나 통계가 집계된 것은 없다. 그는 주어진 정보들을 개인적 관점에서 조합하고, 그 과정에서 일련의 경향성이나 시나리오를 뽑아낸다.
호주 한인들 사이에서, '비자'는 어느 정도 계급과 동의어로 보인다. 가장 낮은 계급인 워홀 비자부터, 가장 높은 계급인 시민권의 순서라 할 수 있다.
워킹홀리데이 1년 비자 - 워킹홀리데이 2년(세컨) 비자 - 학생 비자 - 영주권 - 시민권
비자나 이민 상태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러한 평가는 어느 정도 선에서는 타당하다.
워킹 1년 차 - 대부분의 워홀러, 모든 것이 새롭다. 낯설지만 적응하는 보람을 느낀다.
워킹 2년 차 - 세컨 비자를 승인받아, 워킹 2년 차에 접어든 워홀러다. 1년 차 워홀러에 비해 호주에 더 적응한 상태고, 주워들은 것이나 경험한 것이 쌓여간다.
학생 비자 - 학위 취득이 목적인 비자이지만, 워킹 2년 후 호주 체류를 연장하고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기관에 이름을 걸어놓고 돈을 내면, 학생 비자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학생 비자는 기본적으로 학위 취득과 연관된 비자이므로, 학비에 준하는 돈이 든다. 학생 비자인 한인들은, 워홀러들보다 더 많이 일하지만 항상 돈에 쪼들린다. 주로 영주권 발판을 마련하는 기간에 이용하는 비자다.
영주권 - 호주 정부가 규정한 요건(필요한 전문 인력, 특정 산업 종사 등)을 충족할 경우 받을 수 있다. 영주권을 얻게 되면 호주에서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면 된다. 워홀 비자나 학생비자는 기한이 있어서, 기한이 만료되면 출국해야 하지만 영주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영주권을 목표로 하거나 취득한 이들은, 호주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권 - 아예 호주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에서 체류기간과 조건을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영주권과 큰 차이가 없어서 영주권에 머무는 이들도 많다. 시민권을 취득할 시 대학교 학비에 대한 지원이 있다는 점이 가장 가시적인 차이다.
워킹비자 1년 차보다는 워킹비자 2년 차가 더 아는 것이 많을 것이고, 학생 비자는 워킹비자보다 호주 생활에 능숙할 것이다. 그래서 호주 한인들 사이에서는, 처음 만나면 비자가 무엇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비자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의 능력을 가늠하는 것이다. 일종의 스펙, 안 좋게 말하면 계급이다. 문제는, 이 비자 상태를 계급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다.
비자 상태를 계급으로 보는 것은, 해당 비자에 속한 사람들의 나이와도 관련 있다. 통상 워킹 비자의 경우는 20대, 학생 비자는 20대~30대, 영주권과 시민권자는 30대 이상~중장년층까지 포괄한다. 한국의 경우 나이에 의한 서열이 공고한데, 나이에 더해 비자까지 더해지면 이상한 사례들이 생기곤 한다.
1. 어떤 한인 협회가 단합대회 같은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무슨무슨 한인모임 같은 이름이며, 시민권자와 영주권자가 주를 이룬다. 이 단합대회 행사에서 서빙하는 알바를 모집했고, 한인 웹사이트에 공고가 올라왔다. 20대 워홀러들이 지원했고, 서빙을 한다. 서빙한 워홀러들은 남1, 여2였다고 한다. 그는 쉐어하우스에서 남1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남1에 따르면, 단합대회에 모인 어른들이 워홀러들에게 비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워킹이라고 하자, 자신들이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식의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되면서, 남1은 협회 어른들이 서빙하는 두 워홀러 여성의 엉덩이를 자꾸 건드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남1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믿을 수 없었고, 결국 이날 주방 뒤편에서 두 여성 워홀러는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2.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은 이미 정착한 상태로, 기술직 일을 하거나 상점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상점을 운영하는 경우에서 가끔 발생하는 사례다. 영주권을 받기 위한 요건 중에, 특정 직장에서 특정 기간 이상 일을 하는 조건이 있다. 그리고 호주 정부가 인정하는 직장 중에는, 이미 정착한 한인이 운영하는 상점도 있다.
영주권을 받고자 하는 이는 절박하다. 그런 사람에게 한인샵 주인은, 영주권 취득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귀인이다. 한인샵 주인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악덕 한인샵 주인은 영주권 허가를 볼모로 삼아, 돈도 주지 않고 사람을 부려먹는다. 영주권이 필요한 사람으로서는, 이 한인샵에서 나갈 경우 비자가 만료되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인샵에서 수모를 감내한다고 한다.
영주권을 받고 나더라도, 인간관계는 먼지 털듯 훌훌 털어버릴 수 없다. 호주 내의 한인 사회는 상당한 조직성과 배타성을 보이기 때문에,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한인 사회에서 꽤 영향력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영주권 취득 이후에 한인 사회를 척지고 살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모질게 대했던 사장을 어쨌든 모셔야 한다. 사장은 오히려 감사와 존경을 요구한다. 자신 덕분에 영주권도 받고 호주에서 살게 되었으니, 극진히 모셔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장도 있다고 한다.
"야 걔는 내 덕에 호주에서 사는 애가, 명절에 인사도 안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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