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밤을 보내며 잡은 한인 쉐어하우스에 입주한다. 당장 집이 없어 급한 상황이다 보니 깐깐하게 보지 못한다. 일터에서 거리가 꽤 멀고, 방세가 130불인 독방이다. 1주일 방세 130불이면 그의 기준에서는 비싼 편이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다. 그는 인스펙션 당일날 즉시 입주한다. 독방에서 지내보니, 왜 사람들이 룸메이트 없는 독방을 선호하는지 깨닫는 그다.
보통의 쉐어하우스들은 최대한 돈을 벌기 위해, 남는 방은 모조리 세를 준다. 그렇게 되면 한 집에 최소 네다섯 명에서 많게는 여덟아홉 명이 같이 산다. 방은 룸메이트와 같이 써야 하고, 인원이 많을수록 지켜야 할 것과 조심해야 할 것이 많다.
떠밀리듯 선택한 곳이었으나, 이 쉐어하우스는 꽤 괜찮다. 우선 도심으로부터 거리가 꽤 멀어서, 독방임에도 방세가 130불이다(독방치고 싼 편). 또한, 마스터 가족 외의 쉐어메이트는 그밖에 없다(이 마스터 부부는 집을 소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집은 크고 인원이 적으니, 훨씬 쾌적하고 마찰 없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이다.
마스터 부부도 정말 괜찮다. 보증금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그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앞선 경험들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상태다. 그는 마스터 부부가 제공하겠다는 것들을 모두 사양한다. 마스터 부부는 그에게 쌀과 세제 등을 써도 된다고 했지만, 그는 굳이 따로 사서 쓴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물건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피하고, 조심하면서 지낸다. 그래서인지, 이곳이 그가 갈등을 겪지 않은 유일한 한인 쉐어하우스가 된다.
이 쉐어하우스가 위치한 곳은 단독주택단지다. 건물들이 높지 않고 드문드문 퍼져있다. 독방이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차가 편하다. 주택단지에서 차를 운전해서 조금만 나가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그는 이 공터에 차를 세우고, 차문을 연 채로 쉰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본다. 장관이다.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밤하늘, 별이 빛나고, 별이 없는 검은 여백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맣다. 밤하늘은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서, 그는 돈을 아끼려고 투잡을 뛰고 쉐어하우스 한인들과 기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가 어떤 감정을 가졌고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관심 없는 거대한 밤하늘,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한다. 동시에, 이렇게까지 치열하고 처절하게 생활했던 것이 덧없게 느껴진다. 눈앞만 보느라, 머리 위 밤하늘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 밤하늘이야말로, 그가 호주까지 와서 찾으려는 무언가에 가장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브리즈번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싸웠고, 못 볼 것도 많이 봤다. 터가 좋지 않다고 하자. 떠난다면 어느 곳이 좋을까. 그래, 지금 보이는 밤하늘을 더 크고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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