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면접 장소로 향한다. 구글 지도를 보니, 도심 근처의 커다란 빌딩이다. 1층에는 직원과 방문자를 위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니, 차단막이 열린다. 그는 캠리를 주차하고 건물 안으로 향한다.
건물 1층에는 카페와 커다란 홀이 있다. 직장인인 듯한 호주인들이 많이 보인다. 정장을 입고, 손에는 커피나 음료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 카지노 청소잡 면접을 보러 왔지만, 그도 정장 입고 일하는 오피스 워커의 꿈이 있다. 그가 지금껏 해온 일들과 카지노 청소잡은 아르바이트에 가깝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직업들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그다. 그리고 그가 경험해보고자 하는 직업에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평생 직업 개념의 오피스 워커도 포함된다. 그는 언젠가는 호주에서 오피스 워커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오피스 워커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워홀러가, 호주의 일반 회사에서 사무 정규직 자리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메일에서 안내받은 8층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니 전형적인 회사 모습이다. 면접을 보러 왔다는 그의 말에, 잠시 로비에서 대기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대기하면서 주위를 돌아본다. 이 곳은 카지노 본사가 아닌, 카지노에서 청소 외주를 주는 회사인 듯하다.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기대감으로 인해, 그는 이때의 사무실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데스크는, 특이한 반달 모양의 테이블로 이루어져 있다. 테이블은 흰색이며, 바닥에는 진청색의 카펫이 깔려 있다. 하얀 테이블과 진한 푸른색 카펫으로 인해, 공간 전체의 분위기가 편안하면서도 신뢰감을 준다. 데스크 옆에는 넓은 홀이 있다. 홀 정면은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8층인 데다, 건물 자체가 지반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저 멀리까지 시야가 트인다. 그는 이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 멋진 풍경을 보며 일한다고 생각한다. 홀에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전형적인 의자는 아니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네모난 쿠션 의자들을 모아서 넓은 소파처럼 만들어 놓았다. 사람 엉덩이 하나 크기의 쿠션 의자들이 20개 정도 모여 있다. 색깔은 밝은 초록색, 하얀색, 노란색 등이다. 누워도 될 만큼 넓긴 하지만, 누워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등받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기보다는 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잠시 뒤 바로 옆 회의실에서 그를 부른다.
회의실은 유리로 되어 있지만, 중간 부분은 불투명 시트지를 붙여놓았다. 그가 들어가니,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중년 여성 면접관이 그를 맞이한다. 면접관은 한 명이다. 인상이 나쁘지 않지만, 안경 속 푸른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면접관이 How are you로 면접을 시작한다.
그는 키친핸드, 주말 시장에서 일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 백패커스에서도 외국인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어가면서 영어 연습을 했다. 기본 회화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어필하기 위해, 최대한 발음을 굴려가면서 대답한다. 가끔씩 호주 슬랭도 섞어가면서 이야기한다. 면접관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면접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그때, 면접관이 그에게 묻는다.
일을 하고 있는데, 바닥에 액체가 쏟아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
그는 mob(대걸레)을 가져와 닦겠다고 말한다. 면접관은 그를 보며, 또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다. 그는 휴지로 덮어두겠다고 말한다. 면접관은 그의 답변을 듣고, 말이 없다. 잠시 뒤, 면접관이 입을 연다. 바닥에 액체가 있을 경우,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미끄러움 주의' 표지판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준다. 그는 두 번이나 오답을 이야기했다. 그는 헛웃음이 나오면서, 순간 머릿속이 까매진다. 뒤늦게 맞장구치지만, 이미 면접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게 차가워졌다. 면접관은 면접이 끝났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면접관의 푸른 눈이, 면접 전보다 더 날카롭고 차갑게 느껴진다.
한 달이 넘게 무도회장을 청소하면서, 그는 화장실 / 카펫 진공 청소 / 유리창 / 금속 광내기 등 기능적 측면은 모두 숙달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가 했던 청소는 새벽에 진행되는 야간 청소였으므로, 지시하거나 감독하는 이가 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고, 시간을 줄여야 하므로 안전 표지판 따위는 무시하고 청소했던 그다. 호주는 안전에 관해서는 특히 민감하다. 그는 카지노 청소부 면접이 완전히 망했음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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