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센터에서 의류 쇼핑의 새로운 맛을 알긴 했지만, 그가 본래 유일하게 즐기는 쇼핑은 식료품과 음식이다. 쇼핑센터에는 반드시 푸드 코트가 있다. 그의 쇼핑 비율은 20%가 의류, 나머지 80%는 식료품과 푸드 코트다.
쇼핑센터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한 뒤, 곧바로 K-MART에 들어가 의류를 둘러본다. Clearance 택이 붙은 옷이 있나 확인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의 눈에 번쩍 뜨일 만큼 멋진 아이템이 있나 찾는다. K-MART는 싼 가격을 전략으로 취하는 편이므로, 옷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썩 좋지는 않다. Clearance Sale을 하지 않음에도 그가 살 만큼 매력적인 의류는 거의 없다. 가뜩이나 돈을 아끼는 그이므로, 비싸질수록 기준은 더 까탈스럽다.
20%의 시간을 투자해 K-MART를 돌며 의류를 보고 나온 후에는, Coles나 Woolworths 같은 식료품 점으로 향한다. 양파, 당근, 마늘, 스팸, 베이컨, 우유 등을 둘러본다. 하지만 그의 식료품 구매량은 브리즈번에서보다 현저히 줄어든다. 그가 멜버른에서 겪은 숙소들은 하나같이 주방이 열악한 편이다. 식기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거나, 가스가 약해서 불이 약하다거나, 공용 식기들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 그가 새롭게 정착한 숙소의 친절한 중국인 집주인도, 어느 날 기분이 상했는지 그에게 주방의 도마와 칼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몰래몰래 쓰거나 눈치껏 쓰면 되긴 하겠지만, 그는 굳이 눈치 보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나서 몸이 피곤한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
그는 멜버른에서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브리즈번에 비해서 아주 간단한 요리다. 파스타를 하더라도, 브리즈번에서는 팬에 야채들을 달달 볶은 뒤 소스를 넣고 제대로 풍미를 살렸다. 멜버른에서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그냥 재료와 소스를 몽땅 집어넣고 끓여버린다. 얼른 조리를 끝내고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침대에 앉아 먹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의 요리는 점점 더 간단해진다. 종국에는 라면이 주를 이룬다.
그는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건강에 썩 좋은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멜버른의 값싼 숙소 주방에서 요리는 사치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는, 끼니를 때운다는 생각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그가 끓여먹는 라면은 진라면 매운맛이다. 그는 한국에서 주로 신라면을 먹었다. 신라면이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가장 대표적인 라면이 신라면이라고 생각해서 먹었다. 호주에 와서 그가 맨 처음 먹은 라면도 신라면이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 어떤 식품이든 제품이든, 내수 시장용과 수출용은 약간씩 다르다. 그는 한국에서는 어떤 라면을 먹든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맛에 둔감한 편이었다. 하지만 호주에 와서 먹어보니, 그조차도 호주의 신라면이 그가 먹어왔던 한국의 신라면과는 맛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국 음식은 다른 나라보다 맵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나 라면은 더 그렇다. 라면 제조사들은, 매운맛으로 인한 외국인들의 충격과 놀람을 완화시키고자, 수출용 라면 맛을 조금은 달게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맛본 신라면은, 한국에서 맛본 신라면보다 단 맛이 있다. 그래서 살짝 느끼하다. 이 오묘하게 달면서도 느끼한 맛을 캐치하자마자, 그는 다른 라면들을 시도한다. 진라면 순한 맛을 시도하는데, 신라면보다 더 달다. 진라면 매운맛을 시도한다. 이거다! 그나마 매운맛 버전이라, 매운맛이 단 맛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한국에서 먹은 진라면 매운맛보다 더 그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그는 이후부터 콜스나 울월스에서 라면을 살 때면 무조건 진라면 매운맛 5개입 봉지를 산다.
조리가 불편하고, 브리즈번에서 돈을 약간 벌어두었고, 멜버른에서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이 모든 조건이 작용하여, 그는 브리즈번에서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완제품을 사 먹기 시작한다. 브리즈번에서는 돈을 아끼려고 억지로 요리를 해서 피곤하지만 건강하게 먹었다면, 멜버른에서는 돈을 쓰면서도 건강하지 않은 식생활로 변한 셈이다. 헝그리 잭스 같은 햄버거로 매 끼니를 먹기는 힘들다. 그는 푸드 코트에서 대안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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