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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21 - Infringement

 그는 조쉬와 일하고 남는 시간에 이곳저곳 면접을 보러 다닌다. 그는 외곽에 살고 있지만, 도심 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 브리즈번에서 했던 일들을 비롯해서, 그는 아직 도심 한복판에서 일을 해 본 적은 없다. 브리즈번에서는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에서 일을 했었고, 멜버른에서는 아예 외곽 쪽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그는 도시의 정중앙, 인파가 가장 많은 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이력서를 그리 많이 넣지는 않는다. 그도 이제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일자리를 보는 눈이 약간 까다롭다. 그가 이력서를 넣으면, 대개 전화가 와서 면접을 권한다. 그는 도심의 한 음식점에서 연락을 받고 면접을 보러 향한다.

 

 멜버른 도심은 역시나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그는 면접을 보기로 한 음식점 앞에, 잠시 동안 캠리를 주차한다. 면접은 길어봐야 15분에서 30분이다. 그가 면접을 보러 들어가니, 음식점 주인은 아주 기본적인 것 몇 가지만 물어보더니 면접이 끝났다고 말한다. 10분도 안 걸린다. 그냥 예의상 불러서 몇 마디 나눠본 느낌이다. 그는 실망감을 훌훌 털어내며 밖으로 나와 캠리로 향한다. 그런데 캠리 앞유리창 와이퍼에, 이상한 종이가 끼워져 있다.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 종이를 펼쳐보니, 주차 위반 딱지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주차 위반에 걸린 것이다. 그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형광색 조끼를 입은 한 공무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스피드건 같은 기계로 딱지를 인쇄해서 와이퍼에 끼워놓고 있다. 그는 다급하게 공무원에게 뛰어간다.

 

 그는 공무원에게, 딱지를 보여주면서 10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걸렸다고 하소연한다. 공무원의 표정은 미동도 없다. 공무원은 전혀 흔들림 없이, 정해진 벌금을 기한 내에 납부하라고 한다. 기한을 넘기면, 벌금이 추가로 붙는다고 답한다. 그가 언뜻 보니, 주차 위반 딱지에 적혀있는 벌금은 150불 가량이다. 너무나도 큰 금액이다. 그는 떠나려는 공무원을 붙잡고, 어르듯 달래듯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말한다. 공무원은 위협적인 표정으로 변하더니, 당장 떨어지라고 말한다.

 체념하고 터덜터덜 캠리로 돌아가는 그의 눈에, 주차 위반 딱지가 끼워져 있는 다른 차들이 보인다. 그는 이 사건 이후 길을 가다가 주차 위반 딱지가 걸려있는 차들을 보게 되면, 약간의 동지애와 고소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의 차량 관련 벌금은 이후에도 몇 번이고 계속된다. 그가 멜버른 시티 내에서 운전을 하다가, 40km 속도 제한 구간에서 표지판을 늦게 발견해서 속도를 줄이지 못한 적이 있다. 그는 약 시속 48km 정도로 주행했다. 표지판을 발견하고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순간 그는 불안한 번쩍임을 본다. 신호등 위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 중 하나에서 불이 번쩍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틀 뒤, 그에게는 어김없이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온다. 과속으로 인한 벌금 통보, 벌금은 250불이다.

 

 그는 이후에도 주정차 위반을 한 번 더 걸려서, 벌금이 도합 500불이 된다. 

도심 주정차 위반 150불 + 과속 250불 + 외곽 주정차 위반 100불 = 500불

 그는 정해진 기한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 제깍제깍 벌금을 내지만, 송금 버튼을 누르는 그의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린다. 500불이라니, 500불이면 쇼핑센터 푸드코트에서 배가 몇 번이고 터질 만큼의 음식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는 벌금을 내지 않고 무시해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죄짓고 사는 느낌이라 영 내키지 않는다. 차량 관련 벌금을 무시하고 그냥 귀국하는 워홀러들이 있다고 하는데,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 동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호주는 교통법규 위반 벌금이 상당히 쎈 편이다.

 

 그에게 날아오는 벌금 고지서들에는 빨간 글씨로 Infringement라고 적혀 있다. 처음 보는 생소한 단어라 검색해보니, '위반, 위배' 라는 뜻이다. 그는 Infringement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이상하게 생겨서 뜻도 못된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는 브리즈번에서도 경찰을 본 적이 있다. 헬멧을 쓰지 않고, 핸드폰을 쓰며, 야간등을 달지 않은 체 자전거를 타다가 걸린 적이 있다. 당시 브리즈번 경찰은 벌금을 언급했지만, 그의 사정을 듣고서는 못 이기는 척 봐주었다. 그는 멜버른에서도 이런 선의의 용서를 기대했지만, 멜버른 경찰들에게는 택도 없다. 멜버른 경찰들은 교통 법규 위반에 대해서 가차 없이 벌금을 부과한다. 

 

 워홀러들 사이에서도, 멜버른을 포함한 Victoria(빅토리아) 주의 교통 법규가 엄격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호주 교통국 Head가 빅토리아 주에 위치해 있어, 더 엄격하다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는 500불의 벌금을 납부한다. 이후 그는 멜버른 도심에 나갈 때마다, 표지판을 강박적으로 찾는다. 과속 표지판이 있으면, 그는 아예 5km/h 이상 속도를 낮춰서 운전한다. 누군가는 답답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남들의 눈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500불의 벌금이 그의 운전 습관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몇 번이고 막대한 벌금을 때려 맞은 그는, 누구보다도 안전 운전을 하게 된다. 벌금을 낼 당시에는 피 같은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으나, 과속이나 난폭 운전보다는 온순한 운전을 지향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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