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셰프는 만날 일이 별로 없고, 다른 두 명의 셰프는 그의 주변에서 계속 요리를 하고 있으므로 조금씩 안면이 트인다. 두 셰프는, 무언가 그를 좋게 본 듯하다.
두 셰프의 국적은 한 명은 중동, 한 명은 동남아로 예상된다. 둘 중 동남아 셰프는 아저씨뻘 되는 나이인데, 그를 보면 유난히 너털웃음을 지으며 잘 대해준다. 중동 셰프는 처음에는 약간 태도가 이상했다. 설거지하고 있는 그에게 제대로 하라며 자꾸 지시를 내리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중동 셰프가 군기 반장 역할이고 동남아 셰프는 더 선배라서 뒷선에서 사람 좋게 지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반복되는 설거지를 하며, 육가공 공장 생각이 난다. 그가 매력을 느끼지 못한 업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기계처럼 반복하는 일이다. 주방에서 양파를 까거나, 건설현장에서 못을 뽑는 것은 차라리 낫다. 무언가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설거지에서는 이런 가치를 찾지 못한다. 그는 설거지를 계속하면서, 조금씩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이를 눈치챈 것인지, 중동 셰프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 그릇을 건드리면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한다. 그는 참고 참다가, 폭발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폭발을 절제된 형태로 분출한다. 그는 설거지를 멈추고, 중동 셰프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달라고 말한다. 중동 셰프는 그의 이 말을 듣자, 어이없으면서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의 행동이 썩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지만,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형태의 반항이다. 중동 셰프는 이후, 오히려 그를 대할 때 웃음과 농담을 던지기 시작한다.
잠깐 신경전이 있긴 했지만, 주방 안은 워낙 바쁘기 때문에 다들 제자리로 돌아간다. 점심 피크 타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다가온다. 중동 셰프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는 설거지 탑을 여럿 처리한 뒤, 남은 잔 설거지들을 처리 중이다. 동남아 셰프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다.
동남아 셰프 : You alright? (괜찮으냐?)
그 : This is not what I expected. (이건 내가 예상했던 게 아냐)
동남아 셰프 : What did you expect?
그와 동남아 셰프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그가 머릿속에서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진다. 'What did you expect?', 뭘 예상한 거냐, 의역하자면 뭘 기대했느냐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무심결에 한글로 번역했다가, 생각에 잠긴다. 그는 Dish Washer 일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어차피 파트타임 잡일 뿐이며, 그것도 설거지다. 그는 혼자서 설거지로부터 무언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에 잠긴다.
동남아 셰프는, 이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점심 휴식시간에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라고 말한다.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에 너털웃음을 짓고 있지만, 한 마디 말로 그를 멍하게 만든 동남아 셰프가 큰 사람으로 느껴진다. 동남아 셰프가 이런 통찰력과 가시를 품은 말을 의도하고 던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동남아 셰프의 말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다.
동남아 셰프와 중동 셰프가 그의 점심 휴식을 위해 만들어준 햄버거는 정말 맛있다. 설거지 일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함께 일하는 셰프들은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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