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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22 - Dish Washer

 계속해서 면접을 보다가, 그는 마침내 파트타임 일자리를 하나 얻는다. 역시나 도심은 아니고, 멜버른에서는 40분 정도 떨어진 해변에 위치한 카페다. 그의 숙소인 Narre Warren에서는 가깝다.

 

 이 카페는 전형적인 호주 브런치 카페다. 그가 브리즈번의 주말 시장에서 만들어 팔던 메뉴를 똑같이 판매한다. 베이컨 앤 에그 베네딕트, 아보 베이컨 토마토 등, 빵에 아보카도 / 베이컨 / 계란 후라이 등을 올려서 나가는 브런치 메뉴들이다. 주인 부부는 인도인으로 보이는데, 남편은 메인 셰프이고 부인은 경영을 담당하는 듯하다. 주방 내 셰프들과 보조는 동남아인, 웨이트리스들도 대부분 동남아인에 백인이 가끔 섞여있다.

 

 그는 메인 셰프와 면접을 본다. 메인 셰프는 약간 어수룩해 보였는데, 몇 가지 묻지 않더니 당장 이번 주 주말 하루만 나와달라고 이야기한다. 주말이면 조쉬의 건설현장 일과 겹치지 않는다. 그는 흔쾌히 알았다고 한다. 

 

 출근을 하니, 웨이트리스들이 그에게 펀치 머신(Punch Machine) 사용법을 알려준다. 펀치 머신은 그야말로 펀치, 구멍을 뚫는 기계다. 모든 직원들은 저마다의 이름이 새겨진 종이가 있다. 이 종이는 근무시간표라고 보면 된다. 출근해서 근무시간표 종이를 펀치 머신에 넣으면, 펀치 머신은 정해진 위치에 구멍을 뚫는다. 해당 시간에 출근해서 일을 했다는 증명이다. 영화 '조커'를 보면, 아서 플렉이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짐을 챙겨 나가다가 돌아와 "Oh, I forgot to punch(펀치하는 것을 잊었네)" 라고 말하며 벽에 걸려 있는 기계를 주먹으로 때려 부수는 장면이 있다. 그 기계가 바로 근무 시간을 체크하는 펀치 머신이다. 광대인 아서 플렉이 Punch를 중의적 의미로 사용하여 해고당한 와중에도 개그를 선보인 장면이다.

 

 

 그가 새롭게 얻은 일자리는 Dish Washer다. Kitchenhand(주방 보조)가 아니라 Dish Washer(설거지 담당)다. 호주의 여느 카페들처럼, 이 카페는 점심시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1명의 메인 셰프, 2명의 셰프, 1명의 보조가 주방에서 끊임없이 요리를 만든다. 그의 자리는 주방에서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식기세척기 앞이다. 그는 식기세척기 앞에서 떠날 일이 없다. 말 그대로 Dish Washer,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다. 

 

 그는 브리즈번에서 주방 보조 일을 할 때 식기 세척기를 약간 써보긴 했으나, 주방 보조였으므로 주 업무는 아니었다. 이 카페에서 그는 주방 보조가 아니라 설거지하는 인원이므로, 식기 세척기는 그의 주요 업무다. 그가 식기 세척기 옆에 서 있으면, 서빙하는 인원들이 접시를 가져온다.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난 후의 빈 그릇들이다. 그는 이 빈 그릇들을 씻어야 한다. 그릇들을 씻으면서, 중간중간 주방으로 뛰어와 셰프들 아래에 하나씩 있는 쓰레기통 비닐도 바꿔주어야 한다. 설거지, 청소 및 잡다한 일을 도맡는 Dish Washer다.

 

 

 그는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채워놓고, 접시와 그릇들을 뜨거운 물에 담근다. 식기 세척기가 대부분의 세척을 담당하긴 하나, 끈적끈적한 소스나 달라붙은 것들은 말끔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은 식기 세척기에 넣기 전 그가 미리 한 번 닦아내야 한다. 그는 철 수세미를 손에 들고, 뜨거운 물속에서 그릇을 휘휘 한 번 닦는다. 달라붙은 것들만 제거하면, 나머지는 식기 세척기가 알아서 처리한다.

 

 빈 그릇을 하나하나 식기 세척기에 넣는 것이 아니다. 가정집에서 식기 세척기를 사용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그릇을 끼워 넣을 수 있는 플라스틱 팔레트 같은 것이 있다. 가정집에서는 식기 세척기 내부에 이 그릇 거치대가 장착되어 있지만, 식당의 식기 세척기는 그릇 거치대가 분리되어 있고 여러 개다. 그는 플라스틱 그릇 거치대를 옆에 쌓아 놓고, 하나씩 빼서 그릇을 빼곡히 끼워 넣은 뒤 식기세척기에 돌린다. 이곳의 식기 세척기는, 네모난 스테인리스 박스 모양이다. 박스에는 레버가 달려 있어서, 이 레버를 잡아서 아래로 내리면 박스가 그릇들을 덮어버리면서 내부에서 세척이 시작된다. 세척이 끝나면 레버를 올려 스테인리스 박스를 올려버리고, 세척이 끝난 그릇 거치대를 옆으로 밀어낸다. 레버를 올리고 내릴 때마다, 식기 세척기 박스가 위아래로 부딪히면서 '쿵, 쿵' 소리가 난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나는 이 '쿵, 쿵' 소리가 무언가 장엄하고 웅장하게 느껴져서, 일부러 더 힘을 주어서 식기세척기 레버를 올리고 내린다.

 

 카페의 설거지 양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한다. 그는 끊임없이 몰려오는 접시, 밥그릇 같은 수프 볼, 소스를 담는 조그만 종지, 수저와 포크 등을 설거지한다. 식기 세척기는 그릇들이 잘 마를 수 있도록, 뜨거운 물과 살균 처리를 한다. 식기 세척기에서 나온 그릇들은, 뜨거운 김을 내다가 이내 빠르게 건조된다. 개수대의 뜨거운 물, 식기 세척기의 뜨거운 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그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세제, 음식물, 음식물 쓰레기, 말라붙은 끈적끈적한 소스 등이 섞이면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달달하면서도 시큼한, 뭐라 말할 수 없는 냄새다. 그는 계속해서 설거지를 한다. 건설현장 육체노동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탑처럼 쌓인 접시들을 처리하고 간신히 숨통이 트일만하면, 서빙 인원들과 주방 인원들이 다시 설거지를 가득가득 쌓아서 갖다 놓는다. 그는 자신이 '무한 설거지 지옥'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에게 설거지 일감만 버려두고 가는 인원들이 얄밉게 느껴진다. 그는 만일 향후에 서빙이나 주방 인원이 된다면, 설거지하는 인원의 고충을 이해하고 친절히 대할 것이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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